20대를 중심으로 느린 취미가 인기입니다.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쫓던 세대가 뜨개질, 도예, 탐조에 빠졌다고 하니, 그 매력이 궁금해지는데요. 플레이라이프에서는 인스타툰 <탐조일기>를 연재하는 현지윤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7년여 간 이어온 탐조활동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왔습니다. 새를 관찰하며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졌다는 현지윤 작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탐조’가 Z세대의 취미로 떠오르면서, 탐조인의 연령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최근의 인기를 실감하고 계신가요?
탐조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껴요. 특정 지역에서 서식하는 새를 탐조하는 로컬 모임도 많아지고, ‘치치칫’ 같은 탐조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도 생기고 있어서 즐거운 요즘이에요. 사실, 탐조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코로나 시기였어요. 당시에 실내 활동에 제약이 많았잖아요. 실외 활동인 탐조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제 또래 비율이 많이 늘었어요. 그동안 친구들에게 꾸준히 탐조 영업을 해왔는데요. 이전에는 신기해하는 정도였다면 요즘에는 함께 탐조 활동을 하거나 탐조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해요.
기록이 탐조 생활을 더 즐겁게 해줄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기록하고 계신가요?
탐조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는데요. 사진/영상을 찍거나, 네이처링/이버드 같은 앱에 GPS로 루트를 기록하시는 분들 있어요. 저는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보다는 그림을 그려서 기록하는 방식을 좋아해요. 어떤 새를 만났는지,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 당시 겪은 에피소드가 탐조일기에 다 담겨 있어요. 일기가 쌓이면서 나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툰을 시작하게 됐어요.
인스타툰 <탐조일기>를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연재하기 위해 만든 루틴이 있나요?
우선, 탐조를 하면서 메모를 해요. 내가 본 새의 특징과 그 새의 행동, 특히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들을 적어요. 탐조를 다녀온 후에는 일주일 안에 콘티를 짜려고 노력해요. 미루면 하기 싫잖아요. 10컷 정도 콘티를 짠 뒤에 그림을 그려요. 누구한테도 말은 안 했는데, 스스로 정한 연재일이 일요일 오후 3시 반이에요. 그렇게 정해두면 어떻게든 그리게 되더라고요. 직장생활과 병행할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하고 두 장씩 그려서 일주일 간격의 연재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작가님은 어떤 새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그 새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도 궁금해요.
‘나무발발이’라는 새를 가장 좋아해요. 이 친구 특징이 나무를 빙글빙글 돌면서 타고 올라가요. 그 모습이 무척 귀엽답니다. 성격은 조금 소심한 것 같아요. 눈에 잘 안 띄고 금방 날아가요. 수도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저는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에서 처음 봤어요.
탐조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새의 행동 때문에 웃었던 적이 많아요. 최근에 공원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여름이면 올해 태어난 새들이 독립할 시기거든요. 이 친구들이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좀 어리바리해요. 참새였는데, 나비가 신기했는지 쫓아가는 거예요. 그러다 나비가 새에게 날아드니까 반대로 참새가 놀라서 도망가더라고요. 새들이 몸 개그하듯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런 포인트들이 재미있어요.
탐조만이 줄 수 있는 행복, 작가님이 생각하는 탐조의 매력이 궁금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높아졌어요. 저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만큼 새를 좋아해요. 새 그림을 그릴 때 자료가 필요해서 검색하다가 사진에 빠져서 한참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그리고 새와 우리는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요. 기후 변화나 도시화에 따른 문제들에도 전보다 관심이 생겼으니, 탐조를 통해 제 세계가 확장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도시화에 따른 조류 충돌이나 서식지에 대한 뉴스를 종종 접하는데, 작가님은 체감하는 게 클 것 같아요.
맞아요, 새를 탐구하다 보면 새가 살아가는 터전인 자연을 보호하는 데도 관심이 생겨요. 매년 오던 철새들이 보이지 않거나 개체 수가 줄었을 때, 기후 변화를 체감하기도 하죠. 내가 좋아하는 새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해요. 집 앞에 새로 건물이 들어서는데, 전면 유리더라고요. 새가 유리창에 충돌해서 죽는 경우가 많아서 그 앞을 오갈 때마다 부딪힌 새가 없는지 유심히 보게 돼요. 많은 탐조인들이 다친 새를 발견하면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신고하고, 지속적인 사고 발생 지역에는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기도 해요.
탐조를 하려면 숲이나 산에 가야 할 것만 같은데요. 도시생활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탐조 방식이 있을까요?
생각보다 서울 도심에서 많은 새를 만날 수 있어요. 저는 공원이나 궁, 왕릉을 주로 많이 가요. 참새, 박새 같은 소형 산새들이 많거든요. 경복궁에 딱따구리도 있어요. 특정 새를 탐조하고 싶은 경우에는 그 새가 좋아하는 먹이와 환경이 갖춰진 곳에 가기도 해요. 물론, 탐조는 언제나 성공하는 건 아니라 꼭 볼 수 있다는 장담은 못해요.
탐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초반에는 욕심이 많았어요. ‘한국의 새’라는 도감을 보면, 새마다 흔하게 발견되는 새인지, 희귀한 새인지 표기가 되어 있어요. 발견한 새는 표시해놓다 보니, 희귀 새 발견에 욕심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탐조가 매번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는 않아요. 10번 중 한 3번 정도 목표한 새를 보는 정도죠. 예전에는 새를 발견하지 못하면 실망이 컸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오늘 새를 많이 못 보더라도 같이 간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자연을 감상하는 측면도 충분히 즐거워요. 몇 가지 종을 발견했는지 숫자를 세지 않게 되면서 새를 본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어요.
탐조가 작가님의 삶의 태도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대학연합 야생조류연구회에서는 가입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에게 맞는 새 이름을 선물해 줘요. 단순히 외모만 비슷하다고 주는 게 아니라, 이름을 받을 사람의 성격과 어울리는 새의 특성을 고민해서 선정해요. 저는 할미새과의 ‘붉은가슴밭종다리’를 받았어요. 이 새는 밭종다리 중에서도 무리를 잘 형성하고 다른 새들과 어우러지며 살아가요. 그런 성격이 저와 비슷해서 이 새를 선정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몸이 약한 편이라 어릴 때는 나는 왜 이렇게 약하게 태어났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조그마한 외형의 붉은가슴밭종다리 이름을 얻고 난 뒤에 저라는 사람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말 못하는 존재한테서 받는 위로가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도 새들에게 위로받을 때가 있나요?
제가 탐조를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가 취준생 때였어요. 취준생 시기가 길어지면 자신이 좀 못나 보이고, 취업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탐조하다보면 새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요. 그런 새들을 보면서 저도 제 생을 나답게 살아가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곤 해요.
작가 님의 마음을 성장하게 만든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탐조를 하며 모은 채집상자를 가져왔어요. 새와 직접 관련된 깃털을 주워 오기도 하고, 벚꽃잎, 낙엽, 조개 등 장소에서 주워온 것들도 있어요. 제일 좋아하는 건 어치새 깃털이에요. 어치새가 날갯짓할 때 이 쨍한 파란 깃털이 예쁘거든요. 운 좋게 이 깃털을 발견해서 기뻤어요. 채집상자의 물건들은 장소를 기억하게 해주기도 하고,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게 해주기도 해요. 제 탐조 활동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담겨있는 소중한 상자랍니다.
탐조의 세계에 발을 들여보고 싶어졌다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탐조는 혼자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취미에요. 저도 졸업하고 나서는 혼자 많이 다녔어요. 내가 보고 싶은 만큼, 눈치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거든요.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동네 공원이나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녹지에 가보세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새 소리가 들릴 거예요. 그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새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천천히 관찰하면 그게 탐조라고 생각해요. 흥미가 커지면 그 때는 쌍안경을 구매하는 걸 추천해요. 쌍안경은 8배율로, 10만 원 이하 제품을 구매하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마음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탐조인으로서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저는 매년 기러기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요. 기러기는 겨울이면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철새인데요. 기러기가 올 때쯤 되면 ‘내가 올해도 잘 버텼구나, 잘 살아냈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러분들도 겨울에 찾아오는 기러기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잘 살아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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