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문턱에서 우리는 영화감독 윤가은 님을 만났습니다. 아이와 청소년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영화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지만, 실패하고 멈칫거리는 순간들을 숨기지 않기에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도 자연스럽게 겹쳐 보입니다.
윤가은 감독이 말하는 회복은 단번에 달라지는 일이기보다는,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아주 작은 완수의 경험, 내려놓았을 때 찾아오는 가벼움, 그리고 맨몸으로 지나온 시간에 대한 뒤늦은 이해까지. 이번 인터뷰는 여전히 흔들리면서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이 자리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어떤 일상과 마음으로 지내고 계신가요?
<세계의 주인> 개봉 이후 여러 공식 일정을 지나오면서, 지금은 조금 숨을 고르는 시간에 가까워요. 바쁘게 흘러간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지’ 이런 걸 혼자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스스로의 시간을 돌아볼 때, 어떤 식으로 정리하는 편이세요?
저는 일기를 매일 써요. 노트북으로 작업 일지를 쓰는데, 감정을 길게 적는다기보다는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그냥 다 적는 편이에요. 1월부터 12월까지, 나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쭉 정리해 보고요.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반성 같은 것들을 혼자 하는데, 하루가 꼬박 걸릴 때도 있어요.
감독님의 영화에는 아이와 청소년, 그리고 생존자의 시선이 계속 등장해요. 특히 인물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에요.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을 담았다니 너무 다행이네요.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계속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체인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와도 맞물리는 것 같아요.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용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삶의 문제를 대면하고, 직시하고, 그걸 끝까지 관통해가는 용기를 내기 어려워졌다고 느끼거든요.
비교적 어렸을 때는 선택지가 많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뚫고 지나가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그럴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때 못 냈던 용기를 작품으로 대신 꺼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의 이야기임에도 어른 관객들이 감독님의 영화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치유라는 게 아주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조금 괜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보통 돌아볼 여유도 없고, 너무 아픈 기억은 애써 덮어두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아프고 괴로운 순간을 맨몸으로, 맨마음으로 통과해 왔단 말이에요. 돌이켜보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그냥 그 속을 걸어갔던 시간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죠. 제 영화는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올려놓는 작업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큰 성취 없이 실패하고, 그 힘든 순간을 두들겨 맞으면서 지나가요. 하지만 관객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그때 참 용감했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 그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지나는 순간에는 정말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너무 괴로울 때면 가끔 할머니가 된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너 괜찮았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지금도 어린이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나는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반만큼이라도 용감하게 살아야 하는데.’ 어른들이 오히려 더 겁쟁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글쎄요. 인생을 안다고 착각하면서 생기는 차이 아닐까요? 어린이들은 인생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을 잘 안 하겠죠. 실제로도 모르고요. 그러니까 몸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가는 거죠. 그런데 어른들은 정보를 얻으면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정보=경험’은 아니고, 사람마다 자라온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경험이 누군가의 경험과 같을 수 없어요. 그래서 ‘착각하지 말자’는 생각을 늘 하려고 해요.
그런데 왜 지나는 순간에는 그 용기를 잘 느끼지 못할까요?
무슨 차이일까요? 억수로 내리는 비를 헤쳐나가다가 겁쟁이 어른으로 변하게 되는 계기 같은 거요.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인물들의 감정이 아주 미세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감독님은 스스로를 섬세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섬세하다기보다는 소심한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눈치를 많이 보고, 늘 긴장한 상태로 살아요. 행사나 인터뷰가 있는 날에는 과분하다는 생각도 들고, 실례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많고요. 살아가는 일이 늘 그런 긴장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이걸 고치려고 애쓰기보다는, 지금은 그냥 이 상태로 살아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중이에요.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하고,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고스란히 느끼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지더라고요.
감독님에게 ‘실패’는 어떤 의미에 가까운 말일까요?
인생의 어떤 특정 순간이 실패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떤 경험은 그 다음 것을 위해서 너무 필요했던 경험이었어요. 통념상으로 사회에서 말하는 ‘실패’는 정말 너무 많아서 뭘 하나 꼽을 수가 없고요.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던 시기도 있었고, 다른 일을 해본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없었다면 다음으로 갈 수 없었을 거예요.
되돌아보면 실패가 아닌 경험들이라고 깨닫게 되지만, 그때 당시에는 다른 일도 찾아볼만큼 실망감이 컸을 거예요. 그럼에도 다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어떻게 보면 포기의 마음이었어요. 스스로에게 확실한 포기의 선물을 주고 싶었던 거죠. 아주 작은 이야기라도 좋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 방식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야 나중에 할머니가 되었을 때 “한때 영화를 꿈꿔서 이렇게 만들어 봤는데, 결과도 맞지 않았고 나랑도 맞지 않았어. 그래서 이 꿈을 내려놨단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완전히 내려놓고 나니까 재미가 생기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재미도 새롭게 찾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떠올랐고요. 가장 좋은 마음은 다 내려놓았을 때 오더라고요.
되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잘하고 싶어서 붙들고 있으면 오히려 완성까지 가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그 과정에서 제가 지치기도 하고요.
맞아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놨을 때가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자 뭐든지 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내려놓는다는 게 어렵잖아요. 머리로는 내려놔야지 해도, 마음으로는 그게 안 될 때가 많거든요. 벼랑 끝에 서야만 내려놓는 게 가능해요. 그러니까 어떤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끝까지 열심히 했는데도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비로소 다이빙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점프하고, 다시 하고, 또다시 점프하고. 인생은 이것의 연속이구나를 느껴요.
감독님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트라우마를 삶의 한 단면으로서 담담히 꺼내놓는 것 같아요. 왕따, 가족에 대한 결핍, 성폭력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룰 때, 창작자로서 스스로 가진 고정관념(이렇게 다루면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등)과 싸워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저는 고정관념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종국에는 ‘이럴 거야’ 하면서 남아 있는 선입견을 갖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누군가 저를 볼 때 “쟤는 저런 맥락에서 살아왔으니까 이럴 거야” 하는 판단을 들으면 저도 욱할 텐데, 제가 제 기준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는 저도 똑같이 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공부를 많이 했어요. 많이 보고, 듣고, 경청하고, 그 문제를 오래 들여다보면서 해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인간이라는 건 참 가변적인 존재구나를 느꼈어요. 어떤 ‘상처’의 상태에서 ‘극복’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참 평이하고 순조롭게 느껴지다가도 갑자기 고꾸라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다시 밑면까지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 옅어지는 것 같아요. 파도의 낙폭이 줄어들고, 점점 파도타기가 좀 수월해지면 어느 순간 ‘곧 낙폭이 또 오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게 회복이라면 회복이겠구나 생각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각자 자기만의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청년들에게 다정한 응원 한마디 부탁드려요.
청춘은 늘 가장 빛나는 시기로 그려지지만, 저는 그때가 가장 불안하고 고민이 많았어요. 이상은 높고 나는 작게 느껴지고, 그 간극을 줄일 수 없다는 생각에 자주 좌절했죠. 모두가 빛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아닌 것 같을까, 그런 비교 속에서 오래 흔들렸어요. 그런데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옅어지는 순간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저는 원래 인생을 계산하고 계획하려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무언가를 하려면 강한 확신이 들어야 하고, 내 능력치가 이만큼 차야 한다는 설계가 있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느낀 건 인생에서 99% 확신 같은 건 없더라고요. 그냥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 1%가 ‘빛’인 거예요. 그 가능성을 붙잡고 가다 보면, 그게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해요. 그 1%의 빛을 그냥 갖고 살아도 된다는 말을, 지금의 제가 청춘 시절의 저에게 해주고 싶어요.
그런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감독님 곁에 자연스럽게 남은 것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보게 되는 물건이나 기억 같은 것들이요. 감독님의 마음성장 아이템을 꼽아주세요.
1. 거북이 마그넷
제가 몇 년 전에 필리핀 보홀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가 일이 잘 안 풀리면서 개인적으로도 가장 힘들던 시기였어요. 친구들이 보홀로 다이빙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따라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물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사람이거든요. 수영도 못하고, 예전에 물에 빠진 경험이 있어서 발이 닿지 않는 곳에 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해요. 도착해서 레슨을 받기 시작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차려지면서, 내가 왜 이런 걸 하겠다고 한 거지 싶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걸음마를 떼듯이 시작했어요. 숨 쉬는 것만 해보자, 다음엔 잡고 있던 손을 떼보자, 그렇게 하나씩요. 그렇게 조금씩 바닷속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어드밴스드 자격증도 따고 다이빙을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 여전히 무섭긴 하지만. 저한테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죠. ‘절대 못 해’라고 단정했던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주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들어간 바닷속에서 만난 존재가 거북이였어요. 거북이를 보는데 인생에 정말로 못할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영화를 만들지 않더라도, 다른 일을 해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해방감 같은 것도 느꼈고요. 영화가 여러 번 엎어지고 이런저런 실패가 반복되다 보면, 다음을 준비한다고 해도 성취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사람을 많이 좀먹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주 작더라도 ‘완수’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다이빙을 하며 만났던 거북이를 떠올리면, 아주 작은 것도 아주 크게 기뻐하자는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돼요.
2. 목탁반지
이 반지는 제 친구인 김혼비 작가가 준 거예요. 제가 이런저런 일로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에 불교대학을 다녔는데, 그 계기를 만들어준 친구이기도 해요. 대학에서 종교학을 공부할 때 학문으로서의 불교를 접한 경험은 있었지만, 언젠가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거든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아 있던 시기에 수행으로 불교를 배우면서, 제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마음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비 작가가 “목탁을 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목탁을 샀는데, 일반 목탁은 소리가 너무 커서 집에서는 치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혼비 작가가 이 목탁 반지를 주면서, 시끄러우니까 이걸로 대신 치라고 했어요.
영화 만드는 내내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현장 변수들 때문에 생각이 많아질 때 이 반지를 톡톡 치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진정돼요. ‘사는 게 별 게 아닌데, 여기에 너무 목숨 걸려고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들고요. 소리도 묵직하지 않고 경쾌해서 제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갑자기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