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누구나 멍때릴 시간이 필요해요

“중요한 건 자기의 속도를 찾는 것 같아요. 모두 같은 박자로 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웁쓰양 작가

작가 웁쓰양님의 마음성장 키워드

#자기다움 #휴식

사람마다 성장하는 속도도, 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전부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느새 남들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만의 속도를 잘 찾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 웁쓰양 님은 ‘멍때리기 대회’라는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바쁘고 빠르기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저 자신을 속일 수는 없더라고요.”

놀라움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회화 작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퍼포먼스, 설치,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하고 있어요. 어딘가에서 소개할 때는 ‘시각 예술가’라고 말해요. 어떤 매체를 활용하든 시각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기획하거든요. 웁쓰양이라는 이름은 놀랐을 때 쓰는 감탄사 ‘Oops’에 여자를 뜻하는 ‘양’을 더해 만들었어요. 뜻밖의 일을 맞닥뜨렸을 때 ‘Oops’라는 감탄사를 내뱉잖아요. 제 작업도 놀라움을 자아내고 사람들에게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으면 해서 정한 활동명입니다.

 

저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미대 편입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한가롭게 편입 준비를 할 수 없게 된 거죠. 미술에 대한 마음을 접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컴퓨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저 자신을 속일 수는 없던 거예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서른이 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스쿨’이라는 강좌에 등록해서 1년 과정을 수료하고 2년 정도 혼자서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그림을 찍어서 한 평론가분께 메일로 보냈어요. 그분께서 신인 작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전시에 저를 추천해 주셨고, 그 길로 작가 데뷔를 했죠.

l 멍때리기 대회를 진행 중인 모습
l 멍때리기 대회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트로피

“매일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멈춰서

나에게 불안을 주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똑같은 풍경 속 바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멍때리기 대회는 사실 그림에 슬럼프가 왔을 때 생각했어요. 작업실에 종일 있어도 작업을 안 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해지더라고요. 그러다 하루는 마음을 바꿔봤어요. 어차피 작업을 안 할 거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계획을 세운다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바로 다음 날 실천에 옮겼어요. 작업실에서 유튜브만 보고 인터넷만 하는 건 똑같은데 불안감과 죄책감이 없어졌어요.
그렇게 작업실로 오가던 어느 날 지하철 풍경이 눈에 띄었어요. 퇴근했을 시간인데도 업무 전화를 받고 이동하면서도 전공책을 펴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더라고요. ‘저 사람들도 사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닐까?’ 분명히 계획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다시 불안감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저 사람들 때문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생각이 이어져서 멍때리기 대회라는 이름이 떠올랐고, 그걸 구체화하면서 멍때리기 대회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멍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증인 것 같아요

멍때리기 대회는 사실 제가 진행한 ‘도시 놀이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운이 좋게 언론의 주목도 굉장히 많이 받았고 많은 분이 사랑해주시는 작업이 되었어요. 덕분에 해외에서도 초청받고 인터뷰 요청도 많이 받고 여러모로 꿈만 같은 기회를 저에게 준 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골칫거리기도 해요. 사실 저는 멍때리기 대회라는 작품 제목으로 어떤 퍼포먼스를 만든 거거든요. 그런데 대회라는 이름 때문에 누구나 다 주최할 수 있는 형태로 받아들여지다 보니. 제 작업이 보호받지 못하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미지가 소비되는 상황을 겪었어요. 그래서 멍 때리기 대회는 저한테는 가장 예쁜 손가락이면서 가장 아픈 손가락인 것 같아요.

 

멍때리기 대회가 나온 건 사실 멍때리기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그만큼 그런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는 반증일 것 같아요. 자기도 모르게 멍때리는 순간이 온 것은 어쩌면 멍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그널 아닐까요. 누구든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런 신호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잠깐 멍때리셨으면 좋겠습니다.

l 2013년부터 진행한 '도시놀이 개발 프로젝트'

“재미있게 하려고 하면 좋은 작업이 나왔는데,

욕심을 내다보면 오히려

어정쩡한 결과를 마주했어요.”

잘하고자 하면 오히려 잘되지 않더라고요

회화 작업을 하다 보니 작가로서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슬럼프가 왔고 그것을 탈피하고 싶어서 퍼포먼스를 시작했어요. 어떻게 보면 ‘딴짓’을 하면서 스트레스, 중압감에서 벗어난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퍼포먼스 작업에서도 잘하고 싶어지고 칭찬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어떤 기관과 작업할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잘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기관에서 만족할 만한 방향에 맞춰 진행방향을 타협했어요. 끝나고 보니 굉장히 어정쩡한 결과물이 나와버렸어요. 오히려 재미있게 놀려고 하면 좋은 작업이 나왔는데 말이죠.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회화 작업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시기에는 제가 스스로 제 붓을 뺏었어요. 작년에는 9년 만에 회화전을 진행했는데, 그리는 행위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그림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았고요. 부담을 놓아주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 같아요. 정말 잘하고 싶다면 본인이 즐겨야 한다는 점,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제일 어려운 말 같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뭘 진짜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일하지 않을 때 무얼 하느냔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일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사실은 저는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할 일이 없으면 할 일을 찾아서라도 해야 할 정도로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거든요. 그래도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는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면 너무 재미있고 즐겁지 않을까?’라는 공상을 많이 하고 그걸 실제로 실행하기도 해요. 또, 제가 키우는 고양이들이 저에게 굉장히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매뉴얼 바이크’를 배워서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데 대단히 잘 타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하는 취미 중 하나입니다.

 

잘 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요

사람들은 집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를 많이 고민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문제니까 그걸 빼면 잘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해 보여요. 사람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놀이 방법들을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하는 행동이 남들이 보기에는 한심한 짓일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정말 즐거울 수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제가 종일 누워서 공상하는 게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듯이요. 본인이 즐거워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아요.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하는 게 인생 아닐까요

성격이 급한 부분도 있지만 상황 판단이 느린 부분도 있어 작가로서 늦게 출발했어요. 하지만 굉장히 만족하면서 지내요.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과정이 있잖아요. 살다 보면 사실 그런 과정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빨리 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느끼기 쉬운 것 같아요. 근데 겪어보니 제일 중요한 건 자기의 속도를 찾는 것 같아요. 모두 같은 박자로 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같은 박자로만 이뤄진 음악은 굉장히 재미없을 거예요. 다양한 박자와 변주가 있는 음악처럼 모든 과정에서 나만의 속도를 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중요한 건 빠르기가 아니라 내가 그 시기를 얼마나 즐겁게 이겨내느냐 겪어내느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조금 늦었지만 재밌게 달리고 있습니다.

 

주류에서 조금 벗어난 ‘빨간 점’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저는 규정지어지고 줄 세워지는 것이 불편한 것 같아요. 회화를 하다 보니 성공한 작가로서의 공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장소에서 전시하고 개인전도 몇 번은 열고, 이런 모습 있잖아요. 그걸 해낼 자신도 없었고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잣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다른 것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미술계라는 거대한 그룹에서 조금 벗어난 ‘빨간 점’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틀 밖에 있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존재요. 이렇게 빨간 점이 되겠다고 마음 먹으니 부담이 없어졌어요. 덕분에 ‘재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막막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나요? 누구나 살아가며 여러 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정면으로 돌파한다면 금세 지쳐버릴 거예요. 가끔은 정처 없이 멍때리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내가 찾아 헤매던 해결책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휴식이 필요할 때는 휴식을

“고기가 당기는 것은 몸이 고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단백질, 칼슘, 철분이 필요하니 고기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먹고 싶어서 먹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멍때리고 있는 순간이 늘어난다면, 몸과 마음이 그걸 필요로 한다는 것 아닐까? 우리 시대에 소진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는 것은, 모두에게 멈춰 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멍때리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저 커피값 정도의 작은 사치일 뿐.”

생의 벼랑 끝에서 내미는 손

삶과 죽음이라는 갈래에서, 두 번째 선택은 삶이 되길 응원합니다.

황은상 반포수난구조대 소방교

내 페이스대로 그려가는 내 길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페이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거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싶어요."

최고요 나이키 스토어마케팅 담당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함께라면 훨씬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설재우 작가

더 작게 시작하세요

“꼭 순서대로 하지 않더라도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불안감이 사라지더라고요.”

김목인 싱어송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