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 - 플레이라이프

구달

에세이스트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

그저 생필품 중 하나라 생각하고 지나칠 사소한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이 되는 특별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양말을 주제로 책을 쓰고, 양말 가게 점원으로 일할 정도로 양말에 진심인 에세이스트 구달 님. 그의 서랍 속에 가득한 것은 그저 양말이 아니라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입니다.

구달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무기력한 날에는 양말을 고르며 위안을 얻어요. 하루를 시작하려면 꼭 양말을 신어야 하잖아요. 가끔은 무기력하고 일하기 싫은 날도 있는데, 양말을 고르고 신는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져요.

• 저의 취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굳이 무엇을 좋아한다고 드러내지 않아요. 살다 보니까 내가 모두를 이해시킬 수도,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한 우물만 파면 좁아질 것 같지만, 오히려 옆으로 넓어지더라고요. 양말을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다 보니, 관련된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도전하게 되었어요.

“서랍을 열 때마다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한 것 같아요.”

4일은 에세이스트, 3일은 양말 가게 점원으로 일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에 취직했고, <아무튼 양말>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어요. 그 책을 본 양말 매장 사장님께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고민되긴 했죠. 제가 쌓았던 출판업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동시에 또 제가 좋아하는 양말을 팔면서 생계를 꾸려나간다고 생각하니 그 둘의 균형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결국 제안을 수락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에세이를 쓰는 일과 양말 가게 점원 일을 겸하고 있어요.

 

양말은 개성을 표현하는 나만의 수단이에요

양말은 생필품이면서 패션 아이템이기도 해요. 이게 양말만의 매력 아닐까요? 똑같은 색으로 여러 켤레를 사서 신는 사람도 있지만,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죠.

이번에 세보니 서랍에 156켤레의 양말이 있더라고요. 서랍을 열 때마다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한 것 같아요. 바라보기만 해도 바로 기분이 좋아져요.

“살다 보니까 내가 모두를 이해시킬 수도,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를 이해시킬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요

아무래도 양말은 저렴하게 사서 쓰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양말에 돈과 정성을 쏟는 것을 의아해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긴 해요. 처음에는 ‘나한테는 중요한 건데, 본인한테 중요하지 않다고 저렇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살다 보니까 내가 모두를 이해시킬 수도,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를 이해해 주지 못할 것 같은 분들한테는 굳이 이런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어쩌다 그런 말을 듣게 됐을 때는 그냥 웃으면서 넘기죠.

 

선물 받은 양말이 특히 소중해요

양말에 애착을 가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선물 받은 양말은 특별하고, 소중한 것 같아요. 어머니가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면서 사다 주신 양말도 있고, 한 번은 제 책의 독자분이 영국을 여행하면서 미술관에서 발견한 모네 양말을 선물해 주셨어요. 의외의 장소에서 양말을 발견하고 저를 떠올리면서 그걸 사다 주신 거잖아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요.

“하루를 시작하려면 양말을

꼭 신어야 하잖아요.

무기력한 날에도

그 때만큼은 기분이 좋아져요.”

하루의 시작에 있는 확실한 행복, 양말

가끔씩은 무기력하고 일하기 싫은 날도 있어요. 그런데 하루를 시작하려면 양말을 꼭 신어야 하잖아요. 양말을 고르고 신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고 위안이 돼요. 양말 서랍을 열 때마다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물론 ‘현타’를 느낄 때도 있어요. 아끼는 양말을 신고 나갔다 온 뒤 집에서 손빨래를 할 때 허무감이 들기도 하고, 입금 받은 책 인세가 전날 산 양말 한 켤레 값보다도 적을 때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해요.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극복하려고 하진 않아요. 오히려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 다짐해요.

“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니

오히려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 우물만 팠더니 오히려 넓어졌어요

‘한 우물만 판다.’라는 행동이 어떻게 보면 폐쇄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좁게만 보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니 오히려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 가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다 보니 그것에 관련된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파고드는 분야를 중심으로 깊이 파고드는 동시에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출판업계에 일할 때는 같은 업계의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양말 가게에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찾아와요. 원하는 것도 다르고, 필요한 것도 다르고, 취향도 달라요. 양말 가게에 일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정말 다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남들이 보기엔 쓸모없이 보일지라도

거기에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재능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덕질도 재능이다.’라는 표현을 읽은 적 있는데 공감이 갔어요. 사소해 보이고 남들이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좋아하신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양말에 관련된 기회가 있다면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경험하고 싶어요. 중년의 양말 가게 점원이 되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나이를 먹고 40대, 50대가 돼서도 지금처럼 동네 한편에서 양말을 팔면서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구달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독립 출판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유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줬어요. 덕분에 저도 내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표현해 봐야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 산책

걷는 걸 좋아해요. 산책을 할 때만큼은 오롯이 저한테 집중하고, 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거든요. 산책을 하면서 생각하는 시간들을 좋아해요.

• ‘Writer’ 키링

제 친구가 선물해 준 키링이에요. 글을 쓰는 직업은 성과가 막 눈에 띄게 뚜렷하지 않아요. 이 길이 맞는지, 잘 하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될 때가 많죠.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가족이 보내주는 응원의 마음 덕분에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우열이 없지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취미라도 그것에 진심을 다해 애정을 쏟는다면, 그 취미는 예상치 못한 때에 큰 자산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