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끝까지 에너지가 넘친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최고요는 ‘이름값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최고’가 되겠다기보다 오롯이 나로 살고 싶다는 말이다. 물론 내가 선택한 일에 있어 최고가 되기 위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야근을 불사하며 애쓰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안되는 걸 억지로 애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내 페이스대로 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간절히 바라면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
40대가 다가와도 두렵지 않아요.”
사는 데 힘을 얻는 나만의 메시지가 있나요?
저 나름의 정신승리일 수 있는데 살면서 바라던 크고 작은 것들이 어느 순간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예를 들면 지금 하는 일처럼요. 어릴 때 카피라이터가 꿈이었어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활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카피라이터가 아니니 꿈을 이루지는 못했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카피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스토어 마케팅이거든요. 저희 회사 제품에 대해 구매 생각이 없던 소비자들이 구매하고 싶게끔 혹은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더 확신을 주게끔 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해요.
그래서 어느 순간 ‘아, 내가 결국에는 돌고 돌아서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카피라이터와 같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바라면 어떤 형태로든 일이 돌아온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충분히 내 삶을 복기할 시간을 못 가져서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삶을 대하는 굳은 살이 베긴 것 같아요.”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미완성의 나라고 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두려운 건 미완성의 제가 완전치 못한 것으로 내가 공들인 시간이 무의미하거나 질타를 받게 되는 것이에요. 주어진 일을 제시간 안에 못 끝내거나 일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질타나 원망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의 미완성의 상태를 싫어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회사 근무시간이면 야근도 불사하죠. 잘 생각해보면 이건 저의 기준치가 높아서 그런 것 같아요. 내 만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저를 괴롭히는 거죠.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신에게 평가가 인색하다고 하셨어요.
내가 할 정도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자신에게 상벌이 실히 있어야 하는데 주로 채찍질만 하고 당근을 안 주는 편인 것 같아요. 당근을 주면 나태해지는 것 같고, 나태해지면 한없이 늘어지거든요. 그래서 타이트함을 계속 가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나 생각해요.
자기 평가에 인색한 면에 어떤 장단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같이 일하는 분들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에너지,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것 같은데 단점은 나에게 인색하다 보니 스스로 자신감을 얻고 계속 가야 할 타이밍에 충분히 그러지 못해 생각이 많아지고 가라앉는 것 같아요. 체력소모도 크죠. 누군가의 기대치를 높이게 하거나 내 입맛에 맞으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니까 체력이 고갈될 때도 있죠.
그래도 다행인 건 저는 제가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 장단점이 계속 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자존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 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을 딱히 안 하고 잘 몰랐어요. 왜냐하면 되게 슬픈 건데 20대 때 저를 볼 시간이 없었어요. 8시에 출근해서 새벽 2~3시에 퇴근하고, 이거를 일주일에 3일 이상 6개월을 했더니 몸이 망가지고 힘들었어요. 늘 비성수기 없이 바쁘게 일을 쫓다 보면 내가 어떤지를 잘 모르거든요. 고맙게도 저의 가까운 친구들이 몸이 바쁜 걸 아니까 정신적인 그런 궁핍한 상황을 이해해주고 기민하게 봐줬어요. ‘너는 굉장히 사랑받고 존중받을 사람인데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것 같아. 네가 그럴 필요 없는데’라고 얘기해 줘서 제가 20대 후반에 자존감이 충만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나에 대한 생각의 전환점이 됐을 것 같아요. 그 이후 변화가 있었나요?
서른 살에 첫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서 무작정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시간 걱정 없이 늦잠도 자고 계획도 안 짜고 일부러 여유로운 삶을 살아봤죠. 20대 때 맨날 쫓기듯이 살았으니 여행도 현지인처럼 여유롭게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가지면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바다를 보면서, 커피 마시면서, 글도 쓰면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볼 시간을 가졌어요.
‘내가 되게 불쌍하게 살았구나.’ 나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데 정작 나를 칭찬해 주지 않았고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주눅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게 충분히 내 삶을 복기할 시간을 못가져서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삶을 대하는 굳은 살이 박인 것 같아요. 그렇게 방학 같은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도 편해지고 자존감이라는 걸 신경 안 쓰고 살게 됐어요.
두려움이나 시련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회사 생활을 하니까 주어진 시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데 매일 운동을 조금씩 꾸준히 하는 편이고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요즘은 장롱 면허를 탈출해서 드라이브도 즐기고 있어요.
집을 떠나면 밖은 다 새로운 공간이잖아요. 가깝게는 떠난다는 기분으로 빵집이나 카페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요. 커피는 식을수록 맛이 다채로워져서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 보면서 멍하니 있어요. 저는 커피멍이라고 해요. 거주지를 벗어나야 할 때는 운전을 해서 멀리 가요. 다른 상황과 공간에 저를 놓고 잠시나마 해방감을 갖게 하는 거죠. 저한테는 그런 시간이 효과적이더라고요.
“마라톤을 하면서 내 페이스로 사는 것을 배웠어요.”
안되는 걸 억지로 애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만족하며 노력하는 삶, ‘최고요가 최고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 행복의 주문을 걸며 내 페이스대로 하루하루 그녀답게 사는 방식이다.
운동 중에서도 러닝을 즐기신다고 들었는데, 러닝이 내 성장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요?
저는 승부욕은 많은데 어릴 때 달리기를 못 해서 맨날 꼴찌 해서 울던 사람이고, 3등 안에 들고 싶은데 못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순위 안에 들어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한 번은 100km를 산에서 뛰는 대회를 나갔는데 스물일곱 시간에 걸쳐서 완주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주자, 꼴찌였어요. 운 좋게도 그때 당시 여자 5등이어서 상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상을 받았다는 거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게 꼴찌로 왔지만, 모두가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어려운 환경에서 완주했다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니까 굉장히 신선하더라고요. 이 운동은 순위보다 해내는 과정이 더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살면서 꼭 등수 안에 드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내 페이스대로 가면 된다는 걸 알았죠. 운동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운동도 인생도 제 페이스를 찾아가는 것. 그래서 저는 남과 비교를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인생을 더 여유롭게 보는 시야를 갖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나를 위해 충만한 시간을 갖다 보면 인간관계에서도 자유로워진다고요.
30대 중반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해서 전보다 만남이 쉽지 않아요. 신기하게도 제 주변 친구들이 짠 듯이 다 기혼자거든요. 환경이 바뀌니 이제는 10대, 20대 때처럼 관계 형성이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졌죠.
그런데 서운함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카페를 다니면서 사장님이나 바리스타들과 친해지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기존 친구들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채워지는 다른 형태의 친구들이 생겼어요. 연령대도 다 달라요. 하는 일도 다르고요. 그래서 동갑의 동성 친구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을 친구들이 카페를 다니면서 생기다 보니까 ‘내가 앞으로 살면서 외롭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안에서 또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