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한 명을 구하면 200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하루라도 쉬면 타이밍을 놓칠 수 있어서 쉴 틈 없이 신고합니다."

유규진 자살예방감시단 단장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남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가치를 찾으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었죠. 하나뿐인 생명을 내려놓으려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내 삶과 바꿀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더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꾸며 오늘도 유규진 님은 잠을 쪼개어 신고를 거듭합니다.

유규진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한 명이 아니라 200명

한 명의 자살 대상자를 살리면 그 사람의 가족, 지인뿐 아니라 현장을 목격한 사람, 경찰, 소방관 등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까지 살리는 거예요.

 

• 살리기 위한 메시지를 찾는다

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메시지를 찾는 데 집중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제1의 업무는 이 사람을 구조해 상담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에요.

 

• 감시보다 예방

신고 건이 많다는 건 자살 예방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이죠. 감시보다 예방이 강화되길 바랍니다. 힘든 이들이 법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하루라도 쉬면 신고 타이밍을 놓칠 수 있어서 쉴 틈 없이 신고를 하고 있어요.”

자살 감시는 인생의 전부가 됐어요

20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SNS에 올라오는 자살 암시글들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피곤해서 하루를 쉬면 신고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자살 신고를 하면 SNS뿐만 아니라 포털도 미리 캡처하지 않은 이상 0.1초라도 늦으면 글이 발견될 수 없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신고를 하고 있죠.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 영화 보거나 등산할 때도 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살 대상자가 없는지 감시해요.

원래 직업은 변호사 사무장이었는데 밤에 암시글이 더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야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어요. 그렇게 동작구청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지금은 자실 감시와 신고 활동이 제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2018년에는 개인으로 SNS 자살예방감시단을 만들어 혼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신고하고 있어요

사이버 범죄에 관심이 있어서 2001년부터 한국 사이버 감시단이라는 시민 단체에서 감사로 일했어요. 그때 자살 사이트를 접하게 되었는데 동반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흐름을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신고하니까 경찰측에서 당황하더라고요. 가족도 지인도 아니니까 도와줄 수 없다고 하고, 휴대폰을 압수해서 제 신상을 확인하거나 차량 수색하는데만 거의 1시간이 걸리기도 했죠. 빨리 신고해서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매일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자살 예방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신고를 하기 시작했어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명을 갖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대상자들을 만나며 삶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초반에는 개인용, 청소년용, 동반용, 자살 대상자들을 특정하기 위한 특정용 등 휴대폰 5개 정도를 가지고 있었어요. 자살 시도자들을 찾으러 다니고 홍보 활동하느라 차량도 구입하고 여러모로 경비가 많이 들어갔죠. 지금도 임기제 공무원이라 활동을 이어가는데 여러 측면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경제적인 만족은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저도 사회 초년생일 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죠. 그런데 성인 대부분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을 결심하더라고요. 대상자들을 만나고 동기를 살피다 보니 경제적인 욕심이 많이 사라졌어요. 돈이라는 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또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

지금 하는 활동은 봉사적 측면으로 가야지 보상적 측면으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명을 갖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물론 잠을 못 자서 피곤하기도 하지만 괜히 하고 있다는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할 바에 이 활동을 하지 않았겠죠. 그저 후회하는 순간이라면 ‘좀 더 발견했으면’ 하는 부분이고, 더 빨리 발견하기 위해 노하우를 터득해서 많이 보완하고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 한 명을 살리면 200명을 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한 명이 아니라 200명을 살리는 일이에요

어떤 학자가 자살하는 사람 한 명을 살리면 200여 명을 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한 아이를 떠나보내면 가족이 가질 수 있는 힘든 부분뿐만 아니라 친구, 선생님, 현장을 목격한 사람과 경찰 소방관들의 트라우마까지 영향이 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살리면 그 주위 사람들도 살린다는 생각으로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청소년들은 신고하면 대체로 많이 살고 재시도도 많이 줄어들어요. 보통 가족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가 아이를 살리는 건 부모에게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예요. 죄인이 되지 않을 기회이기도 하죠. 성인은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부분이라 다시 살 기회를 주는 것이 제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출처 : 유규진 님의 서울경찰청 자살자 신고 통계 정보공개 자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렸다는 것만 생각하는 거죠

2021년 1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제가 서울경찰청에 신고한 것만 1만 500건 정도 돼요. 최대한 빨리 발견해서 신고하는 편이라 구조율은 90% 이상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신고를 많이 하는 건 저에게 큰 의미는 없어요.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렸다는 것만 생각하는 거죠. 2021년에는 공적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어요. 상을 받아서 내 활동을 알리고 싶은 것은 전혀 없고 제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효과를 원하고 있는 거예요. 국가가 나를 인정해 준다면 각 부처나 경찰, 소방, 지자체 쪽으로 소리를 높여 정책 개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목표를 두고 활동하고 있고, 9월 5일에도 국제자살예방포럼에 초대받아 국회에 갈 예정입니다.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신고하면 저는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충분한 단서가 있을 때, 112에 신고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죽고 싶다.’는 시그널이 될 수 없고, 언제 어떻게 죽고 싶다는 내용이 일부 등장해야 해요. SNS에서 암시나 유서를 발견하면 먼저 정말 죽을 결심을 한 사람인지 아닌지 진위를 파악해야 합니다. ‘향후 내가 죽는다면’이라고 쓰면 결행 시점을 모르는데 ‘내가 내일이라도 죽는다면’이라고 쓰면 가까운 시일 내 결행할 가능성이 높아 전체적으로 시그널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다음 이 사람을 구조하기 위한 특정 단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은 신고 대상에서 배제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눈에 보이거나 옮길 것이라는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요. 마지막으로 임박성을 파악해서 신고 여부를 결정하죠. 자살 동기를 확인해 정신과 상담이나 입원 등 사후 관리까지 의견을 적어 신고하고 있어요.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신고하면 저는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SNS 신고센터가 아니라 충분한 단서가 있을 때 112로 신고해야 하고요.

살라고 말하기보다 살리기 위한 메시지를 찾습니다

쪽지를 보내서 대화해 보는 경우도 많아요.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한 목적이지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살 결심자는 힘과 용기를 심어주는 대화를 하면 거의 차단돼요. 상담을 다 포기한 사람들이거든요. 제가 그 사람과 아는 사이면 마음을 열 텐데 그냥 팔로잉만 된 사이니까 더 경계를 할 수 있죠. 초반에는 대상자에게 직접 전화해서 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결국 제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동기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죽을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보다 살리기 위한 메시지를 찾는 거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대화를 하며 자살 동기나 결행 시점, 결행 장소 등 정보를 특정하는 거예요. 대상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경찰에게 알려주면서 최대한 시간을 벌고, 구조한 다음에 상담 쪽으로 가도록 하는 것을 제1의 업무라고 생각하고 신고하고 있어요.

감시보다 예방에 성공적인 사회가 되길 꿈꿔요

자살 예방과 감시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방 측면은 결행 전에 살려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신고 건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자살 예방 정책이 실패하고 있구나’라는 아쉬운 부분이 있고요. 자살 예방 정책을 계속 체크하면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나가고 자살 동향을 더 깊게 알아가면 자살 예방 측면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국제자살예방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감시 부분을 알리고 전 세계적으로 자살 예방 실패를 고려해 감시 활동으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꿈꾸는 미래는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것이에요. 청소년 자살률을 저하시키고 성인의 경우 돈에 얽매이지 않는 환경, 법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죠. 그렇게 된다면 점차 OECD 자살률 1위를 벗어나고 각 자치구에서도 힘을 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규진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지금까지의 신고 기록

지금까지 신고했던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자살 동향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신속하게 파악하고 내용을 전달하는 행동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해요.

• 두 권의 책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청소년의 자살 실태 이야기> <죽고싶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 두 권의 책에 살린 이야기를 담았어요. 책을 통해 자살 예방 기관이나 유관 기관에서 아이들이 자살하려는 이유를 파악하고 정책 마련에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거예요.

• 국무총리 표창

국무총리 상은 상 자체의 기쁨보다 ‘내가 더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구나’의 기쁨이 더 컸고, 나를 강인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어요.

20년 간 매일 쉴 틈 없이 자살 신고를 이어온 유규진 님. 그가 바라는 것은 신고할 일이 줄어드는 사회, 힘든 이들이 결심을 하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입니다. 자살 예방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지요. 우리의 작은 관심이 더해지면, 그가 더이상 매분 매초 인터넷을 살펴도 되지 않는 세상이 더 빨리 올 수 있을 겁니다.

내 페이스대로 그려가는 내 길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페이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거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싶어요."

최고요 나이키 스토어마케팅 담당

이어지는 삶 속에서 새로 발견한 것

“나만의 목표를 갖고 작은 시도를 계속 해보는 게 중요해요”

박찬종 크리에이터, 패러사이클링 선수

일 잘 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 일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할지보다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강지연 작가

하고 싶은 일도 휴식이 될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게 아닌, 내가 정말 만족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어요.”

류석 온라인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