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지 작가는 일상을 사랑하기 위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기록을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작가가 기록하는 것들은 너무 사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작은 것이라도 오늘을 잘 기억하면, 내일을 기대하고 싶어진다고 말하죠. 일상에 밑줄을 긋는 마음으로 자주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적는다는 작가에게 지금 이 순간, 일상의 행복을 잘 채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오늘의 일과와 의무 사이에서
틈틈이 행복해지기
플레이라이프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내가 쓴 시간이 곧 나라는 생각으로 걷고, 쓰고, 마시는 사람, 에세이 작가 김신지입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제철 행복』에는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제철 음식, 제철 과일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때에 맞춰서 지금을 놓치지 말고 누려야 하는 제철 행복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쓴 책인데요. 그래서 철마다 어떤 일들을 하면 좋을지 소개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어서 계절마다 안부를 보내는 마음으로 그런 부제를 붙여봤습니다.
『제철 행복』에서 플레이라이프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구절이 있다면 어느 부분인가요? 이유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행복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찾은 방법은 두 가지. 오늘의 일과와 의무 사이에서 ‘틈틈이’ 행복해지기, 그리고 앞날에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기. (…중략…) 예전의 나는 아무것도 심지 않은 자리에 무엇이 나길 기대했던 걸까. 나를 위한 시간을 미리 심어두어야 그 자리에 어떤 기쁨이 나는지 볼 수 있는데도.” -『제철 행복』 中, 곡우 편
책 출간 후에 ‘그래서 제철 행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는데요. 그 팁을 적은 것이 이 부분이라 골라봤습니다. 퇴근을 늦게 했다 하더라도 그 길에 남은 하루를 그냥 버려둘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던가, 잠깐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다던가 하는 식으로 나에게 시간을 챙겨주는 거죠.
앞서 읽은 내용에서도 말했지만 제철 풍경을 만나러 가려면 미리미리 ‘여름이 가기 전에 이걸 해 봐야지’, ‘올 가을엔 꼭 어딜 가 봐야지’처럼 이런 시간을 비워두면 나를 위해 그때 새로운 행복이 자라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모음, 기록
작가님 글의 공통점이라면 일상의 어떤 순간을 굉장히 세밀하게 잡아내신다는 점인 것 같은데요. 기록을 할 때 최대한 자세히 기록하려고 하시는 편인가요?
자세히 적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결국 기록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싶은지 선별해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을 적을 수도 없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기록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 중에 나는 어떤 걸 기억해두고 싶은 사람인지 순간을 고르게 되잖아요? 저한테 의미 있는 어떤 순간이나 풍경이나 그런 걸 골라내서 적는 편인 것 같아요.
일부러 나쁜 기억은 기록하지 않는다는 분들도 있는데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좋고 나쁘고를 가려서 기록하지는 않지만 안 좋은 기억이나 감정은 ‘감정 일기’를 쓰면서 주로 쓰게 되는 것 같은데요. 사실 이런 기록들은 그 디테일을 적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들었던 기분 나쁜 말 혹은 친구와의 관계에서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같은 것에 대해 디테일하게 묘사해서 적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 일기를 쓰는데요.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하는지? 혹은 이 일을 벗어나거나 극복을 하기 위해 어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지 같은 과정을 주로 적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감정 일기를 적어보면 비슷한 상황이 오거나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과거의 제가 적어둔 감정일기가 도움이 되더라고요. 한 번 시행착오를 겪어본 것을 기록해둔 것이니까 일종의 ‘오답노트’처럼 활용할 수 있는 거죠. ‘이때 이렇게 했더니 결국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혹은 ‘해결은 됐지만 내 마음은 찜찜했지’와 같이 이런 기록을 남겨두면 지금 일어나는 일에도 도움을 받을 수가 있어서 감정 일기를 쓰실거라면 이런 식으로 써 보시는 걸 추천 드려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일의 기쁨
작가님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나요? 그때의 기록에는 어떤 내용들이 주로 적혀 있었나요? 특히 많이 사용한 단어가 있나요?
‘시간’이라는 단어가 많았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말들을 많이 썼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기록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던 무렵도 비슷한 시기였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도 못 말리고 뛰어서 출근했다가 하루 종일 야근하고 밤 9시, 10시에 퇴근을 하고 나면 오늘 하루가 얼마 안 남아 있잖아요. 그때 ‘아, 오늘도 너무 바쁜 하루였어. 별 볼일 없는 하루였어.’라는 식으로 제 하루를 뒤로 치워버리듯 여기는 게 싫더라고요.
그때 기록을 시작한 이유도 ‘그래, 오늘 뭐 했는지 일기라도 써보자.’라는 마음으로 적기 시작했던 거였어요. 그때는 그냥 짤막하게 5년 다이어리에 몇 줄 적는 게 다였는데 나의 이야기로 몇 문장을 적어본다는 것 자체가 ‘오늘 하루가 허무하지만은 않았구나.’라는 위안이 됐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치면 아무것도 하기 싫기 마련이죠. 기록조차 할 수 없는 힘듦이 찾아올 때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나요?
사실, 너무 지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쉬면서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있어도 되나?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럼 안되는 건 없거든요. 많이 지쳤다는 생각이 들면 침대나 소파가 충전기라고 생각하고 딱 붙어서 ‘나는 지금 충전 중이야’ 이런 마음으로 한동안 누워있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누워있다 보면 신기하게 또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순간이 오는데요. 그 순간이 오면 나가서 걷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내 공간, 내 집 밖으로 나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는 거죠. 운동하는 사람, 산책하는 강아지 이런 것들을 보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회복하는 감각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기력이 없다 싶을 때마다 충분히 충전한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곤 합니다.
나를 데리고 나간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특히 날이 좋을 때는 내가 나를 의식적으로 끄집어내서 데리고 다닐 필요가 있어요. 데리고 다니면서 지금 계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맛있는 것도 먹여주다 보면 나에게 잘해주는 방법을 조금씩 익히게 되는 것 같아요.
산책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산책의 좋은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내가 하는 고민이 집 밖을 나서기 전보다 작게 느껴지는 효과! 어떤 생각이나 고민이 많을 때 가만히 앉아서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면 고민이 점점 더 커지고,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어올 여지가 없어지는데요. 그럴 땐 일단 나가서 걸으며 근육을 쓰다 보면 뇌가 자극되면서 생각의 전환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방 안에서 혼자 생각할 때는 당장 이 일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하는 것 같지만 집 밖을 나서서 다른 사람과 자연, 동물을 보다 보면 나도 이 세계를 이루는 아주 작은 일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기록이 진해질수록 허무함은 희미해진다
기록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좀 더 애틋하게 여기게 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일기장의 첫 번째 효용 중 하나인데 날짜를 보는 순간 오늘 하루가 단 한 번 밖에 적을 수 없는 날짜라는 걸 인지하고 뭔가를 적어 내려가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힘들고 고단했던 시기에 기록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허무함이 옅어지는 것이었어요.
내가 오늘 하루를 멀쩡하게 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지냈는지가 적혀 있으니까 ‘그래도 오늘 나 수고했다’ 이런 생각도 들죠. ‘이때는 바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상에 소소한 행복들이 있었네?’라는 것도 알게 돼요. 시간을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졌고요.
일기쓰기나 기록하기를 도전했다가 매번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작게 시작하기. 기록에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 저에게 제일 많이 털어놓으시는 고민 중 하나도 꾸준히 뭔가를 기록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사실 그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일기든 기록이든 뭔가를 시작하실 거라면 하찮게 시작하기를 추천합니다. 3년 일기장이나 5년 일기장을 사서 ‘매일 딱 한 줄씩만 적어 봐야지’라거나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사진 한 장, 글 한 줄만 올려보자’와 같이 아주아주 작은 목표로 시작하는 거죠. 이게 익숙해지고, 어라? 나 생각보다 꾸준하네? 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조금씩 양을 늘려보세요.
기록장인 작가님께서도 매일 일기를 쓰시나요? 여름 방학 일기의 날씨처럼 빠지지 않고 적는 내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촬영을 위해 가져온 제 일기장을 펼쳐봤는데 일단 4일치가 밀려 있더라고요. (웃음) 기록을 꾸준히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완벽주의로 인해 자책을 하거나 스스로를 나무라게 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이렇게 되면 기록이 숙제처럼 느껴져서 더 하기 싫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록을 할 때는 내가 나를 좀 봐주면서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밀려도 돼, 밀릴 수도 있지.’ 이렇게요. 너무 완벽하게 하는 것에 집착해 아예 안 하기보다 조금 밀리고, 빠트리더라도 기록을 계속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달에 한 번 밖에 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기록한 그 하루는 남은 거니까요.
빠지지 않고 기록하는 것은 사소하지만 오늘 하루 날 웃게 하거나 행복하게 했던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인데요. 저는 이걸 ‘행복의 ㅎ 줍기’라고 부르는데요. 아무리 별로였던 하루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분 좋았던 일이나 순간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기록은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기록을 작가님만의 언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미래의 나에게 미리 부쳐두는 편지나 선물 같은 것. 그래서 5년 일기장을 쓸 때 ‘오늘은 뭘쓰지?’라는 고민이 들면 바로 아랫줄을 봐요. 1년 후 오늘의 나는 ‘어떤 것을 재밌어 하고 의미 있어 할까?’를 생각하는 거죠.
작가님에게 ‘마음 성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나에게 잘해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 남이 나에게 잘해주기 만을 바라고 있던 때에는 삶이 좀 팍팍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나에게 좀 잘 해 줘야지’라고 생각하고, 아까 말한 것처럼 별것 아니지만 산책을 나간다던가, 좋아하는 걸 먹거나 하면서 나에게 잘 해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갈 수 있었어요.
마음 성장이라고 했을 때 뭔가 거창한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작게 쪼개서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상태여야 그걸 마음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