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복잡하고 뭔지 모르겠는 안개 속에 있을 때 힘든 것입니다. 이게 무엇인지, 왜 힘든 것인지 잘 정리가 되고 잘 보이면 그것 자체로 해소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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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감정을 느껴서 마음이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으로 상황이 정리되고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되는 순간 감정이 차분해지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단어의 의미대로 ‘바람직하지 못한’ 혹은 ‘옳지 않은’ 감정이 있을까요? 아마도 설명할 수 있는 감정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아파도 내 의지와 바람과는 상관없이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임을 알고 또 그것이 아주 그렇게 당신 탓인 것은 아님을 부디 알고 당신이 누군가에게 거대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낮아진 외현적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해 기이하게 커진 자의식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실패에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해도 그 기분이 당신의 어떤 측면도 감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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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안 되는 이유가 내 탓이었을리는 없습니다. 하필 걸려 넘어질 만한 돌부리가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딱 그만큼의 일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럴 리가 없어',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너무 불공평해', 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데만 머문다면, 우리는 영원히 스스로에게 붙인 실패의 딱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도 없지요.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우아하게 실패하는' 방법일 겁니다.
고통의 영역에 있던 것들을 불편함으로 재분류하면 고통의 전체 영역이 줄어든 만큼 안정감이 증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 편안함에 길들어 일상의 많은 일들을 고통의 영역으로 치환해서 급히 해결할 문제로 인식하면, 작은 흔들림에도 ‘생존 센서’가 켜져서 강력한 해결책을 꺼내 든다. 외부와 내부 환경 변화의 센서도 매우 예민해진다. 내면의 평화로움과 조화로움을 유지하기가 아주 어렵다. 1킬로그램의 변화를 감지하면 되는 저울의 눈금이 1그램의 변화에도 휙휙 흔들리는 작은 스케일의 저울로 바뀌었다고 상상해보자. 세상을 보는 관점은 시장에서 쓰는 큰 저울이면 되는데, 요리할 때 소금 같은 양념을 계량하는 전자저울로 바꿔서 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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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 위험에 대응하라는 신호입니다. 반대로 불편은 나의 생존까지 위협하지는 않는 것, 그래서 견뎌내면 될 문제입니다. 지금 나는 불편과 고통을 잘 구분하고 있나요?
정도 이상의 고통을 억지로 참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불편함을 고통으로 인식할수록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고민의 무게만 더 늘어갈 뿐입니다. 고통은 큰 눈금의 저울로 재세요. 불편을 그저 불편함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안정감은 증가하고, 고민은 줄어들 것입니다.
저한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어요. 긍정과 부정의 단계를 폭망부터 대박까지 일곱 개로 칸을 나눠 부정과 긍정 구간으로 결과를 구체적으로 적는 거죠. 실은 제가 원래 아주 부정적이고 불안수치가 높은 사람이라 그걸 해소해보고자 만든 방법인데, 써보면 부정이나 긍정의 끝에 해당하는 일은 실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어요. 극단적인 상태에 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 가장 극단적인 부정은 ‘영원한 불합격’이에요. 가장 대박은 ‘단번에 합격’이고요. 이 둘은 사실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린 마치 그럴 것처럼 걱정하고 불안해하죠. 결국 가운데 놓인 타협 칸의 좌우에서 결과가 나오거든요.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듯이 생각도 그래요. 극단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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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그 어떤 사건도 상상하는 만큼의 행복을 주지 못하고, 걱정하는 만큼의 불행을 가져오지 않는다.” 프랑스의 사상가 라 로시푸코의 말입니다. 우리의 불안은 실제 사건보다는 먼저 앞질러 가는 생각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박'이 나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폭망'할 확률도 극히 낮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상상하며 현재를 불안에 빠트릴 이유가 없는 이유입니다.
막연한 불안이 올라올 때는 최악부터 최고까지, 상상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일단 적어보세요. 눈으로 확인하면 생각의 실체는 더욱 분명해지고, 불안은 작아집니다.
감정에 스위치가 있다면 고민할 때마다 스위치를 꺼버리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는 발생과 통제를 나눠서 생각해보자. 지금 일어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이보다 일단 발생한 감정을 잘 조정하고 통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라는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방파제 세우기’라고 부른다. 고민에 집중하기 위해서 내 마음의 해안가에 방파제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야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커다란 감정의 파도가 고민의 터전을 쓸어가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려면 내 행동을 통제하고,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패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감정을 경험하면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감정과 뒤섞인 생각들이 내 의식을 통과하게 한다. 그러면 마치 필터에 걸러지는 것처럼 감정과 생각이 어느 정도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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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는 감정 자체가 더 큰 불안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불안해 하지 마, 라고 자신에게 강요해봤자 더 불안해지는 것처럼요. 첫번째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뒤이은 불안은 불필요하고 실체 없는 감정입니다.
이럴 때는 발생과 통제를 나누어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미 발생한 것, 어쩔 수 없는 감정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에 더 집중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지금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스스로의 자동적인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의식이라는 필터를 통해 감정에 거리를 두고 바라봅니다. 그러면 감정이 더 큰 파도로 몰아치지 않고, 2차 3차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을 걸러낼 수 있게 됩니다. 방파제의 역할이 그러한 것처럼요.
불안은 잘 이용하면 인간이 계속 무언가를 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누구는 이 불안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는 거죠. 불안에 매번 져서 불안이 예상되는 것만으로도 또 불안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불안한 사람들은 모호하고 막막하니까 불안한 거에요. 불안할 때는 일을 잘게 쪼개야 하는 거예요. 하나씩 해치울 때 마다 에너지가 생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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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은 다 쓸모가 있다고 합니다.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사고를 쳤겠지요. 그리고 지금보다 덜 노력했을 것이고요. 불안이 알아서 적당히 느껴지면 좋을텐데, 그 조절이 정말 어렵습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클 수록 불안은 비례해서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버리려는 노력도 불안을 다루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인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얼마든지 있다.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긍정적 감정은 자기 합리화와 기만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때도 있고 자기 성찰의 부재를 뜻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성찰이 깊고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안하고 흔들리게 된다. 이럴 때의 불안은 건강한 불안, 건강한 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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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분노, 건강한 불안, 자연스러운 슬픔이 존재하는 것처럼 해로운 긍정도 있는 것이지겠요. 무엇이든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관이라도요.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잘못을 저지르고도 씩씩하고 밝다면 아마 주변 사람들이' 꼭 필요한 분노'를 느낄지도 모릅니다.
‘정서 명명하기’라고도 하는 감정라벨링(affect labeling)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내가 ‘불안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언어화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성적인 활동이다. 이름을 붙이면 감정은 본능의 영역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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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리는 경보음이라서 알아차리는 순간 소명을 다하고 알람시계처럼 꺼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나를 자책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지만 '화가 나네', '후회되네', '걱정되네'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감정라벨링, 오늘부터라도 한번 실행해봅시다. 정말 효과가 있는지.
특정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누구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무기가 전쟁에서 이길 만큼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대신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들을 짚어보며 함께 대화를 나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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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에게 실전에서 떨지않는 비법을 물어보면 끊임없는 연습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르겠으나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익숙해지기'인 것이지요. 불안은 우리를 성실하게 만들어줍니다.
하루 종일 소음. 사람의 말소리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 생활에 너무 익숙해 지다보면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너무나 익숙해져서 생각을 차근차근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과정을 너무 지루해하고 못 견뎌 해요. 이런 사람은 결국은 충동적이고 욕구조절을 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무언가를 갖고 싶은 욕구마저도 지연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침묵을 즐길 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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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기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작동 방식만을 두고 보자면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돌리면 오래 못 가 고장이 나고, 중간에 닦고 조이면서 관리를 해 주어야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쉴 때도 휴대전화를 보며 눈과 손가락을 혹사시키는 우리는 제대로 된 멈춤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휴식을 찾아 깊은 산속을, 탁 트인 바닷가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5분씩이라도 모든 감각의 버튼을 끄고 조용히 휴식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정은 복잡하고 뭔지 모르겠는 안개 속에 있을 때 힘든 것입니다. 이게 무엇인지, 왜 힘든 것인지 잘 정리가 되고 잘 보이면 그것 자체로 해소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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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감정을 느껴서 마음이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으로 상황이 정리되고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되는 순간 감정이 차분해지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단어의 의미대로 ‘바람직하지 못한’ 혹은 ‘옳지 않은’ 감정이 있을까요? 아마도 설명할 수 있는 감정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