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데도 지치지 않고 언제나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 일의 종류를 자주자주 바꿀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그 능력을 ‘voluntary switch’, 즉 자발적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자발적 전환에 능한 사람은 번아웃과 관련된 무기력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반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한 가지 일만 꾸준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볼 땐 마치 꽤나 심지가 굳은 인물 같아 보여요. 그러나 심리학자인 저는 그의 상태가 걱정됩니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고통을 누르는 과정일 테니까요.
playlife talk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꼭 옳은 건 아니었습니다. 우직하게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사실 머릿속에서는 지루함과 온종일 싸우는 중일 겁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데 드는 에너지 때문에 더 쉽게 녹초가 되어버리는 거죠.
어떤 이는 하나의 책을 완독하는 대신, 이 책 저 책을 펼쳐놓고 그 때 그 때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는군요. 그가 터득한, 독서 생활의 활기를 유지하는 방법일 겁니다.
습관적 미루기는 게으른 것도, 버릇이 나쁜 것도,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할 일을 꾸물거리는 사람은 대개 양심적인 이들이다. 뭔가를 잘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트레스가 극한에 이를 때까지 일을 최대한 미뤘다가 마지막 몇 시간이 남았을 때에야 안달복달하며 결과가 끔찍할 거라고, 난 정말 멍청하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이 일에 대해 생각하거나 또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온갖 것에 관심을 쏟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한다. 정신적·신체적·감정적 자원을 너무 많이 소비한 탓에 우리의 몸이 이런 부적응적 패턴을 알아차렸을 즈음에는 이미 번아웃에 이르고 만다.
playlife talk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요. 그런데 아무 것도 안 했는데도 지칠 수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미룰 때지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줄곧 마음 한켠을 짓누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지는 거죠.
완벽주의자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충 하질 못하니 시작부터 버겁지요. 어렵겠지만 대충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하면서 수정해도 되니까요. 엉성한 결과물이라도 있으면 고치면서 나아갈 수 있지만, 아무 결과물도 없으면 수정할 수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열심히 산다는 건 진취적인 행동이 아니라 철저히 방어적인 행동이었다. 열심의 증거를 강박적으로 쌓고 그 증거로 쌓은 옹벽 뒤에서 안도감을 느끼려 하지만, 불안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눈에는 자꾸만 증거의 탑이 위태롭고 빈약하게만 보인다.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법한 조금 더 견고하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자 혈안이 된다. 그러다 보면 더욱 자신을 강하게 몰아세우는 쳇바퀴에서 내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멈춤은 곧 실패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더 고난도의 도전이라기보다는 더욱 철저한 방식의 회피였다.
playlife talk
'인고의 착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하고 고생한 만큼 보상이 올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지칭하는 용어인데요. 공부하는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가 덩달아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성공은 없겠지만, 엉뚱하게 스스로를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산다는 그 자체에만 몰두하면,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닿고자 한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도 모른 채로 달리는 상태가 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려워서 열심히 살면 뭐라도 되겠지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질문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말이에요.
근육을 무리해서 쓰면 육체적으로 피로감을 느낀다. 몸살이 나거나 근육이 다쳐 버리면 평소에는 문제없이 움직였던 간단한 동작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정신적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무리하게 사용해서 소진해 버리면 피로감과 고단함이 높아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크게 일어난다. 그뿐인가. 감정을 조절하거나 좋은 판단을 내리거나 욕구를 절제하는 능력 또한 순간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일컬어 ‘자아고갈’이라고 하는 것이다.
playlife talk
근력 운동을 하고 난 뒤에 적절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다들 아는 상식이지요. 반대로 마음에도 충분한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잘 잊히는 것 같습니다. 나약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먼저 지배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고꾸라진 마음을 억지로 일으켜봤자, 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을 뿐입니다. 몸을 혹사하는 운동은 근육을 키우는 게 아니라 손상시키는 것처럼요. 내 마음의 효율을 유지하려면, 마음의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의 템포와 걸음을 맞추지 못한다. 고립된 느낌, 묘한 느낌이다. 그러니 하루가 등을 돌리는 날이면 불교 작가 실비아 부어스타인의 조언을 따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아주 아끼는 아이를 대하듯 말한다. 얘야, 우리 아가. 사랑스러운 아가야. 잘했어. 자, 자. 산책을 다녀오렴, 목욕을 해. 드라이브를 다녀와. 케이크를 구울까. 잠깐 낮잠을 자고 내일 다시 하면 되잖아.
playlife talk
매일이 내 편 같다면야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과 담금질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 날, 냅다 드러누워 버리고 싶은 날이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요.
그런 날에는 일단 일어나 앉는 것만으로도, 나를 잔뜩 칭찬해줘도 좋겠습니다. 응석도 좀 부리고요. 어른이 되어도 언제든 응석을 부려도 좋을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이니까요.
고기가 당기는 것은 몸이 고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단백질, 칼슘, 철분이 필요하니 고기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먹고 싶어서 먹는 거지. 자기도 모르게 멍때리고 있는 순간이 늘어난다면, 몸과 마음이 그걸 필요로 한다는 것 아닐까? 우리 시대에 소진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는 것은, 모두에게 멈춰 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멍때리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저 커피값 정도의 작은 사치일 뿐.
playlife talk
서둘러 해내야 한다는 압박, 뒤처질 거라는 두려움,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 쫓기듯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멍때리기만큼 비효율적으로 여겨지는 단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하루쯤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요. 배터리도 완전히 방전된 후에는 수명이 짧아집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탈인 우리에게, 가끔은 작은 사치를 허용해 줍시다.
디지털 기술들의 특기는 우리에게 무얼 하지 않고 있는지 상기시키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빼놓고 놀고 있는지, 누가 우리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떤 뉴스를 읽지 않고 있는지 일깨운다. 디지털 기술들은 우리가 잠시 의식을 내려놓은 채 우리를 지켜주고 재생시키는 필수 활동인 승화와 억제를 실행하게 놔두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를 그 반대로 이끈다. 끊임없이 알림의 세례를 보내고, 잊은 것들을 상기시키고, 상호 작용을 요구한다.
playlife talk
우리는 더 이상 즐거워서가 아니라, 내가 뭘 놓쳤는지, 혹은 얼마나 뒤처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셜 피드를 탐색합니다. 그런 활동에는 퇴근이나 주말이 없죠. 일주일 24시간 내내 시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SNS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확인했던 그 소식들은 정말 내게 꼭 필요했던 것일까요?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 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playlife talk
잠시라도 노력을 멈추면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멈춤이나 휴식은 항상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아도,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도, 나는 나 자체로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꾸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만이 나를 번아웃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방책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만약 당신의 직책이나 임무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갑자기 일의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분명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태라면 무작정 일을 지속하기보다는 일시정지의 시간을 가지면서 의도적으로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에서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
playlife talk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황을 겪기 마련이죠. 식곤증이 찾아온 눈꺼풀처럼, 가라앉는 의욕을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해보지만 허사입니다. 일에 대한 욕심 하나로 치열하게 살아온 당신이라면 이런 기분이 더 당황스러울테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무리하다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정하는 경우도 생기죠.
이럴 때일수록 잠시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돌보면서, 업무에 매몰된 자신을 환기하는 순간이 필요한 거죠. 오늘만 일하고 말 게 아니라면, 일시정지 버튼을 시의적절하게 누를 줄 아는 것도 노련한 현대인의 기술입니다.
playlife talk
우리는 그르치지 않으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너무 많이 애쓰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극복해야 한다며, 이미 힘든 자신에게 무리한 노력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쳤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해왔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속도를 줄이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데도 지치지 않고 언제나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 일의 종류를 자주자주 바꿀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그 능력을 ‘voluntary switch’, 즉 자발적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자발적 전환에 능한 사람은 번아웃과 관련된 무기력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반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한 가지 일만 꾸준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볼 땐 마치 꽤나 심지가 굳은 인물 같아 보여요. 그러나 심리학자인 저는 그의 상태가 걱정됩니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고통을 누르는 과정일 테니까요.
playlife talk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꼭 옳은 건 아니었습니다. 우직하게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사실 머릿속에서는 지루함과 온종일 싸우는 중일 겁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데 드는 에너지 때문에 더 쉽게 녹초가 되어버리는 거죠.
어떤 이는 하나의 책을 완독하는 대신, 이 책 저 책을 펼쳐놓고 그 때 그 때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는군요. 그가 터득한, 독서 생활의 활기를 유지하는 방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