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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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큰 행복도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적응력이 좋은 우리 인간은 그 같은 큰 기쁨에도 곧 익숙해지기 때문이지요.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으려면, 일상에서 소소하게 자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감사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행복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발견하는 것이니까요.
불행의 요인들을 줄이는 것은 마치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으로 샤워물이 덜 차가워질 수는 있지만 더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이 샤워기의 찬물 꼭지와 비슷하다. 물을 덜 차게, 즉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지만,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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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고통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덜 차가운 물이냐, 더 차가운 물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 찬물 꼭지를 완전히 잠가 버릴 방법도 없습니다.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만들 방법은 찬물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더 충분히 부어주는 데 있습니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행복의 요소들을 더 자주 공급해 주는 일 말입니다.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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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알아낸 사실은, 사람의 뇌는 음식과 사람, 이 두 가지에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생존할 연료를 얻고,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 생존할 확률을 높여 왔기 때문이지요.
부와 명예, 좋은 직업...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던 요소들은 사실은 부차적인 것일수도 있습니다.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진실하고 충만한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들을 맺는 일에 비하면요.
또 다른 고전적인 심리학 연구에서는 대학원생들의 컴퓨터 화면에 지도교수의 사진이 잠깐 스쳐 지나도록 했다. 그 뒤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스스로 평가하라고 했다. 교수의 사진을 본 대학원생들은 사진을 보지 않은 동료들보다 자기 아이디어를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누군가 위에서 자신을 평가한다는 시선이 느껴지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긴장하고 위축하게 된다. 이를 통찰한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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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에 많이 좌우될수록, 행복감은 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싫어하진 않을까를 자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불행하게 느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스스로는 좋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들 별로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지요. 상황은 그대로인데도요.
때로는 남의 말에 적당히 신경을 끌 수 있어야 덜 불행합니다. 나만의 줏대를 지킬 줄 알아야 더 행복합니다.
우리는 지능이 뛰어난 천재들만 길러낼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의 천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선호는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후천적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과 어울리면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면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해진다. 우리가 서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자식의 학벌이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의 잔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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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이 명확할수록, 불안과 고민은 줄어듭니다. 내가 선택할 것들의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거나 주저할 일이 적지요. 스스로의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지도 않습니다. 무엇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의 천재가 되어야겠습니다. 더 이상 다른 이의 삶을 곁눈질하지 말고요. 좋아하는 것을 많이, 더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쌓아가는 것. 우리 행복의 힌트는 거기에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보다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분석해보려는 시도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를 만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고, 지루한 일도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비결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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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마음가짐이 강조되곤 합니다. 우리가 더 풍족하고, 더 여유로워진다고 해서 꼭 행복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겠죠.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행복하고 감사한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물론 중요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바꾸는 것만으로 훨씬 더 쉽게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요? 혹은 그런 마음가짐을 갖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더 불행해진다면 어떨까요. 내 일상을, 보다 만족스럽고 건강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행복의 기술일 겁니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과거의 즐거움이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과거의 고통이 지금 생각하니 축복이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 혹은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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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만족스러움, 충만함 같은 일시적인 감정을 곧 행복과 치환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넘어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순간의 기분보다 더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지금의 고통이 영원히 고통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행복은 쾌락과 완전히 등치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불쾌, 때로는 고통이 혼재하며 완성되는 모자이크 같은 것입니다.
의미에는 무겁고 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가벼운 의미도 존재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는 것, 연로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거는 것, 맡겨진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는 것,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것, 식사 기도를 하는 것,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 화초에 물주는 것,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 등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경험되는 의미다. 자기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의미가 아니다.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있듯이 작고 확실한 의미 ‘소확의(小確意)’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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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시기가 있습니다. 삶에서 기대할 것도 없고, 특별히 삶을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때가. 크고 특별한 것만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일상을 구성하는 소소한 순간들도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주 작지만 분명한 장면들 말이에요. 거대한 성취나 목표로만 내 삶의 의미를 정의한다면, 우리는 간헐적으로만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곳곳의 작은 의미들을 더 많이 발견할수록, 우리는 더 자주 행복해지겠지요.
재미는 행복을 만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미 추구는 관심의 초점을 비정형적인 감정 상태(행복해지고 싶다)에서 능동적인 경험(더 재미있게 놀고 싶다)으로 옮겨서 행복의 청사진을 제공한다. 즐거움을 느끼는 동안에는 항상 행복하므로, 더 즐거울수록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행복이 직접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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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감정의 상태라면, 재미는 구체적인 경험입니다. 행복을 구축하는 것은 막연하고도 지난한 작업일 테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당장 오늘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시도죠. 그만큼 행복이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에, 행복 그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행복으로부터 어긋날 뿐입니다. 늘 행복할 수 없는게 당연한데도,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더 민감하게 느끼고 불행해지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붙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재미는 재미있잖아요!
사람들은 항상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면 자신의 행복도가 크게 바뀔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사건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건이 자신의 장기적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끔찍할 것 같고 치명타가 될 것 같은 사건들도 대개는 막상 닥치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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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큰 좌절을 겪은 사람들의 행복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당장은 괴롭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사건이 행복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인 '회복탄력성', 실패와 좌절로부터 회복하는 능력 때문이겠지요. 아마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도, 우리에게서 행복을 영원히 앗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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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큰 행복도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적응력이 좋은 우리 인간은 그 같은 큰 기쁨에도 곧 익숙해지기 때문이지요.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으려면, 일상에서 소소하게 자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감사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행복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발견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