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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의 퇴사, 초보 팀장인 제 잘못인 것 같아 괴로워요.

지난 해 저는 한 팀의 리더가 되었어요. 리더를 맡아 조직과 동료를 위해서 쉴 틈 없이 달려왔습니다. 성과도 물론 좋았고요. 에너지가 바닥나도 끝까지 짜내서 일했습니다. 1년에 3번 쓴 휴가마저 노트북을 들고 가서 일을 하곤 했어요.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좋은 리더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저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고,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 명 중 세 명이 퇴사하는 거면 문제가 있었던거 아니냐, 네가 빡세게 했던거 아니냐... 이런 말을 들으니 전부 다 제 잘못 같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임원들과의 관계입니다. 저의 조직에 두 분의 임원이 계신데, 두 분에게 정확한 저의 의견을 전달하지 못했고 급기야 한 분은 크게 화를 내시며 제게 등을 돌리셨어요. 모든 게 제 잘못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마음이 불안하고 힘듭니다.

일을 할 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맞는지 의심이 들고, 외부인을 만나 이야기하기가 두렵습니다. 기억들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습니다. 도망가고 싶습니다.
감자 처음 리더가 된 초보 팀장
카운슬러 김혜령의 편지

안녕하세요, 감자님. 리더란 그 자체로 부담이 큰 자리이기에 성과와 상관 없이 너무 너무 애쓰셨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에너지를 쏟았고 또 쏟고 계실까요. 부담을 모두 내려놓고 편안하게 이완할 수 있는 휴식을 선물하고 싶네요.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 두번째 화살

현재 감자님을 괴롭히는 주된 괴로움은 ‘내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비롯한 어마어마한 자책감이 감자님을 짓누르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괴로움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걸 다했는데 무엇을 잘못한 걸까’라는 혼란스러운 마음이에요. 자신의 힘을 남김없이 다 쓰고도, 아니, 바닥까지 짜내서 썼는데 원치 않는 상황들이 펼쳐졌지요. A를 기대했는데 A’도 아니고 Z가 나타난 셈이에요. 당황스럽고 억울하기도 할 것 같아요.

 

나의 노력이 원치 않은 결과로 나타날 때 누구나 좌절감을 느낍니다. 이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화살이에요. 우리는 기대하고 노력한만큼 그에 대한 결과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기쁨일 수도 고통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첫번째 화살에서 그치지 않고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자님의 사연에서는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첫번째 원인은 ‘결과를 내가 다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으니 당연히 합격해야 해’라거나 ‘내가 최선을 다한만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줄거야’와 같은 무의식적인 믿음이죠. 이를 강하게 붙들고 있을수록 눈 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됩니다. 나의 영역은 내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입니다.

 

두번째로는 단지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라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잘못된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설령 업무에서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깎아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감자님은 최선을 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평가를 내면으로 가져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존재인 것처럼 느끼고 있어요. 어떤 행위를 자신과 동일시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오류입니다.

 

현재 오랜 시간 직장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 일의 세계가 어마어마하게 커져버린 게 아닐까요. ‘나=일’의 상태가 되어 내가 일을 잘하지 않으면 못난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지요. 이로 인한 두 번째 화살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일에서 분리되는 시간을 확보하세요

우선 ‘일=나’라는 동일시를 깨야 합니다. 업무와 하나가 된 상태로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주변 분들은 이미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쉬엄쉬엄해’ 같은 조언을 해 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뿐만아니라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이 몰려오거나, 이유 없이 아프기도 하는 등 몸에서도 적신호를 보내왔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직장 일에 매몰되어 있어서 오로지 현재 눈에 보이는 상황들만으로 ‘나는 뭔가 잘못한 것 같아’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자책감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겠지요.

 

일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시간을 확보하세요. 퇴근 이후의 시간과 주말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휴식과 여가 시간으로 내어주세요. 나와 성향이 다른 친구와도 만나고,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짧은 여행도 하시고요. 일요일마다 나의 일상으로부터 도망을 가보는 겁니다.

 

이런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일하는 나’로부터 몇걸음 물러나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에요. ‘일로서만 나를 증명하려는 자신’, ‘일에서만 만족감을 찾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벽에 부딪힐수록 벽에서 떨어져 나와 시야를 넓힐 수 있을 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나’에 대한 정체성이 손상되지 않고 나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어요.

 

2. 타인의 선택은 타인의 몫으로 남겨두세요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팀원들이 퇴사를 한 건 급여나 처우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감자님 덕분에 빡세게 일해 본 경험과 성과를 내 본 경험을 토대로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지도 모르고요. 너무 힘들어서 나갔다고 하더라도 조직원으로서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 본 경험은 엄청난 심리적 자원이 됩니다. 중요한 건 그건 그들의 선택이라는 거에요. 우리는 누구도 타인의 선택에 대해 쉽게 판단할 수 없어요.

 

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화를 내고 등을 돌린 건 임원 그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행동이었을 거에요. 임원이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포지션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태도였을 수 있다는 거죠. 나의 영역은 내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입니다. 타인의 선택은 타인의 몫으로 남겨두세요.

 

확실한 건 감자님은 감자님의 능력치 안에서 최대치로 에너지를 쏟으셨다는 겁니다. 무언가에 남김없이 정성을 쏟아본 경험에는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제는 감자님 스스로를 손상시키지 않고 일을 해나가기 위한 재정비의 단계에 계시지 않나 감히 짐작해 봅니다.

 

초심자로 돌아가는 경험

처음 해 보는 운동을 배우거나 악기를 배워 보세요. 내가 결코 잘해낼 수 없는, 완전 초짜인 것을 경험해보세요. 내 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쌓으면서 결코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외부의 일들을 모두 내 뜻대로만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될 겁니다.

 

테니스, 클라이밍, 복싱, 골프, 축구 종목을 추천합니다. 관현악기를 배우는 것도 좋아요.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처음’ 이 되어 보세요. ‘잘 해내야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와 맘껏 서툴러도 되는 자신을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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