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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업무 등 일상 생활에서 트러블을 마주하거나 견디기 힘든 상황이 오면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으로 모든 생각이 귀결됩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저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힘든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와 같이 말이에요.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그렇지만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야지 어쩌겠어’라고 했는데, 저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게 아닌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책도 읽어보고, 강연을 들어보아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 보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는데 다 거짓된 말 같아서 몇 번 하다가 그만두게 됩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아서 항상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굴레에서 제가 벗어날 수 있을까요?
버섯돌이 공공기관 근무 중인 30대 직장인
카운슬러 김혜령의 편지

안녕하세요 버섯돌이 님. 자신과 삶에 대한 애정이 없고, 무기력하다면 하루하루가 너무 무거울 것 같아요. 억지로 시켜서 하는 숙제처럼 자신을 데리고 살아가는 게 꽤나 힘든 일상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삶의 의미는 찾아가는 것

삶은 원래 의미가 없는 게 맞아요. 다만 이성을 지닌 인간은 의미를 통해 살아가는 존재인지라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 갑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데에 무척 중요하죠. 버섯돌이 님이 경험하시는 것처럼 의미가 없으면 삶의 의욕이 없고,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헤쳐나갈 힘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했고요. 때로는 그 의미가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주입되기도 하지만 결국엔 자신만의 의미를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나치수용소에 수감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생존한 인물인데요, 그 곳에서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고찰하고 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로고테라피(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법을 만들게 돼요. 새롭게 삶의 의미를 모색하는 것으로서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왜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의미의 부재 때문에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의미를 찾아가는 그 자체가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미가 있기에 완성되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에요. 날 때부터 살아야 할 이유를 또렷하게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부정적인 자아감을 점검해 보세요

그럼에도 조금 살펴봤으면 하는 부분은 버섯돌이님의 자신에 대한 신념입니다. 자아감 혹은 자아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평소 의식하기는 어렵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 부정적인 자아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혹은 ‘나는 태어나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와 같은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면,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도 꽤나 어려운 일이 될테니까요.

 

버섯돌이 님에 대한 정보가 아주 한정적이기 때문에 쉽게 말씀드리긴 조심스럽지만 이 부분을 점검해보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부정적인 자아감은 아주 어린시절에 형성되는데 어린 아이는 상황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자신을 이해하는 자료로 삼아 자아감을 만들어 나가요. 이렇게 형성된 자신에 대한 감각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요.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다시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의미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자아감’이란?

자아감(sense of self)은 자신에 대해서 갖는 일관적인 평가 혹은 믿음입니다. 어린시절에 형성된 자아감은 비교적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의 개념이고 생각이기 때문에 충분히 수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음’ 자체가 되어보기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존재는 없습니다. 즉, 어떤 ‘의지’가 있어서 태어난 존재는 없다는 거죠. 길고양이도 들꽃도 마찬가지에요.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피어나고 자라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인간은 이성이 있고 자아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요. 그런데 의미를 찾는 것이 하나의 고통으로 더해진 경우라면 주객이 전도된 것과 같아요.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생각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를 통해 잘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을 내려놓고 감각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다시 말하자면 존재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경험입니다.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삶의 의미가 없이도 열심히 놀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렇게 그저 ‘살아있음’이 기쁨이 되는 경험을 만들어보세요. 그러기 위해선 신체의 감각을 활용해야 합니다. 듣고 보고 먹고 접촉하는 것을 통해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나에게 기쁨이 되는 것들을 제공해주세요. 내가 느끼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보고, 찾아 듣고, 만져보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자연과 교감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무 고민 없이 산과 바다를 오랜 시간 관찰하거나 숲을 걸으면서 발에 밟히는 흙의 느낌과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감각을 회복할수록 살아있는 그 자체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거에요. 생명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도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죽음 마주해보기 연습

앞의 방법을 통해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다음으로 권해드리는 방법은 죽음을 마주해보는 연습입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지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그렇기에 지금의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면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어요. 철학자 플라톤 또한 삶을 구제하기 위해서 ‘죽음을 연습하라’라고 말했지요. 스티브 잡스는 대학 연설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도구라고 말했고요. 인생에 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릅니다. 죽지 않고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면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방법은 단순히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체험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겁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고 유언장을 써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을 생생하게 상상해 보세요.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떠올려 보고 그 곳의 분위기와 냄새까지도 떠올려 보는 겁니다. 이 때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 느낌에 충분히 머물러 보세요. 만약 혼자서 시도하는 것이 어렵다면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죽음 명상’ 콘텐츠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나의 묘비명을 써 본다면

생을 마친 후에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묘비명을 문장으로 써보세요. 이는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어떤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충분히 잘 살아내었다면 그 삶은 어떤 문장으로 남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삶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과 행동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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