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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장은교의 오늘] 오늘의 나, 오늘의 너

‘오늘의 우리’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길고 느린 편지를 쓰고 싶다.

장은교 작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는 것 같)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는 데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당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뭘까. 스크린 타임이나 줄여볼까. 그러지 뭐. 원래도 일 년의 절반쯤은 계정을 비공개로 돌려두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까 하다가, 마음을 조금 더 굳게 먹어보기로 했다. 모든 게시물을 아카이브로 돌리고 피드를 텅 비웠다. 프로필에 “잠시 문을 닫습니다”라고 적었다. 홀가분했다. 근데 이건 마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야반도주하는 사람 같잖아? “잠시 문을 닫습니다” 옆에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를 덧붙였다. 그래, 갈 때 가더라도 다정함과 미소를 남기리. “인스타그램 앱을 지우시겠습니까” Delete. 2026년 4월 1일이 시작되는 새벽이었다.


내 일상은 달라졌을까. 그렇다. 갑자기 생산성이 폭발했다거나, 3개 국어를 하게 됐다거나, 매일 스쿼트 100개를 해내는 기적 같은 건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지만, 인스타그램을 지운 뒤 나는 ‘빈틈’을 돌려받았다.


잠깐의 멈춤,

멍한 순간,

공백,

아무것도 하지 않음,

아무 생각도 하려 하지 않음.


이 텅 빈 느낌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필요했구나. 그리운 줄도 몰랐던 것을 돌려받은 느낌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 남은 시간들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가 좋았다. 나의 완벽한 빈틈.

늘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섬에 혼자 있는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정보로부터 멀어져,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에서 혼자 노를 젓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처음이니까 괜찮지만 곧 외롭고 불안해질까. 소중한 관계들을 잃게 될까. 다정하고 매력적인 인친들의 아이디가 스쳐 지나간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갑자기 사라진 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벌써 저를 잊으셨나요?


늘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대학 때쯤까지는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초·중·고, 심지어는 유치원 동창까지 연락한다는 친구, 사회 이곳저곳에 아는 사람이 많은 발 넓은 친구, 모두와 둥글둥글하게 잘 지내는 친구, 하루에도 약속이 몇 개씩 있는 친구. 부와 명예, 지식보다는 넓고 원만한 인간관계가 가장 갖고 싶었다. 누군가와 불편해지거나, 친구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려웠다. 그건 일종의 무능으로 느껴졌다. 할 수 있다면 세상 제일의 동글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뾰족한 사람. 노력했으나 깊고 좁은 인간관계만을 남겼다.


직업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인간관계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직업이 기자였기 때문에 무조건 많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선’이었다. 낮이고 밤이고 최대한 많은 인맥을 쌓아서 어떤 일이 터졌을 때 물어볼 사람을 만들어 두어야 했다. 내가 맡은 분야의 깊은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들과 친해져야 했다. 기잔데,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해? 그것이야말로 “저는 무능합니다”를 선언하는 일 같았다. 학생 때의 인간관계가 숙제였다면,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일이었다.


그저 괴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을 제시해 준 사람들. 업무 관계로 만났지만, 어느 순간 인생 선후배나 친구 관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순간은 참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거세게 비판하는 기사를 써야 하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기사를 쓴 뒤, 냉소적인 손절의 메시지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대신 항변을 했는데, 곧 그 사람의 범죄 사실이 생생하게 적힌 판결문을 보게 되거나 비리 사실을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 친절하고 사려 깊게 이런저런 정보를 말해주던 사람이 뒤에서 “그 기자는 내가 완전히 포섭했어”라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듣기도 했다. 점점 누구에게도 깊이 마음을 주지 않고, 최대한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출입처(기자로서 담당하는 분야)를 옮길 때면, 매정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연락을 끊기 시작했다. 계속 연락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실망하는 일이 생기기 전에 거리를 두자고 결심하곤 했다. 모든 기자들이 그렇진 않다. 그것 역시 나의 뾰족함,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계에는 모두 색깔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인스타그램에서의 인간관계가 나는 좋았다. 흔히 인스타그램은 질투와 자괴감을 부추긴다고 하는데, 그런 비판에도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결된 관계들이 더 편하고 좋았다. 저 친구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네, 앗! 저 분은 교통사고가 있었구나. 어머, 셋째를 임신하셨다고요? 와, 저 벽돌책을 다 읽은 사람이 있구나. 하트와 댓글만으로 안부를 전하고 다정함을 건넬 수 있다니.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늘 서운함을 많이 샀던 나는, 인스타그램이 있어서 좋았다. 지연이나 학연, 어떤 소속 때문이 아니라 그저 취향만으로 맺어진 관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나는 인스타그램 속 나의 자아(personality)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 속에서 나는 친절하고 다정하다. 소소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잘 챙기고 나누며 응원과 위로, 축하의 말을 잊지 않는다. 피드 속의 내 모습도 현실보다는 낫다. 누군가의 비판처럼 ‘인스타그램은 인생의 하이라이트 편집본’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실수와 실패담을 더 많이 공유했지만 그것 역시 ‘편집’을 거친 것이었다. 인스타그램 속의 나는 실수도, 실패도, 분노도, 좌절도 모두 ‘적당히’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선을 지키며 하는 사람이다. 욱해서 실언을 내뱉고 후회하는 일도 없고(혹시 깊은 밤 이상한 메시지를 썼다가도 아무도 모르게 지울 수 있으니까),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에 지나치게 솔직한 얼굴을 들킬 일도 없으니까. 관리된 나의 정체성, 적당한 거리의 관계들. 만족스러웠다.


이런 관계는 건강한 것일까. 누군가는 “그건 진짜가 아니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모든 관계에는 다 다른 색깔이 있다고 믿는다. 꼭 옷을 다 벗고 서로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목욕탕까지 다녀올 수 있어야만 진짜 친구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친구는 기쁜 일이 있을 때 응원단장이 되어주며, 어떤 친구는 힘들 때 가장 먼저 달려온다. 어떤 친구와는 일 년에 한 번 생존 확인만으로도 충분하며, 어떤 친구와는 만나서 아무 말 없이 그저 각자 맥주잔만 응시하다 헤어진다. 어떤 친구는 곤란한 질문을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고, 어떤 친구는 속을 시원히 털어놓을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에겐 인스타그램 속 관계가 인스타그램 밖으로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 테고, 어떤 사람에겐 하트만 누르는 것이 무례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 관계의 색깔 역시, 계속 변한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기에

여전히 인간관계가 어렵지만, 나름의 원칙으로 세워둔 것이 하나 있다. ‘오늘의 우리’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10년 전의 우리에 묶이거나,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10년 후의 우리를 예단하지 말고 그저 오늘의 나, 오늘의 너에 집중하자는 마음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거의 다른 사람이다. 그만큼 흑역사를 쌓았고 엄청나게 깨지고 반성했으며, 여전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그러지 말자, 나 그때 그거 잘못했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잘못을 알고 있다. 그런 나를, 10년 전의 나에게 실망한 누군가가 여전히 같은 시선으로 본다면, 억울하진 않지만 속상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어떤 한 장면을 그 사람의 전부로 생각하고 판단해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나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늘 “오늘이 당신과 나의 마지막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고 싶다. 좋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모두가 그저 한 시절을, 오늘의 이 순간을 잠시 나누어 가지는 사이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다시는 못 볼 사이’라고 생각하면 못난 마음의 화기가 조금 누그러진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그에게 꼭 이 아픈 말을 남기고 싶을까. 지구 끝까지 가서 괴롭혀주거나 “너는 정말 별로야”라고 꼭 알려주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이 그와 나의 마지막이라면 내 시간과 에너지를 그렇게까지 쏟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래라. 당신은 그래라. 나는 오늘 하루를 당신 때문에 망치지 않겠노라. 대신 고맙고 귀한 사람들에겐 아낌없이 마음을 퍼붓고 싶다. 왜 이래. 뭘 이렇게까지? 라는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므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쿨한 척하는 사람보다는 마음을 펑펑 퍼주는 사람이고 싶다.


생각은, 그렇다. 현실은, 어렵다. 다시 못난 나로 돌아온다. 자주 엉망진창이 된다. 소중한 관계들이 끊어질 때마다 조금은 서럽고 슬펐던 것 같다. 왜 어떤 인연은 남고, 어떤 인연은 떠나는가. 어떤 오해는 마음을 다해도 풀리지 않고, 어떤 인연은 꼬이기만 하는가. 어떤 관계에 물을 주어야 하고, 어떤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가. 아마도, 영원히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만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명확해진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오늘, 그리웠습니다. 오늘, 미안했습니다. 오늘, 또 화가 났습니다. 오늘, 억울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마음을 남길 것인가.


인스타그램을 쉬는 지금,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난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피드 속에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저장된 얼굴들. 쉼표 속에서도 떠오른 사람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정체성도 다르지만, 취향으로 연결된 존재들. 그들은 알지 못할 하트를 누른다. 안부를 묻는다. 오프라인의 관계들도 떠올려 본다. 목적 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외로움도 불안도 잠시 저 너머로 보내둔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움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원래 외롭고 불안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잠시의 공백이 관계의 끝이 아님을 믿는다. 돌아간다면 더 깊은 다정함을 건네리라 다짐한다. 어제의 우리도 내일의 우리도 대신할 수 없을 ‘오늘의 우리’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길고 느린 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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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함께 하기 좋은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황지혜 독립서점 <지혜의서재 > 운영자

[웃따의 마음 돋보기] 번아웃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입니다.

불이 꺼진 듯한 그 자리에서, 조용히 다시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웃따 상담심리사, 유튜브 <상담심리사 웃따>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