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아내의 우울증과 8년째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2016년 여름, 우울증을 진단받은 아내는 현재 항우울제를 먹고 있지만 수영을 비롯한 각종 운동을 열심히 할 정도로 일상을 회복했고, 통증도 꾸준히 줄어서 다스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우울증은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만큼 함께 지내는 보호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중한 사람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나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분들께 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서 제가 노력했던 것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내의 우울증으로 일상이 무너진 부부
2016년 여름, 워킹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던 아내가 어깨 결림, 두통에 시달리며 조금씩 처지기 시작하더니 무기력증이 심해져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금방 좋아질 거라고 했지만 약은 잘 듣지 않았고 불안장애와 공황장애가 더해졌어요. 병의 진행은 점점 빨라져서 중증 우울증으로 발전했고 기대했던 대학병원 치료도 효과가 없자 아내는 공포와 불안에 빠져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우울증은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악화하기를 반복했어요. 아내가 원래 마음 약한 사람이 아닌데 죽는 게 낫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어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 역시도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전화가 오면 무슨 일 났나 가슴 철렁 겁이 나고, 밤이면 아내가 몰래 일어나 안 좋은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였거든요. 출근할 때는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생각에 괴롭고, 이 모든 걸 함께 겪는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삶의 의지를 시험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병에 걸린 당사자가 아니어서 몰랐을 뿐 아내처럼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삶은 1분 1초가 지옥 같고 ‘내가 가장 힘들 때가 환자들에게는 일상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까지 포기하면 아내가 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울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우울증 환자에게는 구명 튜브인 보호자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면 무기력증으로 인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고 신체적으로도 극심한 피로감에 휩싸여서 심하면 침대에서 일어나 씻는 것, 먹는 것 같이 기본적인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병으로 인해 부정적 사고가 시작되고 자기 비하에 빠지게 된 우울증 환자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깊은 어둠 속에 고립되어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조금 나아지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죠.
이럴 때 우울증 환자의 보호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손을 붙잡고 끌어올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있어 보호자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구명줄, 구명튜브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우울증 치료는 단기간에 끝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인내와 사랑으로 환자 곁을 지켜야 합니다. 잡은 손이 약하고 힘이 없다고 해도 환자가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병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단단히 붙잡고 끝까지 놓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응원 대신 실질적인 도움을
우울증 환자는 겉으로 보기에 외상이 없어서 보호자가 그 고통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환자 주변인은 환자가 우울감을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인다고 느끼고 도움이 되고자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네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는 병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삶의 의지가 꺾이는 상황인데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응원을 하는 것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열심히 뛰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같아요. 특히 “긍정적으로 생각해”, “아이들 봐서 기운 내”라는 식의 조언은 부정적 사고와 자기 비하에 힘들어하는 환자를 비참하게 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절대 하지 마세요.
평소라면 따뜻한 포옹이 도움이 되겠지만 허리가 부러진 사람을 껴안으면 통증이 느껴지듯이, 기운을 낼 수 없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따뜻한 조언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언을 건네기보다는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거나 식사나 집안일 등 각종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줄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치료 중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병원에 좀 가”, “운동 좀 해” 같은 조언을 환자에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가장 좋은 것은 같이 병원에 가는 것이고 운동을 먼저 시작해서 같이 하자고 권하는 것입니다.
보호자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우울증 치료는 장기전일 확률이 높아서 보호자는 환자가 포기하지 않도록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 변화를 파악하고 운동 치료 등 더욱 효과적인 치료 방법도 함께 모색해야 하고요. 이는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 자신에게도 큰 도전이 될 수 있어요. 보호자가 자신의 감정과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하고 먼저 지치면 환자가 치료를 포기할 수 있거든요.
7년간 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중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우울증에 관한 공부였습니다. 우울증은 만성질환이고,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아내의 상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아내가 꾸준히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찬가지로 다양한 우울증 치료법을 알게 되니 약물치료에만 의지하고 있을 때보다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어서 아내의 치료 효과도 상승했습니다.
삶의 동반자인 환자와 보호자
아내의 우울증을 겪으면서 저희 부부의 삶은 크게 변했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같이 웃고 떠드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사소한 일로 자존심 세우고 부부싸움도 했는데 아프고 나니까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이랑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돈이나 성공 같은 것보다 훨씬 절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소중함을 아니까 항상 서로의 건강을 살피고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돌봐주게 되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한계에 몰렸던 적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상처 입고 고통에 신음했어도 그 과정에서 느낀 서로의 소중함은 앞으로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어요. 환자와 보호자라는 관계를 통해 서로가 삶을 함께 헤쳐 나가는 동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우울증 환자는 물에 빠진 사람과 같아서 주변 도움 없이 스스로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병의 원인도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사람의 탓으로 여기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병의 원인에 집착하지 말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 주세요.
글. 최의종
현재 국내 유수의 게임회사 기술 총책임자(Technical Director)로 일하고 있다. 7년 전 아내의 우울증을 계기로 우울증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 상태에 맞게 운동과 식단, 생활 환경을 적용한 덕분에 아내는 일상을 회복했다. 올해 1월, 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책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