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웃따의 마음 돋보기] 후회 대신 진심으로

후회는 진심을 숨길 때 시작된다

웃따 상담심리사, 유튜브 <상담심리사 웃따> 운영자

“후회 대신 믿음을 선택하는 길”

우리가 살다보면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해서 후회할 때가 있어요. 특히 남에게 결코 미움을 받으면 안 된다거나, 절대로 남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역기능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래요. 남에게 마땅히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 혼자 삭히고 참으며 오랜 시간 억울한 감정만을 마음에 남기게 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데도 아무 방어를 하지 못하거나, 내가 손해보고 있는 상황이 확실한데도 무엇도 요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지 모르게 계속 불편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말은 할 걸’ 하는 후회들이 오랜 시간 마음에 남기도 합니다.


저는 예전에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했던 사람,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에게도 원하는 것을 요구해 본 기억이 거의 없고, 친구들에게도 싫으면 싫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이 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돌려주지 않았던 기억들이 많아요.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집에 가겠다는 말조차도 하지 못해서 끌려다니기만 했어요. 친구들은 그런 저를 좋아해주기도 했지만 제 자신은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요. 늘 제가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고 더 많이 희생해야 했거든요. ‘나만 너무 많이 준비물을 준비하는데 같이 비슷하게 하자’라고 말해도 친구들이 저를 미워하거나 떠나지 않았을 텐데 그 때는 입 밖으로 그 말이 떨어지지를 않았어요. 그렇게 할수록 사랑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갔죠. 관계 안에서 제 자신이 깊이 소진되니까요.

“남탓이 아닌 진심을 말하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육아에 전혀 협조적이지 않은 가부장적인 스타일의 그를 보면서 속으로 너무 화가 나고 서운했지만 ‘내가 싫은 소리를 하면 저 사람도 내 눈치를 보고 집이 불편해질 텐데’ 하는 생각에 그런 말을 잘 못하고 참기만 했어요. 남편과 맞지 않는 부분들을 맞추기 위해 조율을 하고 싶었는데 차마 그런 말들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소통 프로그램에서 현재 용서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코너가 있었어요. 그 때 남편이 떠올라 6장의 편지를 썼는데 끝내는 그 편지를 전해주지도 못했죠. 제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참기만 했는데 그런다고 해서 제가 행복하거나 편안하게 그를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늘 지쳐있고 퉁명스러운 저를 봐야만 했겠죠. 결국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게 결국 상대방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셈이 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저의 상담사 선생님이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라고 했지만 그때도 저는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남편과 5분만 이야기하게 해달라고 하시고는 저 대신 말을 해주었어요. 강제적으로 저의 가면을 벗고 지치고 아픈 제 속마음이 강제 공개가 된 거죠. 그러면서 저도 진실한 관계에 대해 성찰해보았어요. 상대방을 위해서 참는다는 것은 핑계고, 그저 상대방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할까봐 그게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던 제 자신을 마주했어요. 그리고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어느 날 문득 남편에게 말했어요. “우리 친하게 좀 지내자” 그랬더니 남편이 황당해하면서 “우리 잘 지내지 않아? 난 요즘 우리가 예전보다 대화도 더 잘 통한다고 느꼈는데?”라고 하더군요. 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말해봤어요. “그건 당신이 좋아하는 낚시 이야기, 헬스 이야기만 하고 나는 그걸 호응해주면서 잘 들어주고 있으니까 당신 입장에서는 우리 대화가 매우 만족스럽고 재미가 있겠지. 근데 내가 무슨 마음인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말한 적이 없잖아. 내 입장에서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져. 나는 당신과 더 편안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이렇게 상대방을 탓하는 말이 아닌 저의 느낌과 생각을 차분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솔직하게 표현했어요. 남편은 저의 요구에 조금씩 맞춰가기 시작했고 긴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차츰 조율이 되며 나아졌던 것 같아요.


“사람은 말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해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다 눈치 채고 바꿔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기 때문일 거예요. 혹은 상대방을 내 환상 속에 가둬놓고 내 마음에 쏙 들기를 바라는 아이 같은 마음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사람은 미안함이든 고마움이든 서운함이든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거의 모릅니다. 나조차도 내 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데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 마음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불편할까봐 말하지 않고 숨겨놨던 말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계속해서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나만 참고 살아가는 희생적인 위치에 놓게 되면서 우리가 얻어가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도덕적 우월감이나, 상대방보다 내가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그릇된 자존감을 채우기도 하겠죠.


후회가 남는다는 것은 그 순간에 충분히 나답지 못했고,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고,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인데, 물론 누구나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후회의 순간을 줄일 수는 있어요. 누군가를 대할 때, 혹은 일을 할 때, 충분히 나답고, 충분히 사랑하며, 충분히 만족스러우려면 먼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또한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이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우린 말할 수 없을 거예요. 특히나 실수에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위트를 보이고 싶은 순간이나 친근하게 장난치고 싶은 순간에도 말실수를 해서 상대방에게 비호감이 될까봐 두려워서 주춤하고는 해요. 사실 우리가 어떤 말실수를 하거나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고 해서 사람이 떠나기보다는 오히려 더 돈독해지고 친밀해질 수도 있거든요.가면을 한꺼풀 벗고 인간 대 인간으로 나의 색깔을 가지고 편안하게 다가서는 과정이니까요.


물론 배려 없이 상대방에게 나의 기분 나쁨을 마구 쏟아내듯이 말하는 건 진솔함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건 이기심이고 폭력입니다. 우리의 관계를 방해하는 가식적인 마음, 무조건 사랑받고 잘 보이려고만 하는 마음을 한꺼풀 벗어내야 한다는 것이지 상대방에게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모든 말을 해버린다면 그 또한 굉장한 후회를 남기게 될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후회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후회되는 것이 더 오래 남기도 해요.


“후회 대신 믿음이 자라는 순간”​

제 친구가 자기비하에 빠져있는 마음을 저에게 얘기했을 때 제가 그 친구를 아끼는 마음에 그 비하의 말들을 반박하기 바빴던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친구는 점점 더 주눅이 들더라고요. 제가 집에 돌아와서 너무 후회가 됐어요. 그 친구가 하는 자기비하에 요목조목 반박하듯이 말하지 말고 그저 믿어줄걸, 그저 기다려줄걸 하는 후회로 얼룩진 채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떨치지 못했답니다. 그때 조금 더 부드럽게 붙잡아줄 걸 하는 후회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해요.


우리는 뱉은 말에도 후회하고, 뱉지 못한 말에도 후회합니다. 다만 그 후회를 줄이려면 상대방을 믿어주는 마음, 그리고 나 자신을 믿어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내가 조금 솔직해져도 미움 받지 않을 거라는 마음에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후회 없는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후회되는 날이 있더라도 나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조율할 수 있을 거예요.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후회 없이 표현하면서 더욱 풍성한 관계를 만들어보아요.


[웃따의 마음 돋보기] 번아웃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입니다.

불이 꺼진 듯한 그 자리에서, 조용히 다시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웃따 상담심리사, 유튜브 <상담심리사 웃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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