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친해서’라는 이유로, 혹은 ‘걱정된다’는 마음으로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말은 종종 의도와 다르게 닿습니다. 내게는 가벼운 한 문장이, 상대에게는 설명해야 할 부담이 되거나 예기치 못한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번 큐레이션은 <참 눈치 없는 언어들>의 저자 안현진 작가와 함께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을 다시 짚어봅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 채 건넸던, 어쩌면 조금은 눈치 없었을지도 모를 말들. 그 말들이 우리의 관계 속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나도 그랬다”
친구가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우리는 으레 “나도 그랬다”는 말을 먼저 하게 됩니다. ‘나도 그런 일을 겪었고, 비슷한 감정을 지나왔기에 네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위로나 공감의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 건네곤 해요. “나도 그랬다”는 말에는 나 역시 잘 버텨왔으니 상대 역시 잘 버텨낼 것이라 믿는 다정한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 말이 의도와 다르게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경험은 당시의 무게가 가벼워져 보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대가 아직 모든 이야기를 충분히 털어놓기 전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나도 그랬다”라는 말이, 듣는 사람에게는 “그 일은 결국 지나간다”는 메시지로 들릴 수도 있죠. 위로를 건네려던 마음과 달리, 상대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말하기도 전에 “그럼 나도 견뎌야 하나”라는 부담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나도 그랬다’는 공감의 언어이면서, 공감이 조금 앞서 나간 순간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공감은 사실 경험의 유사성에서 시작되기보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잠시 머무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말보다, 네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다는 태도에서 공감은 더 또렷해지기도 하니까요.
2. “특이하다”
‘특이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통 것이나 보통 상태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다르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취향이나 선택, 행동 등을 보면 ‘특이하네’라고 말하게 돼요. 약간의 호기심과 가벼운 감탄, 신기함을 한데 섞은 표현입니다. 이 말을 건넬 때의 의도에는 대개 악의가 없습니다. 놀라움의 표현이나 친근함의 표시, 때로는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놓이는 자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른 결로 읽힐 여지도 생깁니다. ‘특이하다’는 표현에는 늘 보이지 않는 기준이 함께 따라옵니다. 말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경험이나 주관적인 잣대가 기준이 되곤 합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선택은 자연스럽게 ‘특이한 것’으로 묶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 ‘특이하다’는 말은, 나를 설명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신호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취향이나 선택을 즐겁게 나누던 대화가, 어느 순간 설명의 자리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특이하다’는 말이 떠오른다면, 관심을 상대방과 나와의 다름에 두기보다 내가 익숙하게 느껴 온 세계의 경계에 둬보면 어떨까요? 나의 세계를 한 뼘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특이’해보이는 낯선 것도 자기 세계 안에 무사히 안착시키면 보통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요.
3.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뭔가를 설명해야 할 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입니다. ‘제가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고요’와 같은 마음을 담아, 겸손함을 표현하고자 사용해요. 특히 상대가 나보다 경험이 많거나, 연장자이거나, 처음 만난 관계일수록 이런 수식어는 더 자주 붙습니다. 말 그대로 ‘배려의 문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누군가 저에게 똑같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라고 하는 걸 들으며, 생각이 바뀐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선뜻 질문을 던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이라는 말은 상대방이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는 일을 꽤 어려워합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대화의 흐름을 끊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내가 부족해 보일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이라고 운을 떼면, 그 어려움은 조금 더 커집니다. 모른다고 말하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질문을 삼키고 적당히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겸손함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말이 결과적으로 상대가 질문을 망설이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죠.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보다 질문을 환영한다는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 질문해주세요’와 같은 말로 말이에요. 모름을 말할 여지를 남겨준다면 우리의 대화는 더욱 편안해질 거예요.
4. “여유를 가져”
마감이 코앞이거나 결과를 앞두고 긴장했을 때, 누군가 유난히 애쓰고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던집니다. “여유를 가져.” 비슷한 표현으로는 “힘 빼”가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말고 힘을 좀 빼고 여유를 가져보라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대개 상대를 다독이기 위해 나옵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을 듣는 사람의 상태를 떠올려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여유를 가져’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보통 이미 충분히 긴장해 있고, 잘해내고 싶어서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순간에 여유를 갖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조건에서는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힘을 빼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실수하지 않으려 더 힘을 주게 되니까요. 그래서 여유는 부담이 조금 덜어지고 상황이 정리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여유(餘裕)’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남을 여, 넉넉할 유. 넉넉해서 남은 것. 다시 말해 여유는 애써 만들어내는 성질이 아니라, 어떤 조건 속에서 결과적으로 남게 되는 상태입니다.갖고 싶다고 해서 바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따라오는 것에 가까워요.
그래서 어쩌면 “힘 빼”, “여유를 가져”라는 말보다 “잘 될 거야”, “지금처럼만 해도 충분해”라는 응원이 더 따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애써왔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주는 말. 그런 신뢰가 먼저 전달될 때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그다음 여유가 따라올 거예요.
5. “비싸다”
‘비싸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합니다.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높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이 말이 쓰이는 맥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히 가격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비해 부담스럽거나, 지불해야 할 금액에 비해 가치가 크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우리는 쉽게 ‘비싸다’는 말을 꺼냅니다. 이처럼 이 표현은 종종 완곡한 거절의 언어로 쓰이곤 합니다. 누군가의 제안 앞에서 “그건 좀 비싼 것 같아”라는 말은 결국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해요. 직접적인 거절 대신, 상황을 완곡하게 정리하는 문장인 셈입니다.
이 ‘비싸다’라는 말을 언제 가장 자주 듣게 될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부모님과 대화할 때 유독 자주 듣게 됩니다. 부모님 선물을 골랐을 때, 외식을 하러 나갔을 때, 특히 제가 먼저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라고 말한 뒤 메뉴를 고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물론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투박한 말속에 담긴 진짜 마음을요. 자식이 괜히 큰돈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혹여 애써 번 돈을 당신들 때문에 쓰는 건 아닐까 염려하는 마음이라는 걸요. 결국 부모님의 ‘비싸다’는 절약의 언어라기보다 사랑의 언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곤 합니다. ‘비싸다’라는 걱정 섞인 말 대신, 그저 “고맙다”라고 웃으며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 하고요. 부모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제 진심을, 그저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하거든요. 저의 애정이 ‘비싼 가격’에 가려지기보다, ‘고마운 마음’으로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부모님도 알고 계실까요? 우리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고맙다”는 다정한 한마디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6. “고집이 세다”
‘고집이 세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한 사람의 태도를 단정하기 전에 더 들여다볼 여지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 ‘고집이 세다’는 말은 여러 상황을 한꺼번에 덮어버리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첫째, 상대의 고집이 아니라 설명이 아직 충분히 닿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에는 나름의 이유와 맥락이 있고, 그것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바로 동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더 이해가 필요한 단계일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설득이 되지 않은 이유는 상대가 아니라 나의 설명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 상대가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이 많고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는 종종 신중함으로 이어집니다. 겉보기에는 고집처럼 보이던 모습이 사실은 충분히 납득하려는 과정이라면 대화는 속도를 늦출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말의 내용보다 말이 전달되는 방식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관계의 온도나 말투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닿습니다. 이 경우 설득이 멈춘 이유는 상대의 성격이 아니라, 대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고집이 세다’는 말은 꽤나 게으른 문장입니다. 상황의 복잡함과 이해의 속도, 관계의 미묘한 온도를 모두 지워버리고, 사람을 문제로 만들어 버리니까요. 고집을 지적하는 순간 대화는 빠르게 끝나지만, 이해는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혹시 고집으로 보이는 장면 앞에서, 이런 질문을 건네볼 수는 없을까요. “어디까지 이해됐는지 말해줄래?”, “내가 너무 앞서간 건 아닐까?” 그 질문 하나가 ‘고집이 세다’는 말보다 관계를 훨씬 더 멀리 데려다 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