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삶 속에서 새로 발견한 것 - 플레이라이프

박찬종

크리에이터, 패러사이클링 선수

이어지는 삶 속에서 새로 발견한 것

20대부터 지금까지 늘 자전거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박찬종 님은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라이딩 후기와 여행기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그에게 2022년 9월 23일, 5톤 트럭에 깔리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그는 112일 만에 다시 걸었습니다. 뒤이어 자전거도 다시 타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장애인 사이클 선수로 활동 중입니다. 사고 이후의 인생을 보너스로 얻은 두 번째 삶이라 말하는 그와 ‘회복’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 인생, 참 많이 바뀌었구나

패러사이클이라는 종목이 낯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에는 패러사이클 종목이 있는데요. 장애의 정도에 따라 참가하는 종목이 달라요. 제가 참가하는 종목인 스탠다드 바이크(일반 자전거), 팔로 페달을 돌리는 핸드사이클, 세발자전거 종목도 있어요.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장애인들이 자전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경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 출전한 대회가 국제 대회라고요?   

제 목표가 패럴림픽인데요. 패럴림픽 출전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는 UCI(국제사이클연맹)*가 주관하는 대회에 출전해야 해요. 작년에 처음 대회를 나갔던 게 바로 UCI 패러사이클링 월드컵이었어요. 동호인으로만 살아왔던 저에게 너무나 큰 대회였죠. 그 뒤로는 국내 장애인 사이클 선수권 대회도 나가고 작년에 전국 체전도 다녀왔습니다.
*UCI : 사이클 종목을 주관하는 국제단체, 프랑스어 공식 명칭으로 Union Cycliste Internationale

 

UCI 패러사이클링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듣고 싶어요

사실 참가 신청서를 쓸 때가 전라북도 장애인사이클연맹 소속 선수가 된 지 얼마 안 된 때라 야외에서 훈련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선수가 되자마자 UCI 대회라니, 요란한 신인이 된 거죠.(웃음) 실제로 대회에 나가서도 굉장히 감개무량하고 딱 출발선에 섰을 때 ‘내 인생, 참 많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미가 직업이 된 건데, 직업 만족도가 높아졌나요?

아직까지는 재미있습니다.(웃음) 사고 이전에도 자전거는 굉장히 많이 탔지만 선수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자전거는 잘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더 가까웠으니까요. 사고 이후, 사람들에게 장애가 있어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꿈을 좇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선수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주는 힘

다시 자전거를 타고, 선수 생활까지 하기로 선택했을 때 가족들의 우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를 겪었는데 다시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으니까요. 설령 제가 자전거를 다시 타고 싶다고 하더라도 ‘가족이라면 남은 다리 하나도 부러뜨려 말려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어떻게 그걸 허락할 수 있지?’라고 하시던 분들도 꽤 있었어요.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에 그동안 운영해 온 유튜브 채널도 있었다고요

사고가 나기 훨씬 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운영해왔어요. 자전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상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제가 기획부터 촬영, 편집을 모두 도맡아 했죠. 제 영상을 보고 자전거를 시작했다는 분도 많았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사고가 나서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면 제 채널이 안 좋은 결말로 끝나는 거잖아요.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갖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다시 시작했죠.

나쁘고 슬픈 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숨으려고도 하지 말자

사고 이후에 SNS에 올린 글이 화제가 많이 되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쓰셨나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자전거 모임이 계속 예정되어 있어서, 참석 못 한다고 연락을 해야 했죠. 소문이 정말 빨리 퍼지더라고요. 와전될까봐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저도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기에 되면서 입장을 정리했던 것 같아요.

무조건 나쁘고 슬픈 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계속 숨으려고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해온 것들이 부정당하는 게 싫고 제가 숨을 이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저는 괜찮고 앞으로 잘 이겨낼 것이다는 마음을 담아 글을 올렸어요.

원망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기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대해 원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사고 당시에 제가 죽었거나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트럭 기사분이 밑으로 기어 들어와 절규하며 제 손을 잡더라고요. 아내, 부모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못 보고 혼자 죽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보다 외로움이 크게 다가왔는데 그때 잡아준 손이 위로가 됐어요.

 

너무 큰 사고지만 가해자도 사람이기에 저지른 실수였고, 그 사람도 사고 이후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저는 그 가해자를 본 적이 없어요. 원망할 대상을 만들고 그걸 기억하는 것보다 모르는 편이 낫겠다 싶었죠. 원망보다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계속 움직였어요. 제가 열심히 재활을 하고 몸이든 마음이든 빨리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요.

 

‘우울로 오늘을 망치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는데, 그럼에도 우울함이 떨쳐지지 않는 날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판정받았고, 그 증상들을 관리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은데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 해서 못 가고 병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병원에 가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상담부터 약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의학의 힘을 빌려도 우울함이 들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아주 작은 것이더라도 자기만의 목표가 있어야 해요. 지금 당장 일어나기, 손 씻기 같은 거요. 그렇게 작은 목표를 세우면 ‘그래 이거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조금 더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어요.

“엄마 나 무지외반증이 없어졌어요.”

무거운 분위기 속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암살 개그’의 달인이시라고요

암살 개그를 처음 했던 대상이 저희 어머니였어요. 사고 당시, 어머니가 24시간 간병을 해주셨는데 서로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니까 대화가 별로 없었어요.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어머니께 “엄마, 나 무지외반증이 없어졌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어디 봐”라고 하셔서 제가 “아니 없어졌다고요” 이러니까 웃으시더라고요.

 

황당해서 웃으셨던 거지만 그때가 병원에서 어머니가 처음으로 웃으신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오 이거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이제 시도 때도 없이 암살 개그를 하기 시작했어요. 해보니까 분위기가 많이 풀어지더라고요. 병원 간호사 선생님한테도 해보고, 병문안 오시는 분들께도 자주 했어요.

 

만나는 사람들한테 ‘암살 개그’식으로 농담을 하면 그 사람들도 ‘아 얘가 잘 이겨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저도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지인들이 또 다른 친구들한테도 저에 대해 ‘괜찮더라 가서 만나봐도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해줄 수 있으니까요. 여러모로 이 상황을 이겨내는 데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사고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것과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직업이 많이 달라졌죠.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장애인 사이클 선수, 에세이 작가, 크리에이터 등 지금은 저만 할 수 있는 걸 계속하고 있잖아요. 회사 다닐 때는 이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결과가 나에게 중요한지도 모르겠다고 느끼는 때가 많았는데요. 지금 하는 일들은 모두 이유와 결과가 저에게 중요하니까 더 보람차게 느껴져요. 그리고 조금은 더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변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일상적인 것들이에요. 사람들이 보통 장애를 가지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이전보다 불편한 것은 있어도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다 해결할 수 있거든요.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다가 만약 주차해 놓은 차를 빼 달라고 하면 의족을 신고 나가서 차를 다시 주차하고, 들어와서 의족을 벗고 이런 과정이 늘어나니 약간 귀찮을 뿐이죠. 와이프가 음식물 쓰레기 버려달라고 해도 똑같아요. 의족을 신고 벗고 불편함만 이겨내면 문제없습니다.(웃음)

 

오히려 큰 불편으로 다가오는 건 사람들의 반응이나 갖춰지지 않은 제도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차에 타고 내리려면 문을 활짝 열어야 해요. 그래서 일반 주차 칸에는 주차할 수 없어요. 장애인 주차공간이 없으면 그곳에 가서 일을 못 보니까 실제로 다가오는 불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들은 제가 앞으로도 활동을 많이 하면서 더 개선해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

살다 보면 노력과 상관없이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는데요

제가 산재병원에 있었는데요. 거기에는 절단 환자나 마비 환자가 되게 많아요. 어떤 분은 발목만 절단했는데도 계속 거기에 매몰돼서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하시고 어떤 분은 더 많이 다치셨는데도 계속 열심히 재활해서 빨리 사회로 복귀하시기도 해요. 물론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상황도 있고 바꿀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계속 걱정하고 슬퍼하는 것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면서 작은 시도를 꾸준히 해보면 좋겠어요.

 

직접 ‘회복’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다면요? 

사실 신체적인 회복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치료를 해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상태가 회복의 끝이라고도 하는데요. 정신적인 부분,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다가 어떤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겪었을 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상태, 그런 마음가짐이 준비가 됐을 때가 진정한 ‘회복’이 아닐까요?

 

마음 회복에 도움을 받은 게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일기를 썼던 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저는 일기를 당일에 쓰지 않고 2~3일 지나서 써요. 바로 쓰면 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거든요. 특히, 격한 감정이 드는 날 쓴 일기는 가라앉지 않은 감정이 그대로 담겨서 나중에 보면 불편하더라고요. 2~3일 정도 지난 후에 쓰면 훨씬 정제되고 차분한 표현으로 일기를 쓸 수 있어요.

 

한참 뒤에 다시 일기를 보면 그날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보다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정리했구나. 지금 보면 참 별거 아니었네’ 또는 ‘내가 마음이 급했구나, 지금은 조금 더 나아진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뒤에는 취미 활동이 도움이 됐어요. 쉬는 시간에 하고 싶은 게 항상 있는 상태가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일이 없는 날, 집에 가만히 있으면 그때 일이 계속 떠오르기 쉽거든요. 그래서 그런 감정에 빠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필요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들도 궁금합니다

대외적인 목표는 26년 나가노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입니다. (웃음) 자전거 선수다보니 선수로서의 영광은 아무래도 수상이잖아요? 사고 전의 저보다 잘 타는 게 목표인데, 한 발로만 타는데 사고 전만큼 타게 되면 정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목표들을 이루고 28년 LA 올림픽까지 도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또 다른 목표는 사람이 두 다리를 가짐으로써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걷기, 뛰기, 자전거 타기는 물론 수영하기까지. 운동 안 하는 비장애인들보다 더 잘할 수 있게 열심히 몸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대내적으로는 계속 행복을 좇으면서도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저만의 메시지를 던지고 사람들이 제 메시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볼 수 있는 그런 활동을 많이 해보려고 해요.

 

찬종 님이 생각하는 ‘마음 성장’이란 무엇인지도 들려주세요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갖고, 그 두가지 면 모두 저에게 어떤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는 걸 깨닫는 것 같습니다. 일련의 사고와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저 역시 성장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데요. 사고 전까지는 인생에서 잘 몰랐던 것들을 다시 보고 이해하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특히, 예전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도 좋은 점이 있고 새로운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무조건 ‘욜로(YOLO)’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를 위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집중하다 보면 그것을 자양분 삼아 마음이 튼튼하게 성장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