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이 진행하는 뉴스를 보신 적 있나요? 평일 낮 12시, KBS 1TV 뉴스에서 점자 정보 단말기로 원고를 읽으며 뉴스를 진행하는 허우령 앵커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에 그간 살아온 궤적이 궁금해졌는데요. 뉴스와 유튜브를 오가며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허우령 님을 만나봤습니다. 안내견 하얀이와 함께한 현장의 모습과 이야기를 전합니다.

3년차 앵커의 일상
플레이라이프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BS에서 제7기 장애인 앵커로, 12시 생활 뉴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3년 차가 됐네요. <우령의 유디오>라는 채널을 5년째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합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저라는 사람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앵커이자 유튜버의 삶을 살고 있는 우령 님은 어떤 하루를 보내나요?
오전 7시 반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안내견 하얀이의 밥을 챙겨줘요.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마치면 9시에 여의도로 출발합니다. 10시 반쯤 도착하면 메이크업도 받고 의상을 갈아입은 후 진행할 뉴스에 대해 한 시간 정도 리딩 연습을 진행합니다. 1시 이후 뉴스가 끝나고 나면 퇴근 후 유튜브 촬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꼭 지키려고 하는, 우령 님만의 루틴이 있나요?
하얀이 밥 챙기기요! 저는 굶어도 하얀이는 무조건 챙겨줘요. 배고프면 이마에 주름이 생기거든요. 눈치를 팍팍 줍니다. 그리고 뉴스 들어가기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데, 이때 계속 리딩하며 제 입에 맞게 문장을 고치기도 하고 전달력이 좋아지도록 연습해요. 이 두 가지 루틴은 꼭 지키고 있어요.
어느새 3년차 앵커가 되었습니다. 처음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요?
초창기에는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제가 앞에 나설 때 긴장 안 하는 스타일인데, 뉴스만 하면 손이 저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선배님들께 여쭤보니 “긴장 안 하면 실수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어요. 생활뉴스 중에서도 경제 파트를 맡고 있어서 부동산이나 바뀌는 정책, 제도에 대한 뉴스가 많은데요. 단위가 큰 숫자들은 더 신경써서 연습해요. 결국 연습만이 긴장을 낮추는 방법이더라고요. 3년차라도 앵커로는 아직 신입이기 때문에 선배님들이 진행하는 뉴스를 모니터링하면서 앵커 멘트는 어떻게 하셨는지, 어디에 악센트를 주셨는지 들으면서 여전히 열심히 성장 중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학창시절부터 교내 아나운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앵커가 적성에 맞다고 느낀 계기가 있나요?
제가 14살에 시각 장애가 생기면서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장애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엄청나게 움츠러든 상태로 학교에 다녔어요. 선생님이 제가 말을 못하는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로요. 그때 선생님께서 방송부 가입을 제안해 주셨어요. 나한테 맞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죠. 점자도 더듬더듬 읽을 때라 그냥 원고를 통으로 외웠어요! 그때는 기억력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처음 교내 방송이 나가고, 친구들이 목소리 좋다고, 앞으로 잘 듣겠다고 말해줬는데 너무 신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제 생각을 글로 담아서 목소리로 전달하는 매력을 그때 느꼈어요.
앵커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요?
교내 방송부지만 6년을 하다 보니 소위 ‘쪼’라는 게 생기더라고요. 말끝을 올리는 상승 쪼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전라도 나주가 고향인데, ‘의’ 발음이 잘 안되더라고요. 앵커를 준비하면서 이런 습관들을 교정해야 했어요. 학원은 획일화된 수업을 해서 개성이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독학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시각 장애가 있다보니 연습할 원고를 구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어요.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가장 칭찬하고 싶나요?
늘 꾸준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이어온 부분을 칭찬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시각 장애인의 직장은 참 한정적이예요. 주변에서는 시각 장애인이 어떻게 아나운서를 하냐, TV에 나오냐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늘 생각했어요.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야”. 입시를 준비할 때도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했고요. 부모님은 “어떻게 혼자 서울 가서 살래?”라는 걱정을 하셨지만 저는 그것보다 꿈을 이루는 게 더 우선이었거든요.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과거로 가서 그때의 나에게 조언이나 응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살면서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적은 없어요. 다시 기회를 잡을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정말 저 혼자였어요. 기숙사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죠. 1학기 동안은 수업 들으러 갈 때 말고는 기숙사 안에만 있었어요. 서울에 가면 맛있는 거 먹고 실컷 놀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우울했던 시기도 있었죠. 1학기가 지나가는 시점에서 “나는 이제 여기서 살아야 해,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새롭게 찾자, 익숙해지자”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어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길을 익혔죠. 생각해 보니 지금보다 당시가 더 능동적이었네요. 오히려 과거의 제가 지금의 저에게 “너 이때 당찼잖아, 왜 지금은 그렇게 못해?”라고 혼내줘야 할 것 같아요.
가보지 않은 길이 주는 설렘

유튜브 채널 <우령의 유디오>를 운영하고 계세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5년 동안 채널을 운영할 수 있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제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봐주는 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어요. “위로받았다, 긍정 에너지를 얻어간다” 이런 댓글을 보면 다음 영상도 열심히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구독자 분들 애칭이 ‘우동이’인데요. 함께한 5년 동안 성장한 것 같다는 말을 해주실 때 가장 뿌듯해요.
최근에 다이소에 방문했던 에피소드가 화제가 돼 기사화도 되었어요. 채널이 성장하는 만큼 영향력도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겠다’라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어요. 하얀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자분들이 공감해 주는 부분이 생긴 거죠. 다이소 방문 영상이 많이 알려지면서 안내견 환영 문구를 부착하는 등 개선이 되는 것도 지켜봤는데요. 사실 제가 촬영하고 싶은 건 안내견이 환영받는 영상이지, 문제 있는 곳을 고발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식당에 갈 때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저는 거부당하면 어떻게 말할지 멘트를 떠올리게 되거든요. 긴장을 조금 덜 하면서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우령의 유디오>가 어떤 채널이 되었으면 하시나요?
제가 곧 있으면 KBS 앵커 근무를 마치게 돼요. 당분간은 유튜브에 집중하게 될 텐데요. 좀 더 다양한 지역을 가보고 싶어요. 하얀이와 함께하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부산이나 제주도도 가고, 해외도 가보고 싶어요. 유튜브를 처음 시작할 때는 라디오 방송을 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터라, 팟캐스트에도 도전할 거예요.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행복은 한 번에 크게 느끼는 것보다, 작지만 자주 느끼는 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아요. 우령 님은 지치고 힘든 날, 어떻게 기분 전환을 하시나요?
저도 행복을 자주 느끼려고 하고, 그게 축적이 돼서 살아가는 데 큰 에너지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치고 힘들 때 뭘 하나 생각해 봤는데,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제가 안정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공간에 가요. 커피나 디저트를 먹으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죠. 두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요.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다 보면 많이 풀어지기고 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마지막으로 진짜 힘들 때는 오롯이 혼자 있어요. 나와 대화하기도 하고 일기도 쓰고 책도 읽어요. 그러다 보면 또 나아갈 힘을 얻곤 해요.

우령 님이 지극히 정진해온 ‘나다움’은 무엇인가요?
‘나다움’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데요. 지금까지 살면서 형성한 나다움은 발랄함과 주체성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었어요. 사회생활하면서 조금은 희미해진 주체성을 다시 강화해서 제 장점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우령 님에게 마음 성장이란 무엇인가요?
‘다쳐도 아물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하고 늘 새롭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상처를 내기도 하죠. 상처를 무서워하기보다는 단단해지며 성장할, 나 자신을 기대하고 응원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