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한 번쯤 못해도 큰일 나지 않아요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손성원 한국일보 기자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 있는 9월 어느 날에 손성원 기자님을 만났습니다. 2019년 정신과 진단 코드를 의미하는 F코드 진단을 받은 후 기자가 된 성원 님은 2022년부터 마음돌봄 뉴스레터 ‘터치유’를 운영하며 독자들이 일상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음 돌봄 방법을 나눠왔습니다. 최근에는 『마음이 고장 났어도 고치면 그만이니까』라는 책도 출간했죠.


심리 상담, 요가, 상담심리대학원까지 직접 경험한 다양한 치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낸 기자님의 글은 “나 정도면 괜찮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타인의 시선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고, 세상이 준 것들을 잘 누리고 싶다는 성원 님에게 마음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플레이라이프 독자들에게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마음돌봄 뉴스레터 ‘터치유’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일보 손성원 기자입니다. 최근에는 첫 에세이인 『마음이 고장 났어도 고치면 그만이니까』를 썼습니다.



‘터치유’는 펫로스 증후군이나 폰 포비아 등 구체적인 마음 돌봄 방법을 전달해요. 사회 구조를 지적하기보다는 일상 소재에 집중한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터치유’는 서비스 저널리즘을 활용하기 정말 좋은 분야예요. 서비스 저널리즘은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사회 구조적인 측면을 다루는 건 개개인에게 너무 멀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독자들이 읽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했죠.

3년간 꾸준히 이어온 뉴스레터 연재

터치유를 운영하며 받았던 독자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요?

생각보다 경찰이나 군인분들이 피드백을 많이 주세요.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번아웃에 대해서 다뤄주세요’, ‘상담사들의 번아웃을 다뤄주세요’와 같은 의견을 주시죠. 그 의견을 보면서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의 마음 돌봄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거든요. 터치유를 하면서 저 자신도 많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터치유 콘텐츠를 만들 때 반드시 지키려는 원칙이 있다면요?

‘타자화하지 않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마음이 아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그분들을 ‘그냥 아픈 사람들’ 혹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만 단정 짓지 않아요. 이야기를 들을 때도 항상 전반적인 맥락을 담으려 노력해요.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도 신중하게 고르는데요. 예를 들어 ‘치료’라는 단어를 웬만하면 쓰지 않아요. 치료는 병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 있거든요. 대신 치료보다는 ‘치유’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따뜻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나의 경험으로 타인에게 위로를 건네다

최근 출간한 『마음이 고장 났어도 고치면 그만이니까』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터치유를 만드는 사람이자 그 과정을 함께 해나가는 사람으로서, 저의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도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유는 평생 우리가 해나가야 할 과정이잖아요. 그러니 독자분들도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함께 ‘마음 돌봄’이라는 여정을 떠나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어요.



책에 보면 정신과 진단 코드를 받은 후 ‘내 마음을 찬찬히 바라보고 천천히 채워나가겠다’라는 다짐을 했다고 나와요. 지금은 이 다짐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런 다짐을 하고 얼마 안 돼서 기자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결국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삶의 속도를 잘 조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내 자신이 잘 알아야 나를 돌보면서도 빠른 속도에 적응해 나갈 수 있거든요. 저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취재를 요청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긴장감이 높은 분위기는 많이 불편해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서는 에너지를 조율해 가며 쓰고 있죠. 이렇게 하나씩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 같아요.

심리 상담, 요가, 상담심리대학원까지 다양한 마음돌봄 방법을 실천하고 있어요.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 정말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이렇게 추진력이 강한 사람인지 몰랐어요. 제가 하는 것처럼 남들도 다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곧바로 실천하는 게 매우 큰 에너지이자 장점이더라고요. 흔히 볼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이기도 하고요. 강한 의지와 실행력이라는 저만의 자원을 발견한 거죠.



성원 님에게 효과가 좋았던 방법을 몇 가지 꼽아주세요.

‘심리 상담’과 ‘요가’를 꼽을 수 있어요. 우선 심리 상담의 큰 장점은 전문적인 도움이라는 점이에요. 물론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전문가가 나를 바라봐준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느낌이죠.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부분까지도 이해받아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한편 요가는 몸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가는 활동이에요. 자신을 잘 가라앉힐 수 있게 되죠. 화가 났을 때는 ‘지금 나는 심호흡이 필요하구나’ 하고 파악할 수 있고, 몸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어요. 요가를 하고 나서 차를 마시는 시간도 참 좋고요.

용기를 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마음이 온전하지 않지만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거야’, ‘버티면 괜찮을 거야’ 하면서 병원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모든 일을 순조롭게 해나가는 사람은 없어요. 다만 그 일이 지금 나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는지가 중요해요. 어떤 문제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불편함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문제가 불편한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는 게 좋겠죠. 시기가 안 좋거나 운이 나빠서 벌어진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용기를 내서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 마음을 이해하는 타인을 찾는다는 건 심리 상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좋은 심리상담사를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상담을 하면서 불편한 구석이 있다면 무언가 어긋났다는 신호일 거예요. 상담사와의 ‘케미’가 안 맞는 걸 수도 있고요. 그러면 꾹 참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상담사의 문제일 수도 있고, 본인의 방어기제 문제일 수도 있거든요. 불편함을 한번 드러내 봤는데도 안 맞는다면 그때 ‘이 선생님이랑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다른 분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요즘 보건복지부나 서울시에서 청년들에게 무료 상담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찾아가 보는 것도 권하고 싶어요.

요즘 청년들이 자주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회 전반적으로 비교 의식이 강한 것 같아요. ‘남들이 하는 걸 나도 이 시기에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다’ 같은 생존에 대한 불안함이 크다고 할까요. 이런 불안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모습이 제대로 수용 받지 못해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온전히 내 모습을 이해받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지금 청년들은 이런 경험이 부족하죠.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성원 님이 실천해 본 방법 중에 추천해 주고 싶은 게 있다면요?

‘못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일에 대한 큰 책임감 때문에 자신을 갉아먹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거 한 번쯤 못하면 어때’ 하면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보는 거예요. 한 번 못했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하면 오히려 그 이후의 일을 더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거든요.



지난 9월 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었어요. 최근 기사를 보니 비자살적 자해(자살할 목적이 없었던 자살시도)를 한 사람들이 실제 자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서울시광역심리지원센터 수업에서 알게 된 내용이 있는데요.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죽음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거나 자기 비하 수위가 높아지면 자살을 생각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인이 갑자기 사후세계나 우주 소멸 같은 얘기를 많이 한다면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신호일 수 있으니 꾸준한 관심을 주는 게 필요해요.



주변에 죽음에 관한 신호들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요?

우선 ‘너 죽고 싶은 거 아니지?’라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돼요. ‘나는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없구나’라는 생각에 빠져서 오히려 입을 닫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자살 생각을 하고 있니?’라고 담백하게 묻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해요.



자살 예방을 위해 사회나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언론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건 자살 예방 보도 준칙을 지키는 거예요. 예전에는 ‘자살’을 에둘러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표현은 자살을 마치 하나의 선택지처럼 비칠 수 있거든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금은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자살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족 중 누군가 자살을 하게 되면 그 유가족들도 고위험군이 되는데요. 자살을 금기시하게 되면 유가족들이 속마음을 말하기 어려워져요. 자살을 쉬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라지면 좋겠어요.

지금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힘든 상황에 놓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의 말이 있다면요?

 

영화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남긴 편지의 글귀를 들려주고 싶어요.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성원 님에게 마음성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마음이 성장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수용하고, 나아가 남까지 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는 것 같아요. 제가 계속 무언가를 해내고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이 세상이 준 것들을 잘 누려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저에게 주어진 자원을 잘 사용하며, 이 세상이 저에게 준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며 살고 싶어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이 있고 어떻게 해소를 해 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장효준 상담교사

‘나’를 알아가는 시간

한 번쯤은 나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휴식을 선물하세요.

유보라 '라이프컬러링' 대표

슬픔이 끝나도, 추억은 영원하니까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비 일러스트레이터

실패도 성공도, 쌓이면 토대가 돼요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요리라는 재능을 찾을 수 있었어요.”

김봉경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