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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동물이 보이지 않는 이상한 동물원

동물원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어야 해요.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청주동물원은 나이 들고, 아프고,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동물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넷플릭스 <이상한 동물원>의 배경으로 알려지기도 했죠. 이곳에서 홍성현 수의사는 매일 동물들의 상태를 살피고, 때로는 살리고 때로는 떠나보내는 선택을 합니다. 동물들이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일부러 거리를 두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일. 그 반복 속에서 그는 생과 죽음, 돌봄과 거리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갑니다. 이번 인터뷰는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책임지고 어떻게 놓아주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청주동물원에서 보내는 수의사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동물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해요. 밤사이 동물들에게 이상은 없었는지 살펴보죠. 기본적인 관찰은 사육사분들이 맡고 계시지만,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고 하루 사이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길 수 있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료 외에도 행정 업무 비중이 꽤 큰 편이에요. 서류 작업이나 공문 처리를 마치고 나면, 오후에는 동물 검사를 진행하거나,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를 해요. 피 검사를 하고 현미경 사진을 남기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 야생동물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쌓이거든요.



최근 넷플릭스나 여러 미디어를 통해 청주동물원이 많이 알려졌어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체감하는 변화가 있으신가요?

넷플릭스 <이상한 동물원>이 큰 관심을 받았더라고요.(웃음) 방문객이 늘어난 건 분명하지만, 방학 시즌과 시기가 겹친 영향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기보다는 원래 저희 동물원의 가치관에 공감하던 분들의 생각이 방송을 계기로 더 드러난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동물원은 이래야 한다”라고 생각하던 분들이 저희 모습을 보고 응원을 보내주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수많은 동물 중에서도 왜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셨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 동물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면서 자라서, 막연하게나마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학부 시절 이곳 청주동물원에서 실습을 하게 됐고, 졸업할 무렵 운 좋게 자리가 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동물원 분야는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는 분야예요. 해외 기관이나 동물원과 교류하다 보면, 아직 국내와의 격차도 크게 느껴지고요. 특히 국내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데이터가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그래서 국내 동물원·수족관에서 일하는 수의사들 중 동물원의 동물 보호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수의사회를 만들었어요. 현재 전국에서 약 40~50명 정도가 참여해 정보를 공유하고, 근거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고요. 위기 상황을 마주하면 함께 좌절하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 과정 자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해요.



수의사님의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 있거나 요즘 특히 마음을 쓰는 동물이 있다면요?

지금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친구는 ‘삵’이에요. 멸종위기종인데 얼핏 보면 크기도 집고양이와 비슷하고 행동도 비슷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고양이로 오해해서 데려와 기르다가 구조되어 저희에게 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문제는 한 번 사람 손을 탄 삵은 야생성을 잃어버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구조 후 치료를 거쳐 방사하는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치료가 길어질수록 야생에 적응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돼요. 비교적 빠르게 회복된 개체일수록 방사 성공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고요. 삵의 피 검사를 계절별로 나누어 진행해보기도 했는데, 같은 환경에서도 계절에 따라 수치의 차이가 꽤 크게 나타났어요. 언젠가 방사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그 데이터를 계속 축적하고 있어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으실 텐데,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시나요?

동물의 죽음은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매번 새롭게 겪어내야 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 감각이 무뎌진다면 수의사를 그만둘 때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저희 직업은 선택을 직접 하거나 종용해야 되는 입장이다 보니, 최대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요.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여러 지표를 설정하고, 점수를 매겨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판단 기준을 세우고 있어요.

작년에 있었던 한 사례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여우 한 마리가 전날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폐사한 채로 발견된 일이 있었어요. 부검을 해보니 폐에 암이 있었던 거예요. 노령 개체이긴 했지만, 생전에 어떤 증상도 파악하지 못한 채 보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어요. 그런데 이 사례가 여우에서 폐암이 발견된 첫 사례였거든요. 이후 학회에서 발표도 했고, 앞으로 여우 건강검진 프로토콜에 폐 종양 검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꼈고요. 개인적으로는 무거운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이후의 진료와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데이터가 부족하다 보니, 한 개체의 죽음이 중요한 선례로 남는 경우도 있겠네요.

맞아요. 수의사들은 건강검진 프로토콜을 직접 만들어요. 여러 논문을 찾아보면서 이 동물에게 어떤 질병이 자주 발생하는지, 어떤 검사를 주기적으로 해주면 좋은지를 스스로 정리해 나가요. 실제로 북극여우에서 심장 사상충이 나왔던 사례도 있었어요. 심장 사상충은 모기를 통해서 전파되는 질병인데, 북극여우에서는 처음 확인된 경우였거든요. 이 경우도 폐사 이후에 발견된 거라 더 아쉬웠죠. 그래서 수의사들은 이런 사례들을 최대한 공유하려고 노력해요. 동시에 지금 돌보고 있는 동물들도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보고, 계속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반대로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던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동물원에 개복 수술을 두 번이나 견딘 사자가 있어요.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은 덩치가 크고 장기도 무거워서, 수술 후 경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 사자는 처음에 개와 고양이에게 흔히 발생하는 자궁축농증이 의심돼 응급 수술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수술 자체가 큰 위험이 따르다 보니, 당시 수의사들이 밤새 방법을 찾아보며 다른 접근으로 치료를 진행했고, 다행히 그 위기를 한 번 넘겼어요.

그러고 몇 년 뒤에는 장난감을 뜯어 삼키면서 장이 막히는 일이 생긴 거예요. 다시 개복 수술을 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반대쪽을 열어 수술을 했어요. 장이 하루 이틀 막혀 있었던 탓에 통증도 심했던 것 같아요. 강한 진통제를 써도 한 달 가까이 밥을 먹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비만 개체라 체력을 버틸 수 있었고, 체중도 오히려 적정 수준에 가까워졌어요. 그때 사육사분들이 정말 정성을 다해 돌봤어요. 고기를 잘게 다져 경단처럼 만들어 코에 묻혀가며 먹이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이어지니까 어느 순간 다시 스스로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순간을 겪으면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죠. 그 사자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요.


소중한 존재일수록 오히려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 있었나요?

사실 제가 잘 지키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해요.(웃음) 야생에서 구조된 동물들들과는 애정을 쌓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실습생 시절에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구조사분들이 동물을 꽤 단호하게 대한다는 거였어요. 문을 확 열고 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동물들은 강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런데 동물들에겐 그 스트레스가 필요해요. 사람은 계속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걸 잊지 않도록 만들어야, 나중에 야생으로 돌아갔을 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반면 동물원은 상황이 조금 달라요. 이곳의 동물들은 대부분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우니까요. 물론 동물원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는데요. 다만 저는 동물원 교육의 핵심이 자연 보호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자연 속에 이런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가치를 환기하는 역할이라고 보고 있어요.


동물을 보며 수의사님이 위로받았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동물들은 사육사를 볼 때는 반가워하거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는데, 수의사를 볼 때는 대부분 싫어하거나 경계하는 반응을 보여요. 때로는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경계를 늦추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걱정이 되거든요. 그만큼 기력이 떨어졌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전히 저를 싫어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볼 때, ‘아직은 나를 싫어할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저에게는 나름의 위로가 되기도 해요.


이 일을 하며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마음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더 여려진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조금은 지독해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결국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거라, 항상 기분 좋게만 할 수는 없거든요.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일하다 보면 제가 온전히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데, 딱 하나 남는 게 있어요. 상대를 대하는 태도요. 그래서 한 번 더 마음을 내서 진심을 전하려고 해요. 내가 조금 더 애써서 다정하게 대하면, 그 사람이 맞이할 하루도 아주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결국 그 마음 하나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곳 청주동물원은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의 성장’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시나요?

동물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고 아픈 동물들을 보며 어른들은 자신의 시간을 겹쳐 보게 되고, 아이들은 그것을 낯설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될 거예요.

70년대 말에는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곰 사육을 장려한 적이 있었어요. 시대가 바뀌면서 그 정책은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사육된 곰들은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어요. 인간의 필요로 길러졌다가, 다시 그 필요가 사라지며 갈 곳을 잃은 존재들이죠.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만들어요. 저는 동물원이 그런 생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수의사님이 꿈꾸는 동물원의 모습은 어떤 풍경인가요?

선진 동물원에 가보면 오히려 동물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 영국의 한 동물원을 다녀왔는데, 그곳은 동물 자체보다 동물이 살아가는 서식 환경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곳곳에 교육 자료를 배치해두었더라고요. 다양한 교구도 잘 마련되어 있어서, 동물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방문객들의 인식 수준도 상당히 높다고 느껴요. ‘호랑이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부모가 ‘호랑이도 쉴 때는 쉬어야지’라고 말해주는 모습을 자주 보거든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이제는 관람 방식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제가 꿈꾸는 동물원은 동물을 단순히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동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에요. 동시에 자연이라는 것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자리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수의사님의 마음성장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레이저 각인기요. 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이 각인기로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만들어 추모관에 걸어두거든요. 저희는 죽음이 가까이 있는 일을 하다 보니, 동물들이 이곳에서 생로병사를 모두 겪고 떠나는 과정을 함께하게 돼요. 결국 보내주는 일까지도 저희 몫이에요.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은데, 이 명패를 만드는 과정이 그 친구들을 기억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이 돼요. 단순한 도구이지만 마음을 다독이는 역할을 해주는 물건이라 저에게는 ‘마음성장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름을 새긴다는 행위는 수의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명패를 걸어두는 추모관은 원래 탐조대였던 공간을 직원들이 직접 바꿔 만든 곳이에요. 함께 지냈던 동물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직원들이 위로를 받는 공간이기도 하죠. 명패 뒷면에는 사육사나 수의사가 그 동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편지를 적기도 해요. 이곳에서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존재들이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이름을 새긴다는 건, 그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 같아요.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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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페이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거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싶어요."

최고요 나이키 스토어마케팅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