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식물을 돌보고, 밤에는 곡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는 일상. 밴드 디어 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 임이랑 님의 하루는 요란스럽지 않지만 모자람 없이 흘러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시키고, 식물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새순이 올라온 화분은 몇 시간을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계절의 변화란 그저 시간의 흐름일 뿐이었는데, 이제 봄의 마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아프리카 식물에 관심을 보이는 에디터에게 삽목을 하라며 잎을 뚝뚝 끊어주던 이랑 님과의 대화를 전합니다.
이랑 님의 인생에서 ‘식물’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저는 음악, 글, 라디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에요. 작가로 책도 열심히 쓰고, 뮤지션으로 음악도 열심히 만들면서 살고 있어요. 디어 클라우드 4집을 만들 때였을 거예요. 불안이 극에 달하던 시기부터 식물이 제 삶에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음악 작업은 마음처럼 되지 않아 불안하고 괴로웠는데, 식물은 제가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나더라고요.
EBS의 라디오 프로그램, <식물수다>를 오래 진행하셨어요.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하고 계신데요. 이런 작업들이 이랑 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음악은 함축적인 언어예요. 반대로 라디오는 1을 100으로 세밀하게 나눠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업이죠. 말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거든요. 함축하는 재미와 풀어서 이야기하는 재미, 각각 매력이 달라요. <식물수다>는 3년 동안 진행했어요. 제가 굉장한 내향인인데, 내향인들은 너무 밝으면 이야기를 잘 못하거든요. PD님이 제가 도착하기 전에 늘 라디오 부스의 불을 꺼두셨어요. 스튜디오를 아늑하게 만들어 주셔서, 저는 열심히 떠들다가 왔어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식물을 많이 죽여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말에 공감하시나요?
식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 주기 3년’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열심히 물을 3년 동안 주면, 그 뒤에는 물 주기 실수로 식물을 죽이는 일은 없다는 말인데요. 여기서 포인트는 ‘열심히’입니다. ‘어디 방치해 두고 살아남는 식물만 키운다!’ 이런 거 말고요. 물도 많이 줘보고, 땡볕에 내놓기도 하면서 열심히 키웠는데 죽여본 경험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식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우리 집의 습도, 일조량을 파악하게 되거든요. 이런 경험이 다음 식물을 키울 때 양분이 되어 줘요.
식물을 키우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분갈이와 관련된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식집사에게 분갈이는 김장과 같아요. 친구들이 삼삼오오 화분을 들고 모여 매트를 깔고 수다 떨면서 분갈이 하는 거죠. 뿌리에 붙은 흙을 털고, 수형을 다시 잡고 어느 화분이 어울리는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제법 귀엽고 꽤 즐거워요. 친구 집에 분갈이 출장을 가기도 해요. 마당이 있는 친구들은 조경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요. 지금 봄이라, 출장 요청이 많은 시기예요. 내일도 일정이 있답니다. 집마다 환경이 다르다 보니, 제 로망을 실현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최근에는 그라스 정원을 만들어주고 왔어요. 온갖 종류의 그라스를 심어놔서, 가끔 가서 관리도 해 줘요.
모든 식물이 소중하겠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는 식물도 있나요?
작았던 몬스테라가 거실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큰 거예요. 도저히 더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집이 큰 친구네로 입양 보냈어요. 천고가 3.7m 정도 되는 부잣집으로 보내서 그런지 슬프지 않았어요(웃음). 그 집에서 정말 식물원의 몬스테라처럼 커져서, 나중에는 잎을 잘라 친구들과 나눠 가졌어요. 그때 저도 한두 장 가져왔는데, 다시 또 저만큼 커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어요. 집 떠났던 몬스테라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라서 특별하게 느껴져요.
식물을 키우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일 큰 변화는 오전 기상이에요. 제가 프리랜서로만 살다 보니 12시 전에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죠. 물을 오전에 줘야 좋거든요. 일어난 김에 환기도 시켜주고요. 일찍 일어나다 보니 일찍 자는 루틴이 생긴 것 같아요.
바쁜 일상이나 마음이 지칠 때, 식물이 실제로 도움이 된 순간이 있었나요?
우선, 밖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공간의 냄새가 다르다는 게 느껴져요. 그게 위안을 줘요. 그리고 저는 식물이 살아 있지만 동물이 아니어서 좋아요. 소리를 내거나 행동을 해서 내게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존재가 주는 위로가 있어요. 성장 속도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느새 자라 있는 ‘은근함’이 식물의 매력이에요.
베이시스트라는 본업 외에 식물에 몰입하는 경험이 음악 작업이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제게 식물은 낮의 세계, 음악은 밤의 세계예요. 음악은 아무래도 업이다 보니 좋아하면서도 괴로울 때가 있어요. 애증의 음악 작업을 하며 쌓인 독을 식물을 돌보며 풀어요. 식물은 그저 사랑하는 존재이지, 미워할 이유는 없거든요. 죽으면 그것도 다 제 탓이에요.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요.
반려식물병원도 있다고 해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의사 선생님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는데요. 이랑 님은 이런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식물이 시들시들하다’ 그러면 뭐부터 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영양제부터 꽂아줘요. 그런데 그게 하면 안 되는 행동 1순위거든요. 식물에게도 회복 탄력성이 있어요. 그걸 좀 기다려 줘야 해요. 이미 내가 뭘 잘못해서 식물이 힘든 상태인데, 거기에 영양분을 주면 죽어 버리기도 하거든요.
저는 가만히 놔두는 걸 잘해요. 물도 주지 않고 그냥 놔둬야 하는 식물들이 많은데, 초보들은 적정선에 대한 결정을 어려워하죠. 절댓값이 있는 건 아니니,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경험을 통해 감을 쌓아야 해요.
식물마다 잘 자라는 환경이 다른데, 우리는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식물을 키워야 하잖아요. 이랑 님은 식물의 배치를 어떤 기준으로 정하셨나요?
식물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원산지에 따라서 분류하는 거예요. 밀림에서 온 식물은 기본적으로 습한 환경을 좋아하거든요. 비슷한 환경에서 온 식물을 모아두고 가습기를 틀어 주기도 해요. 반대로 사막에서 온 식물은 집안에서 가장 건조한 곳에서 키우는 거예요.
인테리어를 위한 배치는 정말 정답이 없고, 취향의 문제예요. 식물 간의 조화를 신경 쓰는 분들도 있을 건데요, 이렇게 저렇게 자꾸 옮겨보시고 바꿔보시고 여러 가지 방식을 취해보세요. 분명 그중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식물이 많아도 집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흙도 날리고 지저분해지기 쉬워요. 그래서 청소를 진짜 열심히 해야 해요. 저는 원래 청소를 좋아해서 쓸고 닦는 걸 많이 하는 편인데, 식물을 키우면서 훨씬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키우는 거예요. 감당 가능한 화분은 다섯 개 정도인데, 이것도 키우고 싶고 저것도 키우고 싶어서 화분이 너무 늘어나면 일상이 식물에 치이게 돼요. 힐링을 꿈꿨다가 되레 괴로워질 수도 있으니 꼭 감당 가능한 만큼만 키우세요.
뜨개질이나 식물 키우기 같은 취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요즘 청년들이 이런 취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취미들은 어르신들의 영역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젊은 사람들도 같이 즐기게 됐잖아요. 아날로그의 소중함이 점점 더 간절해지는 세대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디지털이나 AI가 고도화될수록 더 확실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이 소중해지는 거죠.
일조량이 부족한 환경 때문에 식물 키울 엄두를 안 냈던 분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요?
‘식물등’이요.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빛이거든요. 우리 집에 햇빛이 1cm도 안 들어와도 식물등이라는 전구가 있으면 키울 수 있어요. 꽃집에서 파는 화분은 대부분 실내 식물이라서, 생각보다 강한 조도가 필요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땡볕에 내놓는 것보다 식물등 아래서 잘 자랄 수도 있어요.
이 인터뷰를 보고 식물을 키우기로 마음먹은 독자들, 혹은 봄을 맞아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려는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식물이 있으신가요?
몬스테라를 추천해요. 제일 무난하고 키우기 편해요. 몬스테라의 이름이 몬스터(monstrum)에서 유래한 건데, 이름처럼 괴물 같은 성장을 보여주거든요. 일조량에 따라 잎이 갈라지고 천공이 생기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어요. 봄 맞이 추천 식물로는 구근 식물을 추천해요. 저는 최근에 무스카리를 샀어요. 제가 봄마다 사는 식물 중 하나에요. 집안이 화사해진답니다.
이랑 님을 성장하게 만든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그 아이템을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해요.
두 가지 아이템을 소개하려고 해요. 하나는 모종삽이에요. 제가 가드너가 된 후 여러 가지 모종삽을 구매하기도 하고 선물 받기도 했는데요. 결국 하나의 모종삽만 계속 쓰게 되더라고요. 보시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죠? 언제 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집의 역사와 함께 해온 아이템이 하나씩 있잖아요. 이제 저와 한 팀처럼 느껴져요. ‘함께 예쁜 애들 많이 심었구나’ 싶고, 저를 가드너로 성장시켜 준 아이템이에요.
다른 하나는 베이스 기타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많이 배웠어요. 어머니께서 음악을 하고 싶으셨는데, 딸이 그 꿈을 이루기를 바라셨나봐요. 피아노, 플루트, 국악기까지 다양하게 배웠어요. 하지만 전공은 배워본 적 없던 베이스 기타를 선택했어요. 베이스 기타로 학교를 가고 그걸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됐죠. ‘왜 베이스 기타였냐’고 물어본다면, 제 의지로 선택한 악기라는 점이 좋았어요. 지금은 어머니께서 음악 교육을 시켜주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당시에는 독립적인 성향이 컸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우울’과 ‘불안’ 속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는 청년들에게, 이랑 님만의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세요.
제가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라는 책도 쓴 사람인데요. 사실, 우울이나 불안같이 조금 어두운 감정들은 나이를 먹는다고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하루아침에 사라질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아요.
대신, 대처 능력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제일 기쁘고, 제일 평온한지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세요. 저한테는 그게 식물이었어요. 잎을 닦으면서 ‘오늘 하루는 잘 해봐야지’, 물을 주면서 ‘열심히 살아봐야지’,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어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힘껏 좋아하세요. 그리고 거기서 얻은 에너지를 삶의 동력으로 바꾸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게 결국 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예요.
뉴스레터 구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