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세바시. 2011년 처음 전파를 탄 이 강연 채널의 뒤에는 구범준 PD가 있습니다. 올해는 첫 저서 <마음을 읽는 감각>을 냈는데요. 강연 콘텐츠를 만드는 PD이자 이제는 저자이기도 한 그는 ‘낯선 것’과 ‘꾸준함’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불안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표이고, 시간은 가장 강력한 자신의 편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꾸준히 낯선 것을 택해온 구범준 PD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세바시 PD로서의 일상을 여전히 보내고 있어요. 저희가 한 달에 두 차례씩 강연을 여는데, 한 번에 10편에서 16편의 강연이 완성돼요. 강연 준비는 최소 한 달 반 전부터 시작되고요. 강연 한 번에 다섯 명의 강연자가 무대에 서는데요. 준비 기간에 강연자들의 원고를 함께 구성해 나가요. 완성되면 녹화 날 릴레이로 연사들이 강연 무대에 서고, 저희는 그걸 편집해서 채널에 올리는 거죠. 이 과정을 한 달에 두 번씩 반복합니다.
최근에는 책도 냈어요. 올해가 세바시 15주년이거든요. 그 기념의 일환으로 제가 쓴 <마음을 읽는 감각>이 2월에 나왔습니다. 이 책을 알리는 강의와 인터뷰 때문에 요즘 좀 바빠졌어요. 6월에는 세바시에서 내는 두 번째 책 <경계인>도 나옵니다. AI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내 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써보자는 기획으로, 백영재 박사님이 쓴 책이에요.
최근 플레이라이프 워크숍에 연사로 참여해 주셨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이었나요?
책 <마음을 읽는 감각>을 주제로 워크숍을 했는데요. 사실 이 책은 저에게 낯선 주제예요. 저는 심리 상담가도 아니고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거든요. 사회학을 전공하고 평생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해왔는데, 세바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낯설지만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준 주제를 설정해서 쓴 책이에요. 잘 모르는 분야를 강의하는 셈이었죠. 그런데 저한테 딱 하나의 원칙이 있어요. ‘안 해본 것은 무조건 하자.’ 그래서 승낙했습니다.
온라인이었지만 채팅창에 계속 피드백을 올려주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요즘 청년들이 마음이 좀 힘들잖아요.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제가 생각한 것들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들어주고 반응해주셔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2011년 세바시가 처음 시작될 당시, ’15분’이라는 파격적인 포맷을 선택하셨어요. 이 포맷을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그 당시는 지금처럼 전환기였어요. 지금이 모바일에서 AI로 가는 시대라면, 그때는 웹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전환기였거든요. 전환기에는 기존 것들이 무너지면서 위기가 오잖아요. 근데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CBS TV 같은 케이블 종교 채널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였어요. 케이블로는 시청자층을 모으기 어려웠는데, 모바일 친화적인 포맷을 만들어 새로운 시청자들을 모아보자는 생각을 한 거죠.
오프라인 강연도 기존 방송 녹화와는 완전히 다르게 설계했어요. 강연 듣고 조용히 가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참여하게 했거든요. 처음 보는 옆사람 얼굴을 눈을 마주치면서 초상화로 그려주는 활동도 하고, 벽에 사과나무를 크게 그려놓고 마음에 남은 강연 문장을 사과 모양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가도록 했고요. 방청뿐만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에요. 그런 재미들이 쌓이면서, 처음엔 직원들이 자리를 채우던 강연이 7~8개월 만에 400석 만석이 됐어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할 때마다 불안하셨을 텐데, 그 마음은 어떠셨나요?
지금도 불안해요. 그런데 불안이라는 감정을 돌이켜 보면, 막연한 두려움만은 아니에요. 방명록을 쓰는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방명록에 이름을 제일 먼저 쓰는 사람이 종이에 꽉 채워서 쓰면 다음 사람은 어떻게 쓸까요? 다음 사람도 똑같이 크게 쓰겠죠. 조그맣게 쓰면 뒤에 오는 사람도 다 조그맣게 쓰고요. 앞사람 하던 대로 따라 하면 불안하지 않거든요. 방송도 마찬가지예요. 선배가 했던 60분짜리 포맷으로 그대로 하면 하나도 안 불안해요. 근데 우리는 그걸 새롭게 바꿨으니까 불안했던 거잖아요.
저는 불안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표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일이 새로운 방식이고, 이 일에 의미가 있고 그게 도전이기 때문에 불안이 따라오는 거거든요. 30년 가까이 PD로 일하면서 계속 스스로 불안을 선택해왔던 것 같아요. 누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잘했다고 한다면, 그 대가로 계속 불안했던 거죠. 피곤을 자처하는 일인데(웃음) 그 불안 덕분에 뭔가를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세바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 같다’는 공감을 만들어왔어요.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세바시 콘텐츠를 강의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불러요.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고, 세바시 강연은 대부분 1인칭 시점이잖아요. 제가 세바시 강연을 만들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걸 케이크(CAKE)라고 불러요. C는 고백(Confession), A는 각성(Awakening), K는 지식(Knowledge), E는 경험(Experience)이에요.
지식이나 경험은 당연히 필요한 거고, 핵심은 ‘고백’과 ‘각성’이에요. 각성은 ‘내가 몰랐다가 알게 되는 것’이거든요. 모르던 ‘나’와 깨달은 ‘나’가 있고, 그 전과 후가 있을 때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고 ‘나도 에프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어요. 고백은 반대예요. 고백은 ‘나는 원래 천재야’ 같은 말이 아니라, ‘나 정말 바보 같았어, 힘든 시절이 있었어’라는 이야기예요. 지금은 그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건, 그만큼 나아진 거잖아요.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바로 ‘나의 취약성’이에요.
이 개념은 공동 인간성(Common Humanity)과 연결돼요. 상담 심리학에서도 ‘이게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내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는지,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 이야기가 지금 힘든 사람의 삶에 의미와 도움을 주는 거예요. 계속 잘난 것만 얘기하면 공감이 생기기 어려워요. 과거의 취약했던 나를 고백하고, 어떤 계기로 변화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가야 사람들이 공감하는 거죠.
연사를 섭외할 때 어떤 기준으로 보시나요? 그 사람의 ‘진짜 삶’을 읽어내는 방법이 있다면요.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있어요. ‘이 강연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세요?’. 이야기는 의미거든요. 내가 살면서 배운 경험을 통해 타인과 세상에 전하는 의미, 그게 ‘이야기’예요. 그래서 메시지가 가장 중요해요.
어떤 분들은 “나는 2시간도 강의하는데, 내가 아는 거 알려드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저희 강연은 아는 걸 전달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가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세바시 이야기거든요. 메시지가 나오면 그다음은 ‘그 메시지를 어떻게 뒷받침할 거예요?’를 같이 의논해요. ‘인생은 도전하며 살아야 한다’가 메시지라면, 그 도전의 이유가 뭔지, 그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와 경험이 뭔지를 물어보는 거죠. 자기 이야기가 나와야 해요. 그게 없으면 강연이 성립하기 어렵고, 그것이 저희의 검증 기준이기도 해요.
피디님이 직접 세바시 무대에 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낯선 것을 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제 인생 슬로건이 ‘낯선 것은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든다’거든요. 우리의 지식도, 경험도, 몸도 다 낡아져요. 제가 세바시를 처음 시작할 때 썼던 방식을 지금 그대로 하면 100% 실패해요. 그러니까 제 경험은 지금 기준으로 낡아진 거예요.
세바시를 하면서 관심사 밖의 일들을 해왔어요. 그러면서 평생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배우게 됐죠. 낯선 것은 단순히 생소한 것이 아니라 ‘새로움’, 즉 혁신이에요. 모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출발하거든요. “낯선 것이 나를 살린다”는 신념을 메타인지 속 원칙으로 삼으면, 뇌는 자동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게 돼요. 원고 마감일이 정해져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밥을 먹다가도 계속 원고 마감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처럼요. 마치 AI 에이전트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까요?
네 가지 질문이 있어요. 첫 번째는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예요. Why를 먼저 따지는 거죠.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한테 ‘우리는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회사다’라고 했을 때, 그게 Why였거든요. 이유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게 내 철학이자 신념이자 내 일의 의미니까요. 두 번째는 ‘나는 새롭게 보는가’예요. 언러닝(Unlearning)이라는 개념인데요, 기존에 알던 것을 내려놓고 새롭게 정의하는 거예요. ‘a는 b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시대가 달라지면, a를 다시 정의해야 해요. 뻔한 메시지로는 사람들이 따르지 않아요. 내가 만든 의미를 새로운 문장으로, 새로운 메시지처럼 만들어야 통하거든요.
세 번째는 ‘나는 낯선 것과 친한가’예요. 낯선 것을 해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겨요. 이야기는 90%가 에피소드고 10%가 의미예요. 내가 익숙한 공간 속에만 머물면 그 사례들이 생기지 않아요. 낯선 것을 하는 과정이 곧 내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이에요. 네 번째는 ‘나는 나를 믿는가’예요.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이 ‘성장 마인드셋’이라고 표현한 건데요, 실패를 겪었어도 성장할 거야, 라는 삶의 태도예요. 이 네 가지 질문을 반복적으로 거치다 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완성돼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의미를 가진 사람이고, 의미는 AI가 만들 수도, 복제할 수도 없으니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거죠.
그러면 애초에 자기 마음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어떤 행동을 권하시나요?
글쓰기, 즉 기록을 권하고 싶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기록을 일찍부터 하지 못한 거예요. 여기서 글쓰기는 내 마음과 그때의 상황을 내가 해석한 형태로 문장을 쓰는 거예요. 그 기록이 엄청난 자산이 되거든요. 제가 쓴 <마음을 읽는 감각>의 핵심 메시지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자극을 내 나름대로 해석한다’는 거예요. 회사에서 상사한테 잔소리를 들었다고 했을 때, 발생한 일보다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를 기록해 보세요. ‘그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생각만 하는 건, 그냥 잡생각이에요. 글로 써야 비로소 수련이 됩니다.
기록하다 보면 알게 돼요. 상사가 나를 혼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는 걸요. 그걸 알면 다음에는 상사에게 ‘이 부분은 알아주셔야 해요’라고 말할 용기가 생겨요. 자기 마음을 알면 행동이 달라지는 거예요.
피디님을 성장하게 만든 딱 하나의 아이템을 꼽아주세요.
농구공이요. 성장할 때 가장 방해되는 게 피로감이잖아요. 힘들다는 감정, 안 된다는 느낌. 그걸 리프레시하고 다시 용기로 바꿔주는 뭔가가 있어야 성장이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공부하고 책 읽고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그걸 지속 가능하게 하는 건 오히려 노는 거거든요. 저는 그게 농구예요. 어릴 때부터 농구를 정말 좋아했는데, 바빠지면서 그만뒀어요. 그러다 마흔 중반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코로나19 때 실내 운동이 제한되면서부터 아예 제가 야외에서 하는 농구단을 만들었어요. 페이스북에 “야외 코트에서 농구할 사람 손 들어” 하고 올렸더니 서너 명이 신청을 하더라고요. 그게 지금은 40명이 됐고, 벌써 6년 차입니다.
이름이 ‘미라클 모닝 농구단’이에요. 토요일 새벽 6시에 시작해서 9시 전에 돌아가거든요. 육아하는 아빠들이 아기와 엄마가 자는 유일한 시간에 나왔다가 아내 깨기 전에 돌아가는 거예요. (웃음) 그런데 이 팀이 작년 11월에 오키나와로 전지 훈련을 갔어요. 3박 4일 일정으로 가서 현지 팀과 경기를 하고 돌아왔어요. 이 농구단을 하면서 절대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요. 에어컨 수리 기사, 음료수 유통업자, 보험 설계사,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직종과 다양한 세대가 섞여 있어요. 이 시간이 주는 행복감이 일의 성취감과는 달라요.
마음 성장을 위해 모인 플레이라이프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간은 가장 강력한 나의 편이다.’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원하는 성과가 안 나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건, 예전에 꾸준히 하다가 성과가 안 나서 멈춘 것들을 돌이켜보면 ‘조금만 더 했으면 달라졌을 텐데’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거든요. 세바시의 유일한 성공 전략을 꼽으라면 꾸준히 한 것이에요. 2011년부터 지금까지 강연이라는 포맷으로 꾸준히 올린 채널은 우리밖에 없어요. 구독자가 10만도 안 되던 시절이 4~5년이나 됐어요. 그때는 조회수 2천을 넘으면 환호했어요. 지금 기준으로는 저조한 것이지만요. 만약 지금 같은 시대였다면 그만뒀을 거예요. 그리고 그만뒀다면 220만 구독자 채널은 없었겠죠.
청년들한테 자신의 전성기가 언제냐고 물으면 70~80%가 ‘18살, 20살 때’라고 대답하더라는 조사가 있어요. 이제 막 20대 초반을 사는 사람들이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살아온 기간만이 나의 삶을 대변한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런데 앞으로의 시간은 모두 내 편이에요. 지금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면,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세요. 엔딩 지점은 항상 생각보다 훨씬 뒤에 있기 마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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