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버려진 식물들이 가르쳐 준 것

“100%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희망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어요.”

백수혜 작가

재개발 단지에 버려져 있던, 하지만 시멘트 바닥에서도 꿋꿋이 자라던 알로카시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버려진 식물을 집으로 데려온 일을 계기로, 백수혜 님은 ‘식물 유치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식물이 늦더라도 다시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며, 그는 생각합니다. 나도 나만의 속도로 성장해도 충분하다고요.

백수혜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정해진 삶의 속도를 벗어난 것 같아 때로는 조급해지곤 했어요. 하지만 아스팔트 바닥에서 추운 날씨를 버티고 살아남아서 자기만의 속도로 싹을 틔워내는 꽃기린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 작가인 저는 혼자 작업하는 게 익숙했는데,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식물 하나만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경험이 즐거웠어요. 결국 사람과의 소통이 소중하다는 걸 느껴요.

 

• 남들이 정해놓은 주류에 속하기보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통해 ‘나만의 리그’를 만드는 게 좋아요. 사실 식물에도 잡초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누군가 멋대로 정한 기준일 뿐이죠.

“100%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희망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어요.”

동네를 산책하다 우연히 식물 구조를 시작했어요

2021년 여름에 공덕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어느 날 건너편 재개발 단지에 알로카시아라는 식물이 버려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흙이 하나도 없는 시멘트 바닥인데도 잘 자라고 있는 걸 보니, 제가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서 죽게 놔두기보다는 집으로 데려가서 어떻게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100%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희망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낸 것 같아요.

 

죽어가던 식물을 되살려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열었어요

그렇게 처음 식물을 구조하고 뿌리를 여러개로 나누니 한 번에 서른 개 가량의 알로카시아가 생겼어요. 이걸 어떻게 할지 고민했죠. 친구가 ‘인터넷에 식물에 대한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계정이 많으니 분명히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구조해온 식물들이 조그마한 새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니 유치원생, 어린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덕동 식물유치원’ 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계정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공덕동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의 재개발 단지에도 찾아가서 버려진 식물 친구들을 구조하고 있습니다.

구조 활동을 진행한 재개발단지. 출처 : 공덕동 식물유치원 트위터

“식물은 악조건이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이라도 자라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달리, 식물은 불만이 없더라고요

식물을 구조할 때는 먼저 버려져 있는 식물이 맞는지 꼭 확인해요. 잠시 밖에 두신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구조한 뒤에는 상태에 따라 물에 넣어주거나, 흙에 심어줘요. 2주가 지나면 어느 정도 튼튼해지고요. 그렇게 식물유치원을 ‘졸업’할 준비가 된 친구들은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요.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 나타나면 나눠 드리고 있고요.
구조한 식물을 보다 보니 식물은 불만이 없더라고요. 있는 자리에서 잘 자라주는 것 같아요. 사람은 서면 눕고 싶고, 누우면 앉고 싶어 하잖아요. 식물은 악조건이라고 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이라도 자라주더라고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구조한 꽃기린을 보며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재개발 단지를 돌아다니다 죽어가는 꽃기린을 마주쳤어요. 날씨가 추운 봄이었기에 죽었겠거니 하고 지나쳤죠. 그런데 며칠 뒤에 가보니 조그마한 싹을 틔우고 있더라고요. 열대성 식물인데도 추위를 버티고 살아남은 거예요. 바로 집으로 데려왔어요. 지금도 자신만의 속도로 조금씩 자라나고 있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사회적으로 나이별로 요구하는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어떻게 보면 거기에서 벗어나서 움직이고 있어요. 제가 선택한 삶이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멈춰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기도 해요. 특히 작품활동이 저조한 편이라 대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나만의 속도로 싹을 틔워내는 꽃기린의 모습을 보면 저 또한 나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해살이 식물은 첫해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해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껴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고요. 꼭 당장 꽃피우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여유를 가지고 나답게 살자는 생각을 했어요.

추운 봄날 구조한 꽃기린
입양될 준비를 마친 ‘졸업반’ 식물들

“식물을 데려간 분이
나중에 종종 연락을 주시기도 해요.
그런 근황을 들으면 너무 즐거워요.”

구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사람들 덕분이에요

유치원을 졸업한 식물 친구들을 데려가 주시는 분들,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3년 넘게 식물 구조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요. 제가 구조한 식물이 구하기 어려운 식물도 아니고, 어떤 색의 꽃을 피울지도 알 수 없는 친구들인데 ‘괜찮아요. 다 예쁘겠죠.’ 하고 데려가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너무 감사하죠.

 

혼자가 익숙했는데, 사람과의 소통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본업이 작가다 보니 혼자 작업하고 활동하는 것이 익숙해요. 그러다 보니 제 성향이 엄청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운영하고 난 뒤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연결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됐어요. 용기를 내어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뵈었고,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게 되었죠. 전혀 만날 수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분이거나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도 있었어요. 여러 시각이 모이다 보니 틀을 깬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먹거리, 씨앗, 책, 스티커, 식물 등을 나누고 베푸는 기쁨도 컸고요. 결국 사람과의 소통이 소중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l 저서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 북토크 현장. 출처 : 공덕동 식물유치원 트위터

“‘나는 소수고, 타자고, 이방인이구나.’
그런 경험 때문인지
재개발 단지의 식물에 더 마음이 갔어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재개발 단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마주쳐요. 귀중품을 찾아다니시는 분도 있고, 전선을 끊어가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 버려지는 식물은 다들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돈이 되지 않으니, 그런 기준에서 ‘필요 없는 것’이라고 규정되는 거죠. 사람들이 재개발 단지에 식물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기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주류 사회로 섞여 들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동양인이고, 여자고, 영어도 완벽하지는 않다 보니 ‘나는 소수이고, 타자이고, 이방인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런 경험 때문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재개발 단지의 식물에 더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우리들만의 주류’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가 메이저, 마이너를 나눠 생각했었는데, 저와 같은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마흔이 넘어서 학교에 들어온 친구도 있었고, 다른 해외 유학생 친구도 있었죠. 그런 친구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결국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우리들만의 주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느꼈어요. 식물 분류학에는 ‘잡초’라는 분류는 없어요. 그냥 누군가가 멋대로 ‘잡초’라고 결정지으면 잡초가 되는 거죠. 다른 사람의 잣대로 정해진 주류에 속하려 하기보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통해 ‘나만의 리그’를 만드는 게 좋아요.

“‘라벤더 정원은 있는데 왜 도라지 정원은 없을까?’
먹는 식물로만 생각했던 식물들도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허브 정원보다는 도라지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어느 순간 ‘라벤더 정원은 있는데, 왜 도라지 정원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전국에 ‘허브 랜드’ ‘허브 동산’ 이런 곳들은 많은데, 온실이나 식물원 없이도 자랄 수 있는 자생 식물로 만든 정원은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채꽃, 도라지와 같이 먹는 식물로만 생각했던 식물도 가치를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인식, 생각은 항상 변하는 것이니까요.

백수혜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운전 면허증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것이 저에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해요. 사고가 날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는 걸 체감했거든요.

• 고양이 ‘네로’

네로가 아팠던 적이 있어요, 의사도 안락사를 권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고, 다행히 건강해졌어요. 제 결정이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 잡초

식물 분류학에는 잡초라는 분류가 없어요. 우리가 잡초라고 생각한 풀들도 하나하나 이름있는 풀들이고, 쓸모 있는 식물도 많아요. 잡초를 보다 보면 나도 무언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잡초’라는 건 인간이 정해 놓은 쓸모에 따른 분류일 뿐, 그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이름과 특성을 가진 고유한 풀들입니다. 사람의 일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정해 둔 기준만을 따르면, 나 자신을 오직 잡초로만 보게 되겠지요. 사실은 온실 속의 화초와 달리, 끈질기고 자생력이 강한 식물일 텐데도요.

스무 개의 일을 거쳐 찾은 나의 일

"방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이 조금 방황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김스튜 도배사

정확한 나의 욕망을 안다면

“욕망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욕망이 곧 저예요. 그걸 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보이거든요.”

박지완 영화 감독, 작가

계획보다 중요한 건 회고예요

“늘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실수를 다시 되돌아볼 수 없어요.”

고은지 서점 <오키로북스> 기획자

불행의 빈도를 줄이는 삶

"불행하지만 않으면 행복한 거 같아요. 매일매일 불행한 건 좀 힘들잖아요. 근데 그 빈도를 줄이겠다는 느낌으로 가는 거죠."

김현우 덱스터 매치무브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