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세 번의 번아웃 이후 알게 된 것

"번아웃은 일상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때를 벗기듯이 돌봐야 해요."

장재열 작가, 상담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조용히 찾아오는 번아웃, 미리 피할 방법은 없을까요. 수많은 청년을 상담해 온 장재열 님은 단호하게‘번아웃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본인 또한 세 번의 번아웃을 이겨내야 했지요.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번아웃이 드리울 때 나의 마음을 지켜줄 자그마한 우산을 준비할 수는 있으니까요.

장재열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나만 유독’이라는 허상

나만 힘들고 예민한 것 같다는 프레임이 부정적인 마음을 더 심화시켜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로에요.

 

• 번아웃은 조금씩 돌보는 것

번아웃은 비염, 디스크처럼 계속 관리해야 하는 쪽에 가까워요. 번아웃이 왔을 때는 생각할 힘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 스스로를 잘 파악해야 해요.

 

• 반짝이는 성공보다 사소한 행복

강아지와의 산책, 친구와의 통화 같은 사소한 행복을 미루지 않아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원대한 목표만큼이나 사소한 즐거움의 중요도가 크다는 것을 알거든요.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이게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잖아요.

저를 멈춰줄 어른이 없었어요.”

서울대 ‘헤르미온느’, 사실은 나에 대한 혹사였죠

남들보다 빨리 성취해서 좋은 것들을 가져야 한다는 욕망이 있었어요. 항상 마음이 급했죠. 학창 시절에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겪었어요. 가해자들보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 ‘대학은 서울대에 가고, 회사는 삼성에 가야 한다.’는 사고가 박혀있었고, 그걸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사회에서 정해놓은 높은 기준을 무리하면서까지 따라갔고요.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헤르미온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요.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했기에 뒤처지지 않았을까 하는 조급함이 있었거든요. 졸업할 때 보니 쌓은 스펙 내용이 40개쯤 되더라고요.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이게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잖아요. 저를 멈춰줄 어른이 없었어요. 바쁘게 살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삶이 편안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에 대한 혹사를 정당화했어요.

 

목표에 도달하고 나서 터져 나온 번아웃

막상 원하던 기업에 입사한 뒤 소진을 마주했어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도달하고 나니 억눌렀던 힘듦이 터져 나온 거죠.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몰랐기에 우울감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몸에서 문제가 드러났어요. 업무가 끝나고 쓰러지거나 정문에서 기절하는 등 신체적인 신호가 나타나더라고요.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에도 바로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동기들은 다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나만 왜 이렇게 유난일까?’ 하는 자책감이 컸어요. 무엇보다 부모님이 얼마나 실망하실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요.

 

결국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부모님께 퇴사해야 될 것 같다고 얘기 드렸어요.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부모는 자식이 잘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1번이지만, 자식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0번이다.’라고요. ‘부모의 자랑스러운 간판이 되려 하지 말고, 네가 숨통 트이는 대로 살아라.’라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서야 그만둘 수 있었어요.

“다들 혼자 앓고 있는 것뿐이지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죠.”

글쓰기 테라피 활동을 계기로 상담가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치료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거잖아요. 항상 억울하다고 얘기했어요. ‘나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면서요. 병원을 계속 옮겨 다니다 한 심리상담사 선생님을 만났어요. 글쓰기 테라피를 권하시더라고요. 자기 자신에게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요.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글을 써놓으면 틈틈이 봐주겠다고 하셔서 글을 쓰게 되었죠.

 

솔직한 마음을 블로그에 털어놓다 보니 많은 사람이 공감해 주셨어요. 의도치 않게 1년 만에 5만 명 정도가 보는 콘텐츠가 되었죠. 제 블로그를 상담 블로그로 오해하고 사연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사실 저는 환자고 치료 과정 중이라고 답변을 보냈는데, 몇몇 분들이 오히려 “나도 환자고 너도 환자니까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래?” 제안하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사람과 메일로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다들 혼자 앓고 있는 것뿐이지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주고받은 메일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의 시초가 되었어요. 7명의 친구와 모여 주말과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서 2030 청년분들의 고민을 무료로 상담하는 자원 활동을 11년째 지속하고 있어요.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팀 멤버들]

“고민의 형태는 정말 각양각색이에요.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나만 유독 왜 이렇지?’ 생각한다는 거예요.”

‘나만 유독’이라는 허상을 깨야 해요

11년간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4만 명 넘는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세상 모든 부류의 청년을 만난 것 같아요. 고민의 형태가 정말 각양각색이에요. 열정이 과해서 소진된 사람도 있고, 열정이 없어서 무기력한 사람도 있죠.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나만 유독 왜 이렇지?’ 생각한다는 거예요. 삶에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는 결국 주변을 둘러보게 되잖아요. 그들이 괜찮아 보이면 나만 제일 힘든 시기를 겪는 것 같고, 나만 제일 예민하고 불안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각자 살고 있는 사회적인 울타리가 좁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나만 유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허상, 프레임이 부정적인 마음을 더 심화시켜요.

 

그래서 저희가 오프라인으로 상담할 때는 반드시 집단 상담만 해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직접 느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로가 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참여자분이 고민을 말하면 꼭 다른 참여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물어봐요. 처음에는 움찔하세요. ‘내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온 사람인데, 내가 누구한테 조언해?’ 이런 생각이신 거죠. 대화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조언이 튀어나와요. ‘내 문제라서 허둥지둥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한테 조언해 줄 수 있는 지혜가 있구나.’라는 걸 재확인하면 ‘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생력을 찾을 수 있어요. 이게 저희한테 좋은 답변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죠.

“과로 상황에서는 휴양이 필요하지만,

번아웃은 일상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때를 벗기듯이 돌봐야 해요.”

번아웃은 가랑비에 옷 젖듯 찾아와요

WHO(World Health Organiztion, 세계보건기구)에서 번아웃에 대해 증상을 명시한 게 2018년이에요. 단어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시작된 지 5년밖에 안 된 거죠. 여러 가지 개념이 뒤섞여 있는 단어지만, 그럼에도 지친 것과 번아웃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가 있어요. ‘의미’와 ‘보상’의 존재 여부예요. 번아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상실했을 때 찾아오거든요. 그래서 전업주부, 공시생 같은 분들이 번아웃에 취약해요. 생각해 보면 이분들은 매일매일 일을 하는데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아요. 가족들의 인정이나 칭찬도 드물고, 금전적인 보상도 없죠. 노동량은 계속 반복되고, 멈출 수도 없어요. 그렇게 매일매일 정신적인 에너지가 깎여나가다 보면 소진이 일어나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도 모르게 와버리는 게 번아웃인 거죠.

 

내가 뭘 할 때 회복되는지를 알아두세요

번아웃은 극복할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돌보는 개념이에요. 큰 수술이 필요한 병이 아니라 비염이나 디스크처럼 계속 관리해야 하는 쪽에 가깝죠. 번아웃을 겪으면 여행을 가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큰맘 먹고 장기 휴가를 다녀온 다음 이렇게 말하세요.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똑같아요. 어떻게 해요?” 사실 과로 상황에서는 휴양을 갔다 오는 게 필요하지만, 번아웃은 일상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때를 벗기듯이 돌봐야 해요.

 

내가 어떤 것에서 회복감을 느끼는지 스스로를 잘 파악해야 해요. 사람들 각자 자신에 맞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이미 번아웃이 왔을 때는 생각할 힘이 없잖아요. 미리 나를 알아 놓는 준비 과정이 중요해요. 저는 아침마다 명상 모임을 가지면서 ‘존재 소개’라는 활동을 진행해요. ‘나는 OO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메모에 기록하는 거예요. ‘나는 화가 나면 운동을 하면 풀린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한다.’ 이런 자신의 기질, 특성의 조각을 모아두는 거죠.

“번아웃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경각심과,

언젠가 지나간다는 위안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해요.”

세 번의 번아웃을 겪어본 뒤의 깨달음

살면서 세 번 정도의 번아웃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두 번째는 그냥 무조건 쉬었죠. 세 번째를 겪고 난 이후에는 ‘그냥 오늘을 살되 그 안에서 회복이 일어나야 된다.’라는 걸 깨달았어요. 번아웃은 언제 올지 몰라요. 그리고 끝이 안 날 거라고 생각을 하게 돼요. 지금 당장이 너무 힘드니까요.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경각심과, 언젠가 지나간다는 위안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번아웃이 찾아오면 스스로를 자책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준비해놨던 나만을 위한 테라피를 꺼내서 쓰는 식으로 넘기는 거죠. 우리가 옆구리에 작은 우산 하나를 끼고 걸으면 오늘 비가 오든 안 오든 큰 걱정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주 최소한의 루틴이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장소든 나를 지켜줄 무언가를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살아가면 좋은 것 같아요.

 

힐링도, 동기부여도 맹신하면 안 돼요

힐링에 쏠려 있는 10년 전이나, 동기부여에 쏠려 있는 지금이나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똑같이 번아웃을 겪는 사람이어도 10년 전이었으면 ‘지금까지 수고했고 쉬어도 좋다.’라고 말했을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이 성장하는 중인 거다. 멈추지 말아라.’ 밀어붙이죠. 힐링이 나쁘고, 동기부여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이 두 콘텐츠는 모든 시대에 공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이 그중에서 취사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결국 스스로 중심을 잡고 선택해야 해요. 콘텐츠를 맹신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지금은 팔로워 수, 구독자 수, 조회 수가 마치 권위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조회수가 많고 구독자 수가 많다고 결코 검증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포럼 연사로 활동 중인 모습]

“고맙다는 말도 수백 번을 듣다 보면

처음과 똑같이 들리지는 않아요.

보람보다는 책임감으로 상담소를 유지해 왔어요.”

은근하게, 약한 불로 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저희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저희는 의료진이 아니잖아요. 질병의 영역을 다룰 수 없어요. 선생님들께서 ‘유사 의료행위를 하는 게 아니냐, 위험해 보인다.’라는 얘기도 많이 하셨고요.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어요. ‘게이트 키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문가들을 만나기 전에 털어놓을 수 있는 ‘원 스텝’이 필요하잖아요. 바깥에 있는 문지기로서 많은 분께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아요.’라고 말해드리는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상담하면서 처음 2, 3년은 보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맙다는 말도 수백 번을 듣다 보면 처음과 똑같이 들리지는 않아요. ‘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있어.’라는 감정도 무뎌지기 마련이고요. 보람보다는 책임감으로 상담소를 유지해 왔어요. 내담자분들이 ‘너무 힘들어지면 믿을 구석이 있어.’ 라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항상 팀원들한테 ‘은근하게, 약한 불로 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해요. 이 일은 월급 받는 일도 아니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봉사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우리 사회에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안전망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서 저희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요.

“어느 순간 ‘내가 또 반짝이는 걸 찾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는

사소한 행복을 미루지 않아요.”

반짝이는 성공보다는 사소한 즐거움에 집중해요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만들고 작가로 데뷔해서 활동하던 어느 순간 ‘내가 또 반짝이는 걸 찾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책 판매량에 신경 쓰고, SNS 좋아요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번아웃이 왔던 20대의 반복으로 30대 초반을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원대한 목표만큼이나 사소한 즐거움의 중요도가 크다는 것을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저희 강아지와 산책하는 시간, 헬스장에 운동하러 가면서 걸어가는 시간, 운동 끝난 뒤에 시원함, 친구에게 걸려 오는 전화 같은 사소한 행복을 미루지 않게 됐어요.

장재열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명상에 사용하는 종소리 앱

밤에 불필요하고 나를 잡아먹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생각들을 끊어주기 위해서 사용해요. 우울함이나 불안은 과거나 미래를 과하게 생각하면서 오거든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 매일 기록한 ‘존재 소개’ 메모

‘나는 OO한 사람이다.’라고 하루에 한 개씩 적어 놓은 메모를 모아요. 나의 기질, 특성, 취향을 모아서 나라는 사람의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거죠. 힘들고 지쳤을 때 메모를 통해서 힌트를 얻고 회복에 들어가요.

• 자존감 칠판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던 말이라면 뭐든지 칠판에 적고, 자기 전에 그 칭찬을 읽어봐요.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해줬던 칭찬을 스스로에게 영양소처럼 집어넣고 나의 장점을 찾으려고 해요.

오랫동안 쌓여 몸집이 거대해진 스트레스는 한 번의 휴식만으로 해소되지 않죠. 번아웃에 대비할 수 있는 작은 우산 하나를 마련해 두세요. 내리는 비를 막을 도리는 없지만, 모든 비는 언젠가는 그치기 마련이니까요. 나를 알아가는 순간들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맑게 갠 하늘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가장 성장한 사람은 나였어요

“강압적인 규칙을 정해놓고 자신을 힘들게 만들면 그 일을 좋아할 수 없어요.”

이미준 카카오스타일 프로덕트 오너(PO)

아무리 깎아내려도 다치지 않는 단단함

"‘무서우니까 안 한다’ 가 아닌 ‘무섭지만 계속한다’ 인 거죠."

이소 에디터, 생활 검도인

온전히 내 생각을 따르는 삶

“남들이 해주는 어떤 말도 제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정지음 작가

기록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다정한 안부

“기록이 진해질수록 허무함은 희미해져요”

김신지 에세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