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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장은교의 오늘] 대체로 부끄럽고 가끔 괜찮은 나에게

인생은 완벽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나에게 악수를 건네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장은교 작가

평범한 삶을 분해하던 시절

20년 전 나에게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입사용 자기소개서’ 쓰기였다. 자기소개서를 잘 쓰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했다. 첫째 뛰어난 사람일 것. 둘째 남이 보기에도 내가 뛰어난 사람일 것. 목적은 분명했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서 찾는 인재로 보이는 것. 회사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이런 질문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에 지원한 동기’ ‘성장과정’ ‘나의 장점과 단점’ ‘내가 이룬 성취와 그것을 이룬 과정’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 ‘회사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 ‘특기사항’ 등등.


출제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항목을 나누는 것이 응시하는 사람이나 채점하는 사람 모두에게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실제로 나중에 채점하는 사람이 되어보니 그랬다), 당시엔 그저 막막한 심정이었다. 내 인생을 4~5조각으로 나눠 그럴듯한 이야기로 완성해야 하는 부담감 앞에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학생 때까지는 그저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 것을 요구받다가, 사회로 나가려니 “왜 그렇게 진부하게 산 거야? 뭐 좀 특별한 거 없었어?”라는 질책을 받는 느낌이었다. 속으로는 억울했으나, 겉으로는 “그러게 말입니다”라는 말이 한숨처럼 새어나왔다. 인기 없는 드라마 세 번째 조연의 친구의 친구로 나오기에도 부족할 것 같은 나의 평범한 인생사를 촘촘히 분해해, 출제자의 의도에 맞춰 재조합했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십여 년의 삶을 무수히 복습했다. 되감기, 정지, 다시 되감기. 이 장면은 저 신(scene)에 붙여야 하나. 이 장면은 좀 약한데 어떻게 각색하지? 그중 가장 어려운 질문은 ‘회사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였다. 당시 인기 있던 한 기업의 지원페이지를 열었다가 이 질문 때문에 지원을 포기했다. 그 회사는 은행이었고, 숫자와 관계가 악화된 지 오래였던 나는 은행이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뽑으시면 안 됩니다.’ 여덟 글자를 키보드로 눌렀다 지우고 문서창을 닫았다. 허세에도 양심의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해볼 수 있었지만,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선진금융의 미래를 열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결국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했음에도 2년 동안 언론사에만 지원했다. 주구장창 떨어지는 동안, 자기소개서에는 탈락과 끈기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험을 보는 열정의 이야기가 추가됐다. 대체로 초라한 기분이었으나 그럼에도 다시 시험을 볼 마음을 먹은 나를 격려하며. “자기소개서 쓰는 거 지겹다”라는 말을 하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 낙방의 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을 때쯤…신문기자 시험에 합격했다.

끝난 줄 알았던 질문

입사 이후 자기소개서는 잊어버렸다. 회사도 잊어주길 바랐다. 할 수만 있다면 회사 컴퓨터에 침입해 파일을 삭제하고 싶었다. 타인에게 선택받고 싶어 한껏 부풀린 나를 마주하는 것이 민망했다. 다행히(?) 자기소개서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대신 다음의 시험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쳤다. 매일의 보고와 취재와 기사마감이 이어졌고, 입사한 지 몇 달 만에 자기소개서 속 패기 넘치던 사람은 전생의 나처럼 여겨졌다. 어떤 날은 이런 고생과 고통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또 어떤 날은 이렇게 살려고 그동안 그렇게 간절히 시험을 봤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었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괜찮아, 이제 자기소개서는 안 써도 되잖아.” 사원증[1.1]이나 월급만큼, 더 이상의 자기소개서 쓰기는 없다는 사실이 달콤했다.


다시 자기소개서를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17년이 지난 후였다. 이직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녔고 퇴사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상황에서 퇴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자기소개서는 목적이 없었다. 그저, 편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는. 쓰는 사람도 나, 보는 사람도 나. 분량제한도 마감도 없는. 쓰고 싶으면 쓰고 안 쓰고 싶으면 안 써도 되는 그런 글이었다. 다행히 글로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니, 아무렇게나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 자기소개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의무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마감 시간은 무섭고 힘이 세다.)
자기소개서의 질문들은 시간이 지난 뒤 봐도 너무 구리다.
(나는 심지어 ‘인터뷰를 할 때 자기소개서 속 항목들처럼 질문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간 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자기소개서’이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아직도 쓸 수 없을까

참 이상한 일이었다. 17년을 취재 기자로 일했다. 정체성을 바꿀 만한 시간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겪었고, 그것은 분명 내 안의 일부가 되었다. 유년기 성장 과정을 뛰어넘을만한 직업인으로서의 성장기가 쌓였다.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쓸 때의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칭찬도 많이 들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상도 받았고, 소송도 당해 봤다. 진실을 밝혀내기도 했고 오보를 쓴 적도 있다. 나를 소개할 이야기가 흘러넘쳐야 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자기소개서 앞에 선 마음은 그저 막막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귀찮아서 라는 점이 일부 있다는 것을 여전히 부인할 수 없지만)


내가 나에게 너그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을 소개해보려고 할 때, 그러니까 대체로 좋은 점들을 정리해보고 안 좋은 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해보려고 할 때마다, 팔짱을 끼고 한쪽 입술을 삐죽거리는 내가 등장한다.


“그게 진짜 니가 잘한 거야?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니고? 사실 너, 알잖아.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다 만 거 아니야? 그때 그 실수했던 거, 잘못했던 거 기억나?”


아니 내가 무슨 자서전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영웅 서사를 만들어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게 이럴 일이야? 내가 나를 이렇게까지 방해할 일이야? 이해가 안 됐지만,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나였다.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입사용 자기소개서를 쓸 때 20여 년의 삶을 복습했던 것처럼,
다시 나만의 자기소개서를 써보려 하며 직업인으로서의 20여 년을 복습했다.
나조차도 이상하리만큼 잘못한 것들, 아쉬웠던 것들이 줄줄 떠올랐다. 취재 과정에서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 어이없는 실수로 대형 오보를 낼 뻔했던 일(이것은 주로 숫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취재 지시를 잘못 알아들어서 헤맨 일. 아니, 기억력이 왜 이렇게 좋아? 갑자기?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는 내가 나와 맺는 관계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나를 얼마나 박하게 대하고 있는지, 내가 나에게 얼마나 모질게 굴고 있는지. 그것은 완벽주의라거나 겸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어리석은 삶의 태도였다. 나는 나를 좀 인정해 줄 필요가 있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늘 시험을 보고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중간고사는 잘 봐야지. 기말고사 망치지 말자. 대학은 가야지. 취업은 해야지. 이것만, 제발 이것까지만 해내자.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고 생의 단계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새로운 시험과 과제들이 끊임없이 주어졌다. 잘하고 못 하고는 상관없었다. 서른 살은 처음이어서, 10년 차 직장인은 처음이라, 이번 취재는 처음이라, 저 사람과 일하는 건 처음이라, 팀장이 된 건 처음이라, 이런 시국은 처음이라. 늘 당황스럽고 늘 ‘이번만 이것만 잘 넘기자 해내자’는 생각이 마음 어딘가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오늘’을 즐기지 못했고, ‘과거’는 너무 빨리 무시했으며 ‘내일’을 위해 오늘을 해치우는 마음으로 살았다.


대체로 부끄럽고, 가끔 괜찮은 기록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서 대신 다른 것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아무 단어, 질문, 어떤 장면에 대한 스케치, 어떤 감정들. 그것을 꼭 완성된 이야기로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몇 번 항목의 주제에 맞게 끼워넣거나, 각색하지 않고 그저 나의 하루하루를 채운, 채우고 있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써봤다. 그것은 오래된 취재수첩이었다가, 고된 하루를 마치고 먹은 해장국이었다가, 결국 답을 듣지 못한 어떤 사람에게 건넨 질문이었다가, 갓 찍어낸 신문에서 올라온 잉크 냄새이기도 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려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순간에 내가 쏟았던 마음들이었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인정이 아니라, 나만 아는 나의 애씀. 그 시간 속에 살아 있던 나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과 경험들이었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말로 단정할 수 없는 그저 나, 나라는 사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장면들.


나는 여전히 내가 부끄럽다. 이불킥을 하고, 한숨을 쉰다. 누군가 ‘응, 저기 뭐가 있었어?’ 하는 길에서 철퍼덕철퍼덕 넘어진다. 아이구, 인간아. 마음의 소리가 또 짝다리를 짚고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죽거린다. 그럴 땐, 나에게 달라붙어 있는 말들을 적어본다.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 애쓰지 않고, 그저 나와 요즘 친한 것들을 마음 속에서 꺼내 본다. 그것은 커피였다가 만년필 잉크를 넣으려다 손가락 여기저기에 묻은 검은 얼룩이었다가 아이가 반쯤 남기고 온 도시락이었다가, 달리기를 해보겠다고 다운받은 애플리케이션에서 며칠째 (너 왜 안 뛰냐고) 오는 알람이었다가, 몇 년동안 연락하지 못한 그리운 친구의 이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한다면, 지금의 나는 이런 것들로 이뤄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화려한 자기소개서와는 거리가 멀지만, 시선을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돌린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볼 나, 말고 내가 보는 나는 어떤지 묻는 것. 아이구, 인간아. 기어이 그걸 해보려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다고?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지만 어쩐지 조금 따뜻해진 것 같은 마음의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뭐, 그럼 해 보든가.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건 미래,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어떻게 보아주느냐에 따라, 현재의 내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과거는 다른 의미로 기록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20년 전 자기소개서의 ‘취미, 특기’란에 ‘사서 고생’이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아주 정확한 예언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못되게 굴고 미워할 때가 많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총합은 그저 단순히 시간들의 총합이 아니다. 부끄러운 시간의 총합이 더 많을지라도, 소수의 어떤 기억들은 더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인생은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은 완벽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나에게 악수를 건네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대체로 부끄럽고 가끔 괜찮을지라도, 그것이 나만이 그려온 나의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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