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김송희의 마음 노트] 시작중독자의 실패 없는 정신승리법

시작한 사람은 1이라도 한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서 출발도 못하면 0이다. 0보다는 1이 낫다.

김송희 <빅이슈 코리아> 편집장, 작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원고를 시작하기’에 대한 공포가 있다. 모니터의 대서양 같은 빈 창을 대관절 언제 다 채운단 말인가. 그래도 어떻게 해. 일단 시작을 해야지. 시동을 걸기 위해 첫 문단은 아무 말이라도 쓰기 시작하고, 퇴고할 때 분량이 넘치면 일단 첫 문단부터 쳐낸다. 물론 여러분이 이 문단을 읽고 계신다면 그건 아무 말인데 분량 채우려 남겨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내용들과 잘 연결이 되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진짜다.


벌써 4월이라니. 올해 초에 야심 차게 시작했던 일들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된 일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계획은 세우지 않고 일단 무턱대고 시작부터 하는 시작 중독자다. 계획을 잘 세우고 그에 맞춰 수행하는 완벽주의자들은 시작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한다. 그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검색을 하고 허투루 허비하는 시간이 없도록 방법을 숙지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정보는 많이 쌓일지 몰라도 지레 지치기 쉽다. 게다가, 그 일을 사전에 했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남긴 정보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감상이다. 무엇이든지 직접 해보기 전에는 실체를 알 수 없다. 아래의 글들은 내가 일단 저질러(시작)보고 망했던 사례들의 열거다. 그렇지만 시작을 일단 하면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에 비한다면 절대 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겠다.

 

김송희 작가의

일을 시작하기 전 갖는 마음가짐 3

• 잘 모르는 것도 일단 떠맡아라.

일을 하다 보면 ‘이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는 감이 온다. 그런 일 조차도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말고 시작하라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의 일을 완성할 거라고, 나를 믿어주자.

 

 

• 망해도 망한 게 아님. 누가 뭐래도 어쨌든 아님

시작을 해서 망해본 사람은, 한 번도 시작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 다음번에 더 쉽게 시작한다. 어떻게 발을 구르고 어딜 향해 뛰면 되는지 한 번도 도약을 안 해본 사람보다 잘 아니까.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시작한 사람은 1이라도 한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서 출발도 못하면 0이다. 0보다는 1이 낫다. 100을 못해도 괜찮다. 취미가 됐든 기술이 됐든, 완벽 숙지란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 그냥 가서 해보고, 내가 잘할 수 있는지 맛을 봐야 한다.

CHAPTER 1. 잘 모르는 것도 일단 떠맡아라.

영화 잡지사에 다닐 때 나의 콤플렉스는 영화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영화 잡지사에서 일하기 전에는 나름 영화를 좋아하고 또 많이 본다고 자부했는데, 동료들과 비교하니 그냥 ‘한국 관객 1’ 정도의 수준이었다. 영화를 좋아해서 오직 그 길만 팠던 나의 동료들은 수다를 떨 때조차 정말이지 영화 이야기만 했다. 집에 돌아와 고전 영화도 찾아보고, 영화 서적들도 읽으며 공부했지만 수십 년 그 길만 파오고 전공까지 한 엄청난 씨네필들을 따라잡기는 요원했다.

 

 

그때 한 라디오의 영화 코너 패널 섭외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전에 라디오나 팟캐스트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대중 문화에 대한 것이었고, 이번엔 본격 영화 전문 코너였다. 겁도 없이 일단 시작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흡하다. 성취 지향적인 현대인들은 목표가 항상 높기에 자신이 타인에 비해 부족한 사람처럼 느낀다. 그럼에도 일단 일을 벌여 놓으면 내일의 내가 수습하게 되어있다. 수요일 저녁마다 영화와 배우 한 명을 심층 소개하는 그 라디오 코너를 1년 정도 했는데, 20분 남짓 되는 코너를 위해 주말마다 특정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훑고 영화를 봤다. 틀릴까 두려워서 준비를 더 했다. 이후에도 내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일을 종종 청탁받았는데 해보지 않은 일도 일단 ‘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문가가 아닌데 남을 속이라는 말이 아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는 감이 온다. 그런 일조차도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말고 시작하라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의 일을 완성할 거라고, 나를 믿어주자. 그리고 일단 시작을 하면 뭐라도 하게 되어있고, 돌아보면 조금씩 경험이 쌓인다. 누구나 처음에는 ‘비기너’다. 그 과정은 시작이란 걸 해야 거칠 수 있고, 그렇게 내 분야를 만들어 가는 거다.

 

 

‘아무도 제안을 안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요?’라고 묻는다면, 일단 최소 범위 내에서 가볍게 시작해 보자. 아무도 나를 안 찾는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인스타그램이 됐든 블로그가 됐든 기록을 해보자. 나 이런 거 잘 한다고 첫 글을, 영상을, 사진을, 뭐가 됐든 남이 보는 곳에 노출하는 것이다. 시작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흠, 그렇다면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상상해 보자.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서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쓰다 보면 할 첫걸음이 보인다.

CHAPTER 2. 망해도 망한 게 아님. 누가 뭐래도 어쨌든 아님

나는 재작년까지 바이올린을 배웠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이 꿈이었으나, 부모님이 학원을 보내주지 않았고 그 한으로 ‘내 돈 벌어 바이올린을 배울 거야’라고 다짐했던 것을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1 대 1 과외를 했는데 선생님을 만나는 날 외에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아서, 3년이나 했음에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바이올린 가방을 보고 ‘한 번 연주해달라’라고 했는데 다들 “제발 그만해. 그 소리를 그만 들을 수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 귀를 틀어막았다.

 

 나의 바이올린 소리에는 비상함이 있었다. 반려묘 후추가 이불 속으로 도망가게 하는 재주, 거실에 상주하던 튼튼한 선인장이 바이올린 소리를 듣더니 금방 시들어버리는 마력, 듣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하는 기술. 3년이나 배웠으니 여기에 쓴 돈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켤 줄 아는 게 어딘가. 어른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을 그래도 해봤다(물론 연주를 잘하면 좋겠지만).

전 국민의 버킷리스트인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영어에 대한 절실함을 재작년 미국 여행에서 느꼈다. 말하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인간이 미국에서 입도 떼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겠나. 요세미티 공원에서 만난 미국 할머니 두 분과 나란히 30분을 걸었지만, 나는 할머니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30년 전에 한국 아이를 입양해 키웠다는 할머니의 말에도 오직 “오, 굿굿”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는 영어단어가 100개도 안 됐다. 한국에 오자마자 온라인 영어 수업을 200만 원이나 주고(6개월) 결제했지만, 숙제를 거의 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무언가를 배울 때 시작은 잘하고, 교습료를 결제부터 하고 보지만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 수업은 뭐가 남았냐고? 200만 원만 버리고 끝난 게 맞지만,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용기는 생겼다. 이번에 못 하면 또 시작하면 된다. 세상에 영어 교습 시스템은 널렸다.(우리 집에 영어책도 널리고 널렸다) 시작을 해서 망해본 사람은, 한 번도 시작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는 다음번에 더 쉽게 시작한다. 어떻게 발을 구르고 어딜 향해서 뛰면 되는지 한 번도 도약을 안 해본 사람보다는 잘 알고 있으므로. 

CHAPTER 3.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원고를 시작할 때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우리가 섣불리 출발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가 두려워서가 아닐까. 당연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도 하지 않는데, 시작을 하면 결과가 나온다. 성공 아니면 실패인데,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시작해야 그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최대 만족 지수가 100이라면, 시작한 사람은 1이라도 한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서 출발도 못 하면 0이다. 언제나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0보다는 1이 낫다. 100을 못해도 괜찮다. 취미가 됐든 기술이 됐든, 완벽 숙지란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 그냥 가서 해보고, 내가 잘할 수 있는지 맛을 봐야 한다.

 

 

드라마 작가 교육원, 소설 쓰기 수업, 포토샵 강습, 영상 편집 수업 등등…지난 몇 년간 내가 시작해 놓고 제대로 끝맺지 못한 일들이다. 물론 다 수강료를 지불했다. 드라마 작가 교육원은 완성된 대본을 제출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났고, 소설 쓰기 수업은 단편 소설을 쓰긴 했지만, 합평 때 “쓰다 만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포토샵도 현재는 다 잊어버렸고, 영상 편집은 간단한 컷 편집 정도만 할 줄 안다. 다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실패다. 흥, 난 실패한 거 아닌데?라고 우겨봤자,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위의 것들을 배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배운 적도 없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다시 시작할 때 기본적인 툴 정도는 다룰 줄 안다는 점에서 조금 나을 테니까.

처음에는 다 절실해서 배우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직업적 안정성으로 인해 불안할 때마다 배웠던 것들이고, 배우는 동안에는 뭐라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보다는 나를 위해서 뭐라도 시작하면 나중에 ‘에헤헤 나 그런 거 했는데 망했지롱~’하고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다.

 

 

실패해도 괜찮다. 끝을 내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시작하고 대충 끝났을 때, 자신을 미워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당신이 시작하지 않았기에 아직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를 세상에서 보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당신이 시를 쓰지 않아서, 영화를 찍지 않아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세상은 놀라운 결과물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맙소사.

글. 김송희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전 <씨네21> 기자, 한겨레 카카오 등 온 · 오프라인의 미디어에 대중문화 글을 기고했다. 책과 영화 관련해 강연 및 연재 활동 중. 고양이 후추의 집사. 인스타그램 @cheesed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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