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의 조건을 찾아서 - 플레이라이프

박선정

영화제 마케터

행복한 일의 조건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사는 건 때로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의 도전은 결코 무모할 리 없지요. 수많은 일과 다양한 도시를 거쳐, 드디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내 일의 조건을 찾았다고 말하는 박선정 님처럼요.

박선정 님이 찾은

마음성장의 세 가지 단서

•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전해요. 단기 팀장직으로 제안받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먼저 나서서 처리했어요. 결국 제 능력을 증명받아 일을 이어갈 수 있었죠.

• 어떤 일이든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옮겨 다니며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3개월만 버티고 나면 결국 적응되더라고요.

• 함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고, 공황을 겪기도 했어요. 춘천으로 이주하면서 함께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이웃을 만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요.

l 2022년, 마케팅을 담당했던 평창국제영화제의 부스에서 찍은 사진

“부담감도 있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안정적이었던 직장을 그만뒀어요.”

디자이너 8년 차에 영화제 마케팀 팀장으로 이직했어요

8년 차 디자이너로 지내던 중 영화제 마케터로 이직을 제안받았어요. 물론 부담감도 있었지만, 너무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안정적이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제 일을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서울에서 춘천으로 사는 지역을 옮겼고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이었지만,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어요. 서울 생활에 지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춘천에 정착한 뒤 맺은 새 인연이 새로운 일을 가져다주었어요.

영화제 일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특히 춘천에서 활동하다 보니 춘천의 문화기획자들,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많이 만나게 되었고요. 그 인연 안에서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로서 일할 기회가 생겼고, ‘로컬단’이라는 개인 사업자를 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없던 일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저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호기심과 기대가 두려움을 앞섰어요

직무를 전환할 당시에는 호기심과 기대가 두려움을 앞섰던 것 같아요.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경험주의자거든요. 2년 동안 다니던 정규직을 그만둔 적이 있어요. 패션 잡지를 사 모으면서 매거진 디자이너를 꿈꾼 적이 있는데, 우연히 패션 매거진 인턴의 기회가 찾아왔거든요. 영화제도 똑같았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당당하고 야심 차게 일을 시작했어요.

없던 일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제 능력을 증명했어요요

사실 영화제 이직은 단기 팀장직으로 제안받았어요. 일을 하다 보니 재미를 느꼈고, 계속하고 싶었어요. 적극적으로 저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죠. 제 직무는 마케팅이었지만, ‘북 디자인이 필요할 때는 저를 쓰시라.’ 당당하게 얘기했어요. 없던 일까지 만들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거죠. 이런 노력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어떤 회사든 ‘마의 3개월’을 버티면
적응이 되더라고요.”

어려운 일도 3개월만 버티면 괜찮아져요

잡지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일을 경험했어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어떤 일이든 ‘마의 3개월’을 버티면 적응이 되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은 너무 괴로웠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제 20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고요.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신뢰로 바꾸는 시간을 쌓아갔어요. 서른이 되고 보니 그 시간들이 잔뼈를 키워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이 닥치든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Keep Calm and Carry On’이라는 문장을 좋아해요. 묵묵하게 제게 주어진 일들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루하루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해나가면 어느새인가 멋진 결과가 기다리지 않을까요.

l 넷플연가 모임 당시

“함께하는 분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저도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하나를 정말 잘하지 않더라도, 여러 분야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어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하나를 정말 잘한다고 장담하진 못할 것 같아요. 대신 여러 분야의 경계선에 걸쳐 있기에, 영화제부터 디자인, 그리고 커뮤니티 모임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역할이 저의 강점이고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가 성장하는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넷플연가’라는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모임장 제의를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재밌을 것 같아 수락했지만 준비하면서 아주 힘들었고, 잠깐 후회하기도 했어요. 막상 모임이 시작되고 보니 천직 같더라고요. 모임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같은 말을 남겨주시는데, 정말 보람 있더라고요. 영화제도 그렇고 모임도 그렇고, 함께하는 분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저도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춘천에서 얻은 여백 때문에 삶이 좀 더 편안해졌어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어요. 통근 지하철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를 미워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공황을 겪기도 했어요. 응급실 방문은 연례행사였고요. 춘천으로 이주한 뒤 시간적인 여백을 가질 수 있었고, 안전한 거리감이 생겼어요. 사실 제가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함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웃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들을 만나면서 저의 삶이 좀 더 편안해졌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춰졌어요.

 

‘덕분에’ 사는 사람이에요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평소에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실 오로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고등학교 입시를 할 당시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저를 가르쳐 주던 학원 선생님께서 원장님을 설득해 주셔서 무상으로 미술 학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제가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오늘의 제가 있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박선정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어머니가 물려주신 차

제 행동반경의 개념을 바꿔준 친구예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기도 했고, 여행하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그러는 동안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 책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저

일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갈등이 있을 수도 있고, 괴로움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갈등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들과 나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 혼자 즐기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누릴 수 있어야 함께하는 시간도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혼자 카페에 가거나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본 뒤 사람들을 만나면 더 반갑더라고요,

새로운 일을 도전할 때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쌓아왔던 노련함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존의 경험은 사라지는 게 아닌,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활용할 수 있는 든든한 능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