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마음을 성장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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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어느 책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라틴어 원문으로는 ‘Fluctuat nec margitur’라고 한다. 그 당시에 내 심정이 아마 곧 침몰할 것 같은 난파선에 올라타고 있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문장 전체가 내 가슴 깊은 곳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젊음의 시간 내내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전에는 흔들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했지만 그 문장을 만나고 난 뒤로는 흔들리는 것을 허용할 수 있었다. 늘 제대로 길을 가야 한다고 다그쳤다면 이후로는 헤맬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음을 용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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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중입니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으레 겪어야만 하는 크고 작은 풍랑일 뿐이지요. 배가 침몰한 것도, 인생이 망한 것도 아닙니다. 배는 그리 쉽게 뒤집히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지난 여정이 증명하지요. 당장은 가라앉는 것 같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지금 이 순간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는 ‘적절한 애착손상’이 필요하다.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애착손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애착손상이 심각한 것만큼 문제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애착욕구의 좌절’은 세상을 헤쳐나갈 독립심을 주고,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나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기초가 되고, 대상의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바라보고 통합할 수 있는 시야를 준다. 좌절은 발달의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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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이 좌절되는 경험, 즉 '실패한 연애'는 우리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 나 자신의 욕구뿐만 아니라 상대의 욕구 또한 이해하고 타협해 나가는 능력, 상대와 나의 관계를 한 걸음 떨어져서 조망하며 새로운 관계를 성공적으로 맺을 수 있는 지혜를 주지요. 좌절은 그 자체로 상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고통스럽게 끝나는 연애를 반복해서 겪었다면 그건 당신이 또 잘못된 사람을 골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연애에서 두 사람은 자기 ‘잠재의식’의 영향으로 상대를 고르고, 그 선택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이런 선택이 알려 주는 것은 그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사실뿐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를 치유해야 하는지 더 알아봐야 한다는 뜻이죠. (…) 그렇게 생각하면 연인과의 다툼이나 가슴 아픈 이별은 “치유를 위해 일시 정지”라고 적힌 표지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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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연애가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버리곤 합니다. "내가 또 사람을 잘못 봤어." "나는 이런 연애밖에 못 하는 사람인가 봐." 하지만 이런 생각은 반절만 사실입니다.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서 관계를 그르쳤다는 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고, 다만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면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실패는 그 자체로 엔딩이 아닙니다. 나는 왜 그를 선택했는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지를 질문할 수 있는 기회이지요. 나의 진정한 소망에 대해 인지하고 난 뒤에 하는 다음 선택은, 결코 지금과는 같지 않을 겁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아침 햇살을 충분히 즐겼기에 기분이 좋아졌는가, 아니면 반대로 당신의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하늘 색깔이 강렬하게 느껴졌는가? 둘 다일 것이다. 뇌에서, 또 우리의 경험에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분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대부분의 회로들은 서로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거의 모든 사건이 다시금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기제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뇌를 계속해서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즉 좋은 느낌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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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서 별 것 아닌 일에도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고 기분 좋을 만한 일이 생겨서 행복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행복한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이 필요할 때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자유자재로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 번 보고 척척 외우는 사람은 그 뜻을 음미하지 않아 금세 잊어버린다. 둘째, 제목만 던져 줘도 글을 짓는 사람은 똑똑할지언정 글이 가볍다. 셋째, 한 마디만 해도 금세 알아듣는 사람은, 곱씹지 않아 깊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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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실패는 천재성이나 재능의 부족보다는 방심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약간의 재능을 믿고 노력에 느슨해지고, 끝이 나지 않았는데 여유를 먼저 누리기도 합니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손해 보는 멍청한 선택은 무소유의 삶처럼 모든 것을 남들을 위해 양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옆집 앞마당 정도는 쓸어줄 수 있는 여유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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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계산하면서 살다보면 모든 선택이 다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꽉 조인 벨트를 조금 느슨하게 하는 것으로 숨통이 트이듯, 약간의 손해는 우리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회상은 흘러간 시간과의 순수한 재회가 아니다. 기억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이야기를 새롭게 설명함으로써 과거는 현재와 접목된다. 과거에 대한 시선은 감정에 의해 심하게 변화한다. 우리는 대부분 오늘의 관점에서 어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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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노래도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달리 들리고, 10대에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과 20대, 30대가 되어 되돌아보는 자신은 달라집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이지만 나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과거는 달리 해석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불행이나 고난도 언제나 그 모습으로 머물러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지나온 세월을 정의하는 것이지요.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한 일은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으로, 고통스러웠던 당시의 감정은 힘든 상황을 견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대견함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가 지날수록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으며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억지로 하지 않음이 가장 바르고 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는 것 억지로 잡지 말고 오는 것 억지로 막지 말고 내가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고 내가 틀렸다면 사과하면 된다. 무리함으로 이룬 것들 중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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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력의 가치에 대해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에게 근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목표에 매달리다 보면 삶의 중요한 다른 가치를 놓치기 쉽고, 노력 후에 찾아오는 행복의 공백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이미 주어진 행복을 발견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느낌을 수용하는 과정은 그것이 존재할 공간을 주는 것을 뜻한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흉측한 가구를 놓을 공간을 거실에 마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저 공간을 줄 뿐이다. 반대로 느낌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느낌은 과거의 산물이고 당신은 과거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정적 회피는 결국 내면으로부터의 자기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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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감정은 스위치를 누르듯 꺼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 우린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쾌활한 척 하거나 저조한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애쓰죠. 하지만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큰 반동으로 튀어오릅니다. 직장에서 꾹꾹 참아낸 화가, 집에만 오면 엉뚱한 가족에게 터져나오는 것처럼요.
감정을 수용한다는 것은 기분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좋든 나쁘든 그 감정이 내게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히려 감정에 휩쓸리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지요.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실수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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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우울해서 벌이는 충동적인 행동은 대체로 후회할 결과를 만듭니다. 지금 삶이 두 번째로 주어진 기회라면, 감정이 행동을 결정하도록 두지 않고 이성이 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줄 것입니다. 의사결정에서 감정의 역할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감정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책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라틴어 원문으로는 ‘Fluctuat nec margitur’라고 한다. 그 당시에 내 심정이 아마 곧 침몰할 것 같은 난파선에 올라타고 있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문장 전체가 내 가슴 깊은 곳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젊음의 시간 내내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전에는 흔들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했지만 그 문장을 만나고 난 뒤로는 흔들리는 것을 허용할 수 있었다. 늘 제대로 길을 가야 한다고 다그쳤다면 이후로는 헤맬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음을 용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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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중입니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으레 겪어야만 하는 크고 작은 풍랑일 뿐이지요. 배가 침몰한 것도, 인생이 망한 것도 아닙니다. 배는 그리 쉽게 뒤집히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지난 여정이 증명하지요. 당장은 가라앉는 것 같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지금 이 순간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