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E

여러분의 마음을 성장시킬
432 QUOTES가 기다리고 있어요.

432 QUOTES

머릿속 소란함을 가라앉히는 걷기

머릿속 소란함을 가라앉히는 걷기

나는 다양한 이유로 걷기를 좋아한다. 그중 내가 최우선으로 꼽는 걷기의 매력은 머릿속의 소란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걷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조용한 대화를 하며 천천히 심사숙고할 자유를 준다. 오래 전부터 걷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이동을 하며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학파의 어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걷는다’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걸으며 생각한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playlife talk

걷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평온함을 가져다 줍니다. 마음을 부산하게 만드는 온갖 디지털 기기, 무수한 할 일들로부터 벗어나, 나의 고요한 내면에 닿을 수 있는 문을 열어주니까요.

직장으로, 학교로, 약속 장소로...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걷는 분주한 걷기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걸어 봅시다. 길가의 익숙한 풍경들을 새롭게 보고,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을 관찰하고,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건들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봅시다. 느긋하게 걷는 리듬에 맞춰, 늘 바쁘기만 하던 마음도 조금씩 평온에 가까워질 거예요.

생각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생각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만성적인 망설임과 어떤 활동에 이르는 정상적인 경로의 차이는 만성적인 망설임에서는 행동에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망설이는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고 조사하고 말하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준비가 아무 소용이 없는 이유는 결국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토론, 생각, 조사를 해도 그것이 꼭 행동을 결정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너무 많은 생각이 더 많은 생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playlife talk

생각하고,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조사하는 모든 일을 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속 무언가는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회피의 한 형태라는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하죠. 중요한 차이는 진전이 있는가입니다.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면서, 정작 글 한 줄을 적지 못하는 것 같은 일 말이에요. 목표한 행동에 가까워지는 일이 아니라면, 미루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완벽주의는 우리를 파괴한다

완벽주의는 우리를 파괴한다

빨간 불빛이 들어올 때 응시하고 집착하고 안달을 내고 비현실적인 완벽함을 바라며 고통받고 싶은 유혹은 무척 강렬하다. 나는 연주회에서 이러한 유혹을 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예술가가 공연에서 불안해하며 완벽함과 레이저처럼 날카로운 정확성을 추구하느라 정작 연주하는 능력을 잃는다. 해리스 주교의 말처럼, “충족감(완벽함)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파괴할 공산이 크다.”

playlife talk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저자는 녹음실 안에서 완벽한 연주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게 되는 고통에 대해 적습니다. 기계처럼 정확한 연주는 사람인 이상 불가능하고, 완벽한 연주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연주하는' 능력으로부터는 멀어질 뿐이죠. 우리 모두가 빠질 수 있는 완벽주의의 함정을 잘 말해주는 비유일 것입니다. 완벽주의는 불가능한 목표를 겨냥할 뿐더러, 우리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피아노 음반 녹음의 한 가지 비밀을 알고 나면, 완벽함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가장 완벽한 테이크를 그대로 음반에 싣는 것이 아니라, 좋은 부분들을 조금씩 더해서 하나의 연주를 완성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미진한 부분은 조금씩 메우고, 훌륭한 부분은 충분히 살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버전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마음읽기 vs 마음 헤아리기

마음읽기 vs 마음 헤아리기

관계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관계의 언어는 크게 ‘판단의 언어’와 ‘헤아림의 언어’로 나뉜다. 전자의 기반은 마음읽기, 후자의 기반은 마음 헤아리기다. 마음읽기는 판단적이고 자기보호가 우선인 반면 마음 헤아리기는 비판단적이고 상호교류가 중요하다. 판단의 언어는 딱딱하고 차갑고 닫혀 있다. 그에 비해 헤아림의 언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열려 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이렇게 느껴야 한다. 마음 헤아리기가 발달하면 말투도 달라진다. 헤아림의 말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다. 수많은 헤아림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 결과이거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의 산물이다.

playlife talk

상대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궁금하거나 물어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럴 것이다, 짐작만으로 결론을 내리고 대화하겠죠. 이것은 마음읽기입니다. 판단이 끝난 상태죠. 하지만 '나는 아직 상대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의사를 궁금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개입됩니다. 이것이 '마음 헤아리기'입니다. 앞서 판단하지 않는 자세죠.

판단하지 않는 게 가능하냐, 의문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판단은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생각이니까요. 말 그대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하는 것입니다. 판단이 기정사실화되기 전에, 이것은 나만의 판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다른 시나리오에도 열려 있게 됩니다. 그렇게 오해 대신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자기다운 일은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이다

자기다운 일은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playlife talk

소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요.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일에서 어떤 조그마한 의미라도 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은 성취감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때의 의미는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의미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의미, 철저히 주관적인 의미여야 하지요. 보통 의미는 크고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런 의미는 일상적이고 평범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사람들의 소소한 불편을 해결하는 것, 배우고 성장하는 이를 지켜봐 주는 것... 무엇이든, 나를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모든 의미들 말이에요.

마늘에 초콜릿을 씌우지 말라

마늘에 초콜릿을 씌우지 말라

마늘에 초콜릿을 씌우지 말기 바란다. 맛이 좋을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달콤한 무언가로 현실을 가리려 애쓴다면 절대 자유를 얻을 수 없다. 희망은 어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어둠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playlife talk

우리 삶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기대는 망상에 가깝죠. 마늘에 초콜릿을 코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희망은 삶의 나쁜 면에서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삶의 좋은 면들을 여전히 믿는 것입니다.

우울의 반대는 표현

우울의 반대는 표현

나는 내담자들에게 우울depression의 반대는 표현expression이라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킨다. 우리에게서 표출되는 것들은 우리를 아프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 안에 머무는 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

playlife talk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내부에 고여있을수록 더 깊어집니다. 괴로운 기억, 트라우마가 된 경험을 터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표현해야 하지요. 억눌린 감정이 밖으로 터져나올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대면하고 해소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감정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그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재미를 찾으세요

행복해지고 싶다면 재미를 찾으세요

재미는 행복을 만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미 추구는 관심의 초점을 비정형적인 감정 상태(행복해지고 싶다)에서 능동적인 경험(더 재미있게 놀고 싶다)으로 옮겨서 행복의 청사진을 제공한다. 즐거움을 느끼는 동안에는 항상 행복하므로, 더 즐거울수록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행복이 직접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playlife talk

행복이 어떤 감정의 상태라면, 재미는 구체적인 경험입니다. 행복을 구축하는 것은 막연하고도 지난한 작업일 테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당장 오늘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시도죠. 그만큼 행복이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에, 행복 그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행복으로부터 어긋날 뿐입니다. 늘 행복할 수 없는게 당연한데도,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더 민감하게 느끼고 불행해지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붙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재미는 재미있잖아요!

과도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방법

과도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방법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연민으로 대해주면, 우리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는 내면의 투쟁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이 하거나 하지 않은 일로 인해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를 애도하는 데 훨씬 더 잘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도록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강요하는 무의식적 습관일 수 있다. 공감은 이러한 고문을 멈추고 더 건설적으로 상황을 다루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playlife talk

죄책감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후회와 비슷하지요. 우리가 무언가를 하도록 추동하는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죄책감이 깊어질수록 무언가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겠지요. 다시 실수한다면? 또 실패한다면? 이런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상태일 겁니다.

과도한 죄책감은 다그치기만 하는 부모와 같습니다. 수치심만 커질 뿐, 반성과 개선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희박하죠. 그래서 연민이 필요합니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자신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공감과 연민은 죄책감으로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 상황을 해결할 다음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지 말자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지 말자

일이 잘못될 때도 모든 일이 잘될 때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데도, 그것을 계속 실패로 간주해야 할까? 실수를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배우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실수에서 배우면, 경력과 관계에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으며, 전체 삶에서도 그렇다. 실수를 무조건 피하려 하면, 목표에 도달하기 훨씬 어렵다. 자신을 추스르고 일어난 일을 살펴보면, 전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을 파악할 수 있다.

playlife talk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실패가 낫습니다. 적어도 실패를 통해서는 배울 것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실패가 성공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릅니다. 성공보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더 많을 때도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실패를 겪은 후에 그것에 대처하는 법, 그 실수를 수습하고 다시 나아가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겠습니다.

머릿속 소란함을 가라앉히는 걷기

나는 다양한 이유로 걷기를 좋아한다. 그중 내가 최우선으로 꼽는 걷기의 매력은 머릿속의 소란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걷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조용한 대화를 하며 천천히 심사숙고할 자유를 준다. 오래 전부터 걷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이동을 하며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학파의 어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걷는다’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걸으며 생각한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playlife talk

걷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평온함을 가져다 줍니다. 마음을 부산하게 만드는 온갖 디지털 기기, 무수한 할 일들로부터 벗어나, 나의 고요한 내면에 닿을 수 있는 문을 열어주니까요.

직장으로, 학교로, 약속 장소로...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걷는 분주한 걷기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걸어 봅시다. 길가의 익숙한 풍경들을 새롭게 보고,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을 관찰하고,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건들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봅시다. 느긋하게 걷는 리듬에 맞춰, 늘 바쁘기만 하던 마음도 조금씩 평온에 가까워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