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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심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누구라도 짜증난 기분에 빠지면 화를 억제하기가 힘들다. 짜증이 나 있을 때는 보통 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화를 내게 된다. 나의 조언은 짜증이 날 때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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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화가 가득하고 괜히 짜증이 치미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기분으로도 우리는 출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분도 바이러스처럼 전파가 되지만 ‘짜증’을 이유로 자가 격리를 할 수는 없기에 타인과 접촉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합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다면 심리적 거리두기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기분이 저조한 날에는 감정이 꿈틀대는 순간마다 ‘내 기분이 저조하다’ 생각하면서 들려오는 어떤 말에도 의미를 두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짜증나”라는 말이 쓸모없는 이유

“짜증나”라는 말이 쓸모없는 이유

감정에 머무르고 지금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더 잘 느끼고 싶다면 분개, 고통, 기만감, 실망 등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감정에 대한 어휘를 늘려야 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 단어는 많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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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이 말은 오만가지 감정을 담아냅니다. 그러다보니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게되고, 알고 있던 감정의 뜻마저도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라면, 짜증 안에 숨은 진짜 감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감정을 알아채는 순간 불편감은 덩치를 줄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짜증나" 금지입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이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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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한꺼번에 몰아서 해치울 수는 없다는 말이 오히려 묘하게 안심을 줍니다. 우리는 하루를 이틀 사흘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아무리 대단한 이에게도 하루는 하루씩일 뿐이고, 하루에는 그저 하루치의 것을 해 나가면 됩니다. 당장은 그 하루치가 사소하고 미미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작은 하루의 누적이야말로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겁니다. 커다란 눈덩이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눈뭉치부터 시작하는 것처럼요.

게으름의 무한굴레

게으름의 무한굴레

<굿바이 게으름>이라는 책을 쓴 후 게으름 클리닉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거기에 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실행력이 굉장히 떨어지는데, 과도한 계획에 집착을 한다는 거예요. 실행력도 없고 에너지도 바닥이면 천천히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뒤처졌다는 불안감과 한 번에 따라잡아야겠다는 욕심,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마음 때문에 굉장히 거창한 계획을 세우게 되죠. 결국 그 계획이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면 공통적으로 자기 비난과 자포자기를 하게 되죠.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바로 무질서함으로 들어가요. 그렇게 무질서 속에 있다가 또 위기감을 느끼고 현타가 오면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또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는 것의 무한 반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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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만 몰두하는 것은 결국 다른 종류의 회피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모자라다고 느끼는 나의 현실을 마주할 힘이 없기 때문에, 반대로 지나치게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거죠.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세운 계획은 당연히 실패하게 마련이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포자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런 고착을 깨려면 무리한 계획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실행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작은 계획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쌓일 수 있게.

현재를 산다는 것

현재를 산다는 것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굶고 자지는 못할지언정, 그런다고 해서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려 한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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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늘의 순간을, 미래의 목표를 위해 지나보내는 과정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불충분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시간인 반면, 현재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요. 현재는 미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힘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힘

옳은 일, 가치 있는 일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원대한 가치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도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세계를 놀라게 할 대단한 결과물도 결국 무수한 일상들이 쌓아올린 결과다. 심리학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어떤 일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신념과 가치지만, 하루하루를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은 웃음에서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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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웃음을 유예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닿지 않을 내일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저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의 하루를, 내일을 위해 포기하거나 버텨내야 하는 시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자체로도 충만하고 온전하게 잘 보냈다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부러진 스프링 펴기

구부러진 스프링 펴기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 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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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앞날을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점점 깊이 가라앉는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 무수히 빠져나오려 노력했지만 보답받지 못할 땐, 다 내려놓고 절망 앞에 순순히 투항해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울에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한 분명히 나의 것입니다. 구부러진 스프링을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머리채를 끄집어 올려서라도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 또한 분명히 나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나 자신을 다잡는 순간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반드시 새로운 길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울의 하강나선 대신,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을.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별 일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별 일 아닙니다

지금 시대에 ‘OO가 되겠다!’고 하나의 직업을 결정하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말 별 일이 아니다. 직업이 무섭게 사라지는 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게 안 된다면 이 쪽이지!” 하고 직책을 이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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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그 또한 축하할 일이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해서 크게 잘못될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게 없다는 것은, 어쩌면 유연하게 내 일의 모양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이동하다 보면, 이게 내 일이구나 싶은 것이 찾아지기도 할 테지요.

트랙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트랙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달리고 있을 때는, 트랙 위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일에서 조금 떨어져야만 나 자신, 나의 일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일에서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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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리는 와중에는 내 주변의 풍경도,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도 그저 배경이 되어버립니다. 그뿐만인가요.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지금 내가 너무 숨이 차지는 않는지, 이 속도는 나에게 적당한지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저 멈추지 않고 달리는 일만이 중요해지지요. 나의 상황을 조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떨어져 나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그 때가 잠시 트랙에서 걸어나와 숨을 고를 때라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내 일의 의미는 나의 언어로

내 일의 의미는 나의 언어로

내 일의 의미를 자신의 언어로 읽어내지 않으면, 그 일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 주지 않고 희미해지고 마는 것 같다. (…) 나는 왜 그렇게 그게 좋았을까? 어떤 것에 끌렸을까? 그 시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바로 나의 ‘캐릭터’를 기준으로 지난 경험을 재해석해 보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잘하고 싶어했고 무엇에 정성을 쏟았는지, 유독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매달렸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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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 온 일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은 일에서의 주도권을 세우는 것이자, 나라는 일꾼의 강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일일지라도, 나라는 사람의 맥락에서는 분명히 하나로 꿰어낼 여지가 존재합니다. 해오는 동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더라도 내가 일하는 방식, 유난히 집요하게 몰두하는 영역,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 권한은 내가 가질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일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권한이자 권리일 것입니다.

심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누구라도 짜증난 기분에 빠지면 화를 억제하기가 힘들다. 짜증이 나 있을 때는 보통 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화를 내게 된다. 나의 조언은 짜증이 날 때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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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화가 가득하고 괜히 짜증이 치미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기분으로도 우리는 출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분도 바이러스처럼 전파가 되지만 ‘짜증’을 이유로 자가 격리를 할 수는 없기에 타인과 접촉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합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다면 심리적 거리두기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기분이 저조한 날에는 감정이 꿈틀대는 순간마다 ‘내 기분이 저조하다’ 생각하면서 들려오는 어떤 말에도 의미를 두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