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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하고 있는 걸까? 뭔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막연히 불안이 찾아오고 이럴 때 제가 잘 떠올리는 조언을 들었던 게 있는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인터뷰할 때, 연차가 40년 정도 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세르주 블로크 작가님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작가님은 전세계 언론사들이 줄서서 삽화 받으려고 기다리는 유명한 작가님이거든요. 근데 그 작가님한테 “작가님도 자기 확신이 없을 때가 있나요?” 이런 걸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매일 그러는데요.” (대답하더라고요.) “창작자한테 두려움과 떨림과 모호하다는 느낌은 좋은 신호예요.” 그러는 거예요. 창작자들은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기존에 존재하던 이 말로 서술해도 정확하지 않고, 난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라는 건 뭔가 새로운 걸 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playlife talk
"창작자에게 두려움과 떨림은 좋은 신호예요." 매분매초 변화하는 세계에서 나만의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40년차 일러스트레이터 블로크의 말은 두 가지 깨달음을 전해 줍니다. 첫 번째는 쉽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일수록 오히려 새로움과는 멀어진다는 것. 두 번째는 40년을 일한, 저명한 작가 또한 자신의 일을 매일 의심하고 망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안과 모호함을 떨쳐내려고 애쓸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 위에 있다는 신호라는 뜻이니까요. 불안을 삶의 기본값으로 포용할수록,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에디터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히려 그런 직업의 이름은 명사잖아요, 그 명사를 너무 쉽게 자기 가슴팍에 딱 달아놓으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돼요. 이건 또 룰루 밀러 선생님이 하신 말이에요. (웃음) ‘무언가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아까 이야기한 것 같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를 내 언어로 정의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생기고 나서부터 번민이 많이 줄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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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이름이 곧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 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미 정립된 명사로 스스로를 설명할수록, 오히려 내 일이 확장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직업의 정의에 나의 일을 고립시키게 되는 셈이지요. 설명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함은, 나만의 언어로 보다 정확히 정의해 내려는 관성을 창조해내기 마련입니다.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서술하는 형용사로, 그래서 변화하는 동사로 꾸준히 재정의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일에 필요한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질문 같은 건, ‘이 길이 내 길일까?’ 이 질문은 사실 답도 없고, 답을 찾기까지 좀 시간을 투자하고 바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 답을 내리기까지는 15년 정도…) 저는 한 15년 차 되니까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심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만큼 했으면 이 길이 내 길이지 (웃음) 라는 생각도 있었고, 실은 스스로 이제 이 전체 업계에서 나만 할 수 있는 게 보인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강점 같은 게 있긴 있다, 라는 주제 파악이 그 때 쯤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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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라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명확한 답은 없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분명합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충분한 시간과 경험, 헌신만이 판가름을 내어줄 겁니다. 내 길을 찾는 데에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쉬운 것 아닐까요. 그만큼의 시간이 이미 그 길을 내 길로 만들어 주는지도 모르고요.
단순하게 살라는 것이 당신이 근무하는 사무실과 집 안의 구석구석을 완벽하게 정리 정돈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단 한 가지만 실행에 옮기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마음껏 즐겨 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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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라고 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 정돈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명확한 나만의 기준을 통해 정한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반복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딱 한 가지만 정확하게 실행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 미니멀 라이프의 목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가 아니라, 내 삶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규칙을 세우는 것이니까요.
자신을 모른다는 건, 깜깜한 어둠 속을 끝없이 헤매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자신을 알고 있으면 주저 없이 직진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물건에 둘러싸여, 어떤 사람과 교제하면 행복한가를 알게 된다면 불필요한 선택지를 늘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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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정말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더 손에 쥐려고만 애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막연히 필요한 것들이 늘어가는 것이지요.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지가 아니라, 있어야 하는 것들의 자리를 찾아 주고, 없어도 되는 것들을 목록에서 지워가는 일입니다.
심플하게 사는 것은 검소하면서도 현명하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심플한 삶은 ‘충분하다’라는 마법과 같은 단어로 요약된다. 충분하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기준도 달라진다.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사람에게 결코 충분함이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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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곤 합니다. 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고민만 하다, 정작 콘텐츠 볼 시간을 다 써 버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만족하는 삶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이걸로 충분하다는 감각일 것입니다.
곤도 마리에 정리법의 핵심 질문은 ‘무엇을 남길까’다. ‘무엇을 버릴까’가 아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녀가 ‘버리기’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심지어 그녀가 쓴 책의 제목조차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다. 그러나 곤도는 버리는 것이 정리의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모든 버리기는 제대로 ‘남기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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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일의 본질은 남기기다.'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남기는 일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입니다. 버릴 것을 고민하다 보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아닐까, 필요한 물건을 잃는 게 아닐까, 같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겠지요. 하지만 남기는 것을 중심에 둔다면,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가려낼 수 있다는 확신이 더 앞설 것입니다.
내 방에서 세상을 탐구한다. 언제나 끼고 읽는 수많은 책, 칼럼, 가끔 영화. 가벼운 지적 유희가 나를 들뜨게 하고 교재를 펼치고 하는 목적 있는 공부가 성취감을 자극한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니 비로소 생활에 지적 풍요로움이 감돈다. 수많은 관심사에서 방황하던 나는 머릿속에 동경만 한가득인 일 말고 지금 시간, 체력, 돈을 실제로 쓰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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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할 거라고 생각한 일들은 몇 년 전에도 고민만 하던 일이었지요. 언젠가는 쓰겠지, 라고 생각하며 쟁여두었던 물건은 얼마가 지나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 자리에 있고요.
'하고 싶은 것'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가능성'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를 덮어쓰고 있지요. 퍽 가슴 아픈 일이지만, 마음의 공간에 꽉꽉 들어찬 잡다한 관심사들을 그만 보내주어야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온전히 필요한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기쁨이 그 자리를 채워줄 겁니다.
새해 첫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열렬히 계획을 세우지만 이행되는 일은 잘 없다. 연초부터 실망하는 일은 너무 가혹해서 우리는 서로의 이른 실패를 쉬쉬한다. 그래서 1월과 2월은 카페나 식당의 임시개업 기간 같은 거다. 가게의 효율을 살피는 시기. 숨가쁜 계획들을 재정비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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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지나가고 2월로 접어드는 시점, 연초의 다짐은 희미해지고 야심차게 세운 새해 계획들은 슬슬 흐지부지되기 시작합니다. 실망이 곧 체념으로, 결국엔 포기로 연결되기 가장 쉬운 때지요. 하지만 애초에 기대가 과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한 순간에 바뀌는 법이란 없는데 말이예요. 2월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삼아봅시다. 열의에 넘쳐 세운 계획이 무리였다면 현실적으로 수정하고, 꼭 지키고 싶은 것들만 남기는 거예요. 지켜야 한다는 강박, 의지가 부족했다는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재정비하는 시간을 통해 꾸준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저에게는 얼마나 혁명적인 일이었냐 하면 저라는 사람은 늘 세상에는 나는 모르는 정답이 따로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항상 그걸 쫓아다녔거든요. 그게 어디 있는지 뭔지도 모르면서. 그러니까 스스로를 믿어보는 경험이 저한테는 거의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거예요. 무려 35년이 걸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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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에 정해진 답 같은 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롯이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 막연히 정답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를 믿어 보는 경험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삶의 정수는 정답과 성공이 아니라, 나를 믿는 경험, 그 자체에 있는 것일 테니까요.
나 잘하고 있는 걸까? 뭔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막연히 불안이 찾아오고 이럴 때 제가 잘 떠올리는 조언을 들었던 게 있는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인터뷰할 때, 연차가 40년 정도 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세르주 블로크 작가님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작가님은 전세계 언론사들이 줄서서 삽화 받으려고 기다리는 유명한 작가님이거든요. 근데 그 작가님한테 “작가님도 자기 확신이 없을 때가 있나요?” 이런 걸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매일 그러는데요.” (대답하더라고요.) “창작자한테 두려움과 떨림과 모호하다는 느낌은 좋은 신호예요.” 그러는 거예요. 창작자들은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기존에 존재하던 이 말로 서술해도 정확하지 않고, 난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라는 건 뭔가 새로운 걸 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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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에게 두려움과 떨림은 좋은 신호예요." 매분매초 변화하는 세계에서 나만의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40년차 일러스트레이터 블로크의 말은 두 가지 깨달음을 전해 줍니다. 첫 번째는 쉽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일수록 오히려 새로움과는 멀어진다는 것. 두 번째는 40년을 일한, 저명한 작가 또한 자신의 일을 매일 의심하고 망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안과 모호함을 떨쳐내려고 애쓸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 위에 있다는 신호라는 뜻이니까요. 불안을 삶의 기본값으로 포용할수록,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