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마음을 성장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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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을 놓고도 우리는 회고할 수 있다. 좋았던 일을 나열하고, 그 일이 왜 좋았는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아쉬웠던 일들을 나열하고, 그 일이 왜 아쉬웠는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과녁, 내 삶이 흘러가고 싶은 방향을 기준으로 내가 나열한 일들과 그 이유들을 다시 살펴본다. (…)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끝그림을 과녁 삼아,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영점조절한다.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 삶을 경영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된다.
playlife talk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무엇이나 될 수 있을까 겁이 날 때는 내가 온 길을 되짚어 봅니다. 좋았던 것, 싫었던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이 끝내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완성된 '나' 설명서를 가지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불안에 흔들리는 일은 없게 될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일은 있을지언정, 조준할 과녁을 잃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과녁에 명중할 수 있도록, 나를 영점조절 해 나가는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창피함을 적처럼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기회의 신호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크게 달라진다. 창피함에 대한 ‘면역’을 기르면 당신은 더 많은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끄러움은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몇 살이 되어도 창피를 무릅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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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은 필연적으로 나의 미숙한 부분을 마주하게 만들죠. 그건 매우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동반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도가 불편한 건 그래서입니다. 잘 모른다고 말하는 건 무능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도 처음이야, 나도 잘 몰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능력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여러 번 거듭해서 창피함에 익숙해진 사람은, 새로운 분야와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니까요.
하루의 시작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늘 하루를 포기하고 싶을 때, 정해진 규칙과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매달릴 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책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대충이라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설거지가 하기 싫으면 물로 대충 헹궈 싱크대 위에 쌓아두고, 침구를 교체할 힘이 없으면 룸 스프레이를 대충 뿌리고 자기.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기 귀찮으면 여행용 드립백을 꺼내 대충 마시기. 일하기 싫으면 메일함의 급한 연락만 먼저 해결해 놓기.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백 마디 투정과 수많은 핑계도 대보자. 그렇게 대충 하다보면 어느새 하나씩 채워져 완벽에 가까운 때가 올 것이고, 그럼 또 아무렇지도 않게 끝까지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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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계획만 잔뜩 세워두고 실천하지 못해 흐지부지 되었던 경험, 그런 자신을 자책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건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계획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잘못된 것입니다. 계획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은 하기 싫은 게 당연합니다.
대충이라도 해낸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봅시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요. 관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뭐라도 일단 시작하게 되면 하는 방향으로 관성이 붙을 것입니다. 어질러진 물건만 치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새 깨끗한 집을 보기 위해 청소기를 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요.
얼마 전에 했던 북토크에서 새해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나고, 가장 큰 지지자도 나고, 나를 죽이는 것도 나고, 나를 살리는 것도 나라서 나를 잘 돌봐야겠다고, 나를 잘 돌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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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게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세우는 것도, 이루는 것도, 망치는 것도 결국 다 나 자신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세운 목표는 오래가지 못하겠지요. 목표 달성 자체에만 몰두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그 또한 지속할 수 없을 것이고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도, 결국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누구보다 나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고, 챙기고, 유지하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내 실수를 별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수하면 완전히 그 동네에서 매장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더라’가 제 결론이고요. ‘너무 겁먹지 말고 들이대라’가 제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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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두고 나를 괴롭히는 실수는 내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체로 그 타인의 시선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엄한 감독관입니다.
내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이 사실은 때에 따라 완전한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내 실패 또한 남들의 관심 밖에 있다는 뜻이니까요. 실수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예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어차피 내 일에 관심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자기 사연을 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객관화가 되고,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 얘길 들으면서 공감하며 응원해 주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파장이 서로를 연대시키며 거대한 어깨동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세상을 묶어주는 띠가 되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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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로도 우리는 자기를 지탱할 힘을 얻습니다. 꼭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귀 기울여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 우리는 그것을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공감은 내 바로 옆의 사람에게 건넬 수도 있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에게도 향할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서로가 서로에게 해 주는 거대한 어깨동무가 생겨나고, 그 어깨동무가 모두를 받쳐 주는 마음의 안전망이 되겠지요.
온전히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고, 혼자서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혼자서’를 고집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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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의 우리는 이 말을 잊은 것처럼 행동할 때도 많지요. 사람들과의 조율을 위한 지난한 과정보다는 혼자서 해치우는 게 훨씬 편하고 수월하니까요. 때로는 삶도 그렇습니다. 부딪치고 깨지며 서로를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들이느니, 혼자를 선택하는 편이 마음 편하죠.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다 보면, 내가 다룰 수 있는 일의 크기는 한 사람으로 가능한 범위에만 머물 것입니다.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지면, 타인을 감내할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은 줄어들고, 내 삶의 반경도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이상으로 넓어지지 못하겠지요. 협력의 감각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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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질까요? 행복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관계'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충만한 시간, 나아가 공동체가 나를 지탱해줄 거라는 믿음이 행복의 열쇠였습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쌓는 것이 우리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요. 당신은 지금,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요?
‘우리’는 (혼자일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저마다의 숨겨진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단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누고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나누는 것이 치유인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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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돕는 것은 곧 나를 돕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자기효능감, 나아가 나의 자존감에도 생각보다 깊고 넓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나누고 도우면서 발견하는 나의 가치는, 혼자만을 위할 때는 알지 못할 감각이지요. 우리는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자신만의 단점과 불완전함을 서로에게 드러내어 폐를 끼치고, 도움을 받고, 그런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돈이 모든 상호작용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다보면 종종 그 사실을 잊게 된다. 우리는 ‘폐를 끼치기 싫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쉽게 ‘민폐’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그렇게 무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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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라는 말이 부쩍 자주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 사람이고 싶고, 무해한 것이 좋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니 폐를 끼치는 것은 점점 더 절대 피해야 할 것이 되고 있지요.
폐를 끼치기 싫은 것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귀한 배려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습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요. 누구에게도,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자신의 폐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폐에 대해서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 폐를 끼치고, 받는 것에 대해 더 자연스러워져야 합니다. 폐를 끼쳐본 사람만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서로의 경계선을 넘어설 때, 관계 속에서의 배움도 생겨날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놓고도 우리는 회고할 수 있다. 좋았던 일을 나열하고, 그 일이 왜 좋았는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아쉬웠던 일들을 나열하고, 그 일이 왜 아쉬웠는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과녁, 내 삶이 흘러가고 싶은 방향을 기준으로 내가 나열한 일들과 그 이유들을 다시 살펴본다. (…)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끝그림을 과녁 삼아,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영점조절한다.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 삶을 경영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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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무엇이나 될 수 있을까 겁이 날 때는 내가 온 길을 되짚어 봅니다. 좋았던 것, 싫었던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이 끝내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완성된 '나' 설명서를 가지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불안에 흔들리는 일은 없게 될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일은 있을지언정, 조준할 과녁을 잃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과녁에 명중할 수 있도록, 나를 영점조절 해 나가는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