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마음을 성장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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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사람을 보여준다. (…)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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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모여 곧 과거가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가 결국 내 삶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겠죠. 산만함이나 부주의 속에 흩어진 시간들은, 내가 살아낸 삶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내가 온전히 주의를 기울인 순간들만이 내 삶의 페이지를 차지합니다. 그러니 어디에, 또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디에, 어떻게 관심을 쏟고 있나요? 아니 그 전에, 무언가에 순수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을 갖고 있나요?
“어느 계절을 좋아하세요?” 나는 ‘환절기’라고 말한다. 1년 중 환절기는 아주 짧지만 우리를 변화로 이끄는 중요한 시기다. 불어오는 바람결이 달라지고, 거리의 풍경이 바뀐다. 답답한 열대야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얼어붙은 세상을 따뜻하게 녹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간이다.
오아시스와 베이스캠프 그리고 환절기처럼 우리에게도 ‘내일’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기점이 필요하다. 내게 딴짓은 나다움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기탐색의 시간이다. 딴짓에 몰두한 지난 시간은 사회가 규정한 ‘직업인’으로서 정체성을 넘어 세상에 실재하는 ‘나’를 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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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목적과 관계 없는 일을 우리는 딴짓이라고 부릅니다. 오로지 목적에 부합하는, 다시 말해 쓸모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삶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될까요. 그 목적을 꾸준히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이따금씩 일상을 환기하는 딴짓은 꼭 필요합니다.
때로는 쓸모 없다고 여겼던 딴짓이, 나를 발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본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표현해 주기도 하고요.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환절기도 존재하는 것처럼요.
돈과 시선과 관계되지 않은 자기만의 창조적인 일을 해보는 것 자체가 자율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단어를 모색하게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감정의 복잡함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자기가 결정한다. 내적인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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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직업이나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로만 정의해야 한다면, 우리는 끝끝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무언가를 가져 보아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것은 꼭 어떤 '일'이 아니어도 좋아요.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쓰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요. 오늘의 나를 정의할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으니까요.
반면 사이드 프로젝트는 ‘온전한 내 몫의 성취’라는 점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줍니다.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는 것도, 매주 뉴스레터를 만들어 발송하는 것도, 회사 밖에서 모임을 만드는 것도 다 ‘성취’예요. 끌리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 가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니까요. 그렇게 회사 밖에서 또 하나의 무기가 생기는 거죠. ‘나다움’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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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찾아오는 삶의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물론 단번에 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요. 우선은 해야만 하는 일들 대신 왠지 끌리는 것, 이유를 모르지만 좋아하는 것, 당장 쓸모는 없어 보여도 마음이 가는 것들을 시도해 보세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겠지요. 또한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해 나가야 할 테고요. 조직이나 회사 안에서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어 기능할 때는 몰랐던, 온전히 내 손으로 거둔 작은 성취를 알게 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묘미는 바로 그런 데 있지요.
삶을 지탱하기 위해선 여러 개의 기둥이 필요한 거 같아요. 10년 전 저의 기둥은 ‘문화마케팅’이라는 외길 커리어, 딱 하나뿐이었던 거죠. 지금은 절대 외길을 걷지 않아요. 자꾸 골목을 만들죠. 부지런히 새 길을 파고, 그 길을 넓혀 나가다 보면 내 삶을 지탱해줄 또 하나의 기둥이 생기니까. 게다가 인생에 골목이 많으면 일상의 풍경이 재미있거든요. 배우는 것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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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고 너른 길은 편리하고 쾌적하지만, 이리저리 구불구불 난 골목은 도시의 풍경을 더 흥미롭게 만들죠. 우리는 한 가지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사람에게 경외심을 품지만, 여러 갈래의 가지를 뻗치며 자신을 확장하는 사람들 또한 존경받을 만합니다. 꼭 한 가지 길을 선택하고 그 길로만 내리 걷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다른 샛길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오히려 우리는 삶을 지탱할 더 많은 기둥을 확보할 가능성 또한 갖게 될 것입니다.
미래의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현재의 내가 준비해야 하니까. 현생이 바빠 죽겠지만, 도저히 마음의 여유가 안 나겠지만 그렇다고 미뤄 놓을 수는 없다. 가볍게, 최대한 가볍게 시작해보자. 당신의 미래를 위한 여러 모험을. 장담컨대 그 모험을 가장 즐거워할 사람은 현재의 당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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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만으로도 벅찬 삶이지만, 삶이 현생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때로는 삶을 너무 무겁게 만듭니다. 모험을 시작해 볼까요, 일단은 가장 가벼운 것부터. 당장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내려놓고,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거죠. 모험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모험의 끝에 꼭 대단한 보물상자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모험을 떠나기 전과 후의 나는 절대로 같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잘 변화하는 것도 능력인 시대가 되었다. 요즘 같이 불확실성투성이인 세상에서 새로움이 두렵다면 내 영역에서 한쪽 발을 단단히 두고, 알 수 없는 그곳에 다른 쪽 발을 내딛어보자. 조금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의도적으로 나를 노출해보자. 내 영역을 더 넓고 깊게 확장해나가는 것은 물론, 막연한 두려움을 예방하는 마음 근육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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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지는 것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상황에만 머물러 있는 것 또한 내키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약간의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게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딴짓 말이지요.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읽지 않았을 책들, 가보지 않았을 장소들. 조금씩, 그러나 적극적으로 일상에 틈새를 내 보는 겁니다. 혹시 아나요? 그렇게 낸 샛길이 점점 넓어져 나만의 대로가 될지.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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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는 인삿말에는 상대의 평안과 무사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지요. 서로가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강력한 공감과 이해의 마음이 있을까요. 걱정도, 위로도, 염려도, 한데 꾹꾹 눌러담아 씁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모두, 안녕하기를.
슬픔의 폭풍우 한가운데에 있을 때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다시 유머를 즐기게 되리라는 것, 삶은 계속되리라는 것, 시계는 다시 똑딱똑딱 가고 별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숨 막히게 하는 슬픔의 미덕과 대결을 벌이는 중에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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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깊은 상실감을 겪고 있을 때에는, 쉽게 믿기 힘든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의 격렬한 슬픔도 점차 옅어질 것이고, 조금씩 일상을 누릴 힘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비록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지언정, 마음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이렇게 쉽게 괜찮아져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그 생각을 가로막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잊어서는 안 됩니다. 슬픔 한가운데서도 순간 순간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일상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요. 깊은 고통에 잠겨있는 와중에도 잠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숨통이 트이는 작은 기쁨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슬픔은 당신의 잘못으로 찾아온 벌이 아니니, 기쁨도 너무 오래 유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동안 눈뜨면 하루가 아득했다. 텅 빈 시간의 안개가 눈앞을 가리고 그 안개의 하루를 건너갈 일이 막막했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에 눈떠서 문뜩 중얼거린다. “안개를 통과하는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그건 일상이다.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일상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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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모르는 기나긴 터널이 이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 때, 다가올 내일이 충만한 기대보다는 막막한 두려움으로 느껴질 때. 그런 순간에는 평범한 일상을 잘 돌보는 데에 온 신경을 기울입니다. 나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쉬게 합니다. 그 일상이 가장 귀중합니다. 그 일상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방책입니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사람을 보여준다. (…)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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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모여 곧 과거가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가 결국 내 삶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겠죠. 산만함이나 부주의 속에 흩어진 시간들은, 내가 살아낸 삶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내가 온전히 주의를 기울인 순간들만이 내 삶의 페이지를 차지합니다. 그러니 어디에, 또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디에, 어떻게 관심을 쏟고 있나요? 아니 그 전에, 무언가에 순수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을 갖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