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생의 벼랑 끝에서 내미는 손

삶과 죽음이라는 갈래에서, 두 번째 선택은 삶이 되길 응원합니다.

황은상 반포수난구조대 소방교

검색창에 국내 자살 사망자 수를 검색해 봅니다. 눈에 들어오는 숫자 7,584명. 올해 상반기 국내 자살 사망자의 수입니다. 세계 자살 예방의 날(9월 10일)을 맞아 플레이라이프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살 위기자 구조에 힘쓰고 있는 분들을 조명하기 위해 반포수난구조대를 찾았습니다. 타인을 돕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착한 오지랖’으로 세상에 손을 내미는 황은상 소방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강 위,

골든타임 5분을 지킨다

수난구조대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분들을 위해, 어떤 업무를 하는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수난구조대는 서쪽 행주대교부터 동쪽 강동대교까지 총 네 곳으로 나뉘어 있어요. 자살 시도, 선박 화재, 차량 침수, 수상 레저로 인한 사고 등 한강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를 담당하고 있어요. 그중 자살 관련 출동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2023년에는 3,900건 출동했습니다. 

한강 다리 위 ‘SOS생명의전화’와 수난구조대의 공조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SOS생명의전화는 한강 대교 상하류 남북단 총 네 곳에 설치되어 있어요. 대교 위에서 자살을 고민 중인 사람이 SOS생명의전화 연결을 요청하면, 상담사와 전화가 연결돼요. 상담사가 통화를 통해 119 신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소방서와 수난구조대가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다이렉트 버튼이 있어요. 버튼을 누르면 관할소방서는 대교 위로, 수난구조대는 강으로 골든타임 5분 내 도착을 목표로 출동합니다. CCTV통합관제센터에서도 24시간 다리 위 위험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기관사

수난구조대는 남다른 능력을 갖춰야 근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격증이라든지 어떤 경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나요?

 

수난구조대는 구조대원 4명, 항해사 1명, 기관사 1명 총 6명이 한 팀이 되어 세 개 팀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구조대원의 경우 소방공무원 중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보유하거나 수상과 관련 있는 특수부대 출신 분들이 많고, 비번 날에도 개인 시간과 사비를 들여 스쿠버다이빙 능력 향상에 힘쓰고 있어요. 저와 같은 항해사 기관사분들은 민간 해운업 혹은 해군에서 항해사, 기관사로 근무했던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저는 2급 기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해운사에서 4년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어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수난구조대 대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해요.

해양대학교 졸업 후 선배나 동기들처럼 해운회사에 입사해 4년 정도 기관사로 승선 생활을 했어요. 전공을 살려 전문성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안정적이었지만, 망망대해에서 6개월 정도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한정된 사람들과 근무하는 선박 기관사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죠. 전공을 살리면서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동료와 협업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수난구조대 기관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점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구조’라는 일의

보람과 무게

수난구조대 대원이라는 직업을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한번은 한강대교를 지나가던 시민이 SOS생명의전화로 투신 상황을 알린 적이 있어요. CCTV 관제실에서도 바로 위치를 확인해 수난구조대가 출동했고, 신속히 출동한 덕분에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던 여성을 구조할 수 있었어요. 시민과 SOS생명의전화 직원, 통합CCTV관제센터 직원,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한 생명을 살렸고, 구조 대상자 또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출동이었다고 생각해 기억에 남아요.

 

후에 여성분이 반포수난구조대를 찾아와서 편지를 전해주기도 하셨어요. 잘못된 판단을 한 자신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죠. 마음을 표현하러 직접 찾아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마음이 감사해서 항상 사물함에 보관해 두고 있어요. 

반대로, 수난구조대 대원으로서 느끼는 압박감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미성년자 혹은 20대 초반 어린 친구들의 자살 사건을 접할 때 안타까움이 큽니다. 저희가 구조하는 분들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지만 미성년자를 구조하러 출동하면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사연을 들어보면 이성 문제나 학업 등 당시에는 그게 전부인 것 같은 마음에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몇 년이 지나고 보면 인생 전체에서 흘러가는 한 시절 일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 같은 게 남아 미성년자 사건은 평소보다 마음이 더 힘든 편이에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힘들 때 본인만의 극복 방법이 있나요?

저는 눈썰미가 좋지 않아서 구조대상자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남들보다 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잘 털어내는 성격도 도움이 돼요. 시험에 임할 때도 붙으면 대박이고 떨어지면 어차피 그 시간에 게임을 했을 텐데 생산적인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축구를 좋아해서 토트넘 경기 직관하러 런던도 다녀왔고, 평소에는 K리그를 많이 봐요(대구FC!). 몰입해서 즐기다 보면 스트레스나 감정 해소에 도움이 많이 돼요. 

다시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마음으로

최근, 자살사망자가 지난해보다 10% 증가했다는 기사를 접했어요. 특히, 청년세대의 우울함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소방교님이 실제로 체감하는 정도는 어떠한가요?

자살 시도로 인한 출동은 꾸준히 증가해 왔고, 체감상 22~23년이 정말 많았는데 그보다도 늘었다고 하니 심각함을 느껴요. 청년세대의 취업난, 직장 내 스트레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실패 등 다양한 원인이 있고, 일부의 나약함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아내도 30대를 보내고 있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는데요. 모든 걸 수치화해 등급을 나누고 비교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다 보니 충분히 능력 있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주식&가상화폐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한강’과 ‘실패’를 연결 짓는 밈이 너무 쉽게 쓰이는 것도 문제 같아요.

댓글을 보다가 ‘한강 간다’, ‘한강 수온 어떠냐’ 이런 글을 발견하면 저는 가슴이 서늘해져요. 구조의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는 농담으로 넘기기 어렵긴 해요. 무엇이든 양면성이 존재하지만, 한강의 아름다움이나 수변 공간이 주는 매력에 더 초점이 맞춰졌으면 해요.  

그동안 구조했던 분들 또는 자살위기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전해주세요.

현장에서 구조 대상자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하는 게 도움이 될까? 혹시 내 말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 고민을 하다가 등을 두드려주고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쁘거나 심각한 상황이라면 그조차도 못 하겠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지금 힘든 순간을 지나 잘 회복해서 사회구성원으로 돌아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인생을 응원할 겁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갈래에서 후자를 선택한 당신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를 드리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번째 선택은 삶이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특유의 오지랖으로

수난구조대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이 인터뷰를 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소방공무원 특히, 수난구조대라는 직업이 가진 ‘멋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한강을 산책하면서 처음 수난구조대를 접했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직업이라는 매력에 빠져 이렇게 수난구조대 대원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보람을 느낄 만큼 기억에 남는 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예요. 우리의 도움을 이기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사람에게 실망했던 일들이 몇 배는 많기에 지치는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일’의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성격이나 성향의 사람이 이 직업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오지랖’이 넓은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요즘 이런저런 걱정에 선뜻 손을 내미는 걸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도 저는 아직 세상에 따뜻한 오지랖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위험에 빠졌을 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분들이라면 거창한 사명감이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구조대원으로 보람을 느끼며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방교님에게 마음 성장이란 무엇인가요?

‘나만의 낭만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라고 하네요. 제가 일반인보다는 재난과 사고 상황에 익숙하다 보니 평소에도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가보는 편인데요.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가서 차량 시동 꺼졌는지 확인하고 주변도 좀 정리하면서 2차 사고 위험을 막으려고 해요. 사람이 다쳤으면 기본적인 응급처치도 하고요. 대부분 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고들이라, 부모님과 아내에게 자랑하고 칭찬받는 것에 만족하고 삽니다. 

 

아내는 제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거나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지만, 길에서 외국인들이 헤매면 말을 걸거나 도움을 주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과도 시시콜콜 얘기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되는 게 제 낭만이고 그걸 쫓으면서 저 자신이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영원히 반복되는 고난은 없다

“저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게 제가 사회에 진 빚이라는 걸 알았죠.”

김혜민 라디오 PD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회고하지 않는 건 운전을 하며 목적지에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것과 똑같아요.”

홍성향 라이프 코치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으면

“저는 고립이 소중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강미선 282북스 대표

오로지 내 탓으로 인한 중독은 없다

"불안하고 소심하고 연약하고 무능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나라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박미소 작가